"1970년에 죽은 전태일의 유서와 세기를 건너 뛴 2003년 김주익의 유서가 같은 나라. 두산중공업 배달호의 유서와 지역을 건너뛴 한진중공업 김주익의 유서가 같은 나라. 민주당사에서 농성을 하던 조수원과 크레인 위에서 농성을 하던 김주익의 죽음의 방식이 같은 나라. 세기를 넘어, 지역을 넘어, 업종을 넘어, 국경을 넘어 자자손손 대물림하는 자본의 연대는 이렇게 강고한데 우린 얼마나 연대하고 있습니까? 우리들의 연대는 얼마나 강고합니까? 비정규직을, 장애인을, 농민을, 여성을, 이주노동자를 외면한 채 우린 자본을 이길 수 없습니다. 아무리 소름 끼치고, 아무리 치가 떨려도 우린 단 하루도 그들을 이길 수 없습니다.
저들이 옳아서 이기는 게 아니라 우리가 연대하지 않음으로 깨지는 겁니다. 맨날 우리만 죽고 천날 우리만 패배하는 겁니다. 아무리 통곡을 하고 몸부림을 쳐도 그들의 손아귀에서 한시도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이 억장 무너지는 분노를,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이 억울함을 언젠가는 갚아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은, 동지 여러분! 좀 달라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 5년 전 『소금꽃나무』의 지은이이자 노동자 김진숙 씨가 한 말-
사촌동생, 상범이. 오늘 수학능력시험을 본다. 뭐 사실 사촌형이랍시고, 제대로 응원도 못해준 원죄가 있긴 하다. 갑자기 방향을 선회한 그 녀석, 그 넉살좋고 만만디 같은 그 녀석이,
갑자기 다시 재도전하겠다고 해서 다소 놀라긴 했는데, 지 결정이겠거니, 그냥 지켜보기로 했다. 끝나고 술이나 한잔 사줘야겠다.
결과야 어쨌든, 녀석에겐 아직 살 날이 훨 많이 남았다.
그건 그렇고, 버스마다 나붙은 수능고사장 안내문을 보고서야, 시즌이란 걸 눈치챘다. 2년 전의 수능일에 긁적인 이야기지만, 지금도 유효한 이야기. 나는 여전히 자의든, 타의든,
수능을 보지 못(않)은 소수의 아해들에게 더 마음이 간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거라곤, "괜찮아, 잘 될거야'라는 꼴랑 한마디 뿐이지만, 나는 정녕 그네들의 건투를 빈다. 부디, 이 사회와 분리되질 않길. 그네들을 소외시키는 사회가 되질 않길.
무엇보다 오늘(11월13일)은, 전태일 열사의 38주기이니까. 조병준 선생님을 만난지, 1주년이 되는 날이니까.
부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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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이 태풍처럼 몰아친 하루. 뉴스는 온통 수능이 어쩌구 저쩌구 블라블라.
소심한 탓에, 수능이 끝나고서야 걍 긁적거려보긴 한다만...
수능철, 입시철. 나 역시도 그런 과정을 거치긴 했지만, 이게 진짜 온 나라가 들썩거릴 정도로 호들갑을 떨어대야 하는지, 나는 여전히 의문이다. 아니 불만이다.
'삼당사락'이랍시고 잠도 제대로 못자거나 이젠 아예 초등시절부터 십수년을 혹사당하고 있는 학생들도 그렇지만, 수험생 두고 그저 TV 하나 제대로 보지 못한 채 지극 정성 다하는 부모나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서도 수험일이면 비행기소리마저 조심스러워해야 하는 어른들. 진짜 딱한 처지다. 수험날 풍경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것도 없고.
그저 일년에 한번이라고 치부해버리면 그만일 일이지만, 글쎄 그 하루. 도대체 그 하루의 의미가 도대체 뭐란 말인가. 학생에게나 학부모에게나, 그리고 이 사회의 구성원에게나. 다른 누구보다 나를 비롯한 어른들이 잘못됐다. 그렇게 수능가지고 호들갑 떨지 않는, 그것 아니더라도 삶이 충분히 지속될 수 있다는 구체적인 무언가를 보여줘야 했다. 그 하루에 그렇게 매달릴 것이 아니었다. 이 사회를 제대로 바꾸지 못한 죄의식을 느껴야 한다. 왜 자신이 그렇게 고통받았으면서도 왜 되물림 하려 하는가.
사실 진짜 '수학능력'시험도 아니잖아. 수능에 떨어진다고 수학능력이 안된다거나 붙는다고 수학능력을 갖췄다고 볼 수도 없잖아. 학점 기계, 취업 기계처럼 혹사당한 채 다시 고4로 내몰릴 아이들 대부분 이잖아. '수능'은 그저 듣기 좋으라고 하는 타이틀일 뿐이잖아.
나를 포함한 어른들, 참 아이들 많이 놀려 먹는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시험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야' '대학 안 가도 잘 살 수 있어' '대학만 가면 자유' 라는 거짓부렁을 던져놓고선, 단 하루에 인생의 모든 것을 걸도록 만드는 이율배반. 이 슬프고 처연한 나라.
에이, 따지고 들자면 한도 끝도 없겠지만, 내가 오늘 아프고 미안한 건, 오로지 수능에만 매달린 이 사회로 인해 상처 받았을 어떤 아이들. '소수'라는 이름으로 묻힌 아이들. 물론 수시란 이름으로 대학문을 이미 노크한 아이들은 예외.
또래의 아이들이 수능에 매달리고 온 세상이 그 날 하루를 위해 배려한답시고 호들갑을 떠는데, 그 테두리에서 떨어져 나간 아이들 말이다. 어떤 이유로든 수능을 치지 않았기에 소외된 아이들.
나는 그 아이들을 생각한다. 이 세상 모든 미디어가 수능이 어려웠니, 쉬웠니, 출제 경향이 어쨌니 저쨌니, 답안이 어떠니 저떠니로 떠들썩한 이때. 나 역시 그러한 것과 무관하지 않게 일을 했지만, 나는 그들을 생각지 않을 수가 없다. 그 아이들은 얼마나 외로웠을까. 세상에서 나 혼자 뚝 떨어져 나간 듯한 그런 느낌.
당신은 혹시 그런 느낌 가져본 적 없는가. 진짜 세상으로부터 외떨어져 나가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그런 느낌 말이다.
그들은 세상이 온통 수능으로 시선과 신경을 세우고 있을 즈음,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무슨 생각을 했을까. 차별을 내재화한 사회. 수능을 보지 않으면 이미 낙오자로 낙인을 찍어버리는 사회? 그래서 행여나 그들이 아주 멀리 빗나가 버리면 "대학을 나오지 않아서.."라는 둥의 말을 내뱉는 사회. 그들을 일찌감치 낙마시킨게 누군데. 그렇게 그들을 차별해 버린 어른들.
나는 진심으로 그들에게 미안하단 말을 전하고 싶다. 내가 그 오래 전 대입학력고사를 칠 때도 그랬다. 대입을 일찌감치 포기했던 몇몇 내 친구들은 학교로부터, 선생들로부터, 대입 치는 친구들로부터, 세상으로부터 외면당했고, 나는 그들에게 친구로서 충분히 역할을 하지 못한 죄책감이 있다. 그래서 그런 지도 모르겠다.
어떤 말을 해도 그것으로 어른들의 죄를 씻을 수 없겠지만, 아무 말도 없이 넘어가기엔 너무 찝찝하다. 내가 좋아하는 노래이자 CF에서 나온 구절.
지금 내가 그들에게 가장 해주고 싶은 말. 이 말도 어른들의 다른 거짓부렁처럼 돼 버리면 안 될텐데.. 에휴.. 사실 걱정이다.
괜찮아 잘 될꺼야 너에겐 눈부신 미래가 있어 괜찮아 잘 될꺼야 우린 널 믿어 의심치 않아
너희들에게 바치는 노래. 내가 직접 부른 건 아니지만..^^;;
이한철 '슈퍼스타'
그리고, 상대적으로 이들보다는 덜 외로웠겠지만, 수능을 치르느라 고생하고 힘들었던 아이들에게도~ 카르페디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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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오늘부터 수능 상술
("수험생 여러분 수고하셨습니다"라는 문구로 시작하는..)이 판을 칠텐데,
상술이야 둘째 치고,
수능을 안(못) 치는 방법으로,
세상을 버티느라 수고한 아해들에 대한 배려는,
왜 아무도 하지 않을까.
모두들 그렇게 한쪽에만 매달린 사이,
다른 한쪽은 그렇게 멍이 든다.
수험표가 있어야만 할인되고, 혜택받는 세상,
뭐 세상은 그렇게 불공평한거라고 얘기한다면 별 할말은 없다만,
수험표 없이도 세상을 살아가야만 하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
세상아, 부디 그들을 내치지 말지어다.
어쨌든, 상범아! 미리 얘기하마. 수고했다.
형아가...^.^
우리, 노래방 가서 휘성 노래나 부를까?ㅋㅋ
그래, '대꿘'(대선)의 계절이야. '대꿘 is All Around'지. 물론, 재미 없다. 감동도 없다. 그래도 많은 이들의 촉각은 그곳으로 향하기 마련이지. 과연. 그래서 대꿘 함 쥐어보려고 저 지랄들인가보군. 대꿘이 '남아대장부'의 로망? 남자라면, 힐러리처럼? 하하, 농담이야. '남아대장부' 따위의 근엄한 코멘트엔 코웃음 픽픽. 그래, 난 남아소장부다.^^; 대꿘은 언감생심. 취꿘이 어울릴 남아. 남아당자약!
명함이 무릅팍팍 늘어나. OO위원회, OO본부니, 알지? 대꿘용! 알던 양반들이 그렇게 새 명함을 돌려대. 타이틀 늘어난게지. 어제도 그랬어. 송년회 자리에 빠지면 안되지. 홍보홍보. 뭐 굳이 필요없는디, 새 명함을 건네 주시더군. 넙죽 받았지. 뭐 글타고 크게 거부감도 없어. 개의치 않는게지. 줄테면 주라지~ 걍 받고 말지~ 쨌든 퉁~
근데 그 대꿘. 크긴 크다. 그래서 소외 받고 있지. 바로, '인권'. 사실 한끗 차이인데. 어쩌다보니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네. 완전히 묻힌 거 같애. 잘난 '대꿘' 덕분이지. 그래, 오늘 12일. 조영래 변호사의 17주기야. 그 이름이 낯설다면, <<전태일 평전>>. 알겠지? 수배생활 중 집필했던 이 책. <<어느 청년노동자의 삶과 죽음>>이라는 첫 제목. 조영래 변호사는 알려준거야. 넓혀준거야. 이 세계의 어떤 작동원리를.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았어. 어른들도 알려주지 않았어. 전태일을. 그리고 노동자들의 핍박과 억압을. 그것이 또한 이 세계가 돌아가는 한 축임을. 몰랐었지. 그리고 놀랐지. 조영래 변호사는 그렇게 빨간약을 준거야. 나처럼 누군가는, 안게야. 조영래 변호사를 통해 전태일을, 혹은 세상의 한 단면을. 양심의 흔들림도 느끼기도 했겠지. ☞ 2007/11/13 - [세계, 내가 발 딛고 있는] - 전태일, 외로움을 투정하지 않은 그 사람...
맞아. 조영래 변호사는 이른바 '인권변호사'야. 근데, 웃기지 않아? 원래 변호사는 인권을 수호하는 직업군이었던거 아냐? 그게 우리가 어릴 때 배운 거 아니었어? 그런 변호사 앞에 왜 '인권'이라는 수식어가 붙어야 돼? 허허. 인권은 어느 때부터인가 변호사 몸뚱아리에서 빠져나왔나봐. 영혼이 빠진게지. '인권아~ 빠이빠이'했나봐. 인권이 라이프~ 얼마전 실형을 선고받은 우리 전인권 형은 잘 있으려나.^^;
그만큼 그는 독특한 위치였었지. 오늘날보다는 덜 자본과 몸을 섞었을 당시의 변호사 바닥에서도 말이야. 조영래 변호사는 약자 역시 인권을 가진 존재라는 것을 알려줬어. 쉽지 않았을거야. 그 당시 분위기로선. 그리고 약자를 위해 자신을 모든 것을 바치고 투쟁했던. 부천서 성고문 사건도 알지? 조영래 변호사는 국가를 상대로도 치받았어. 공권력의 타락상을 폭로하고. 부도덕한 정권과도 정면승부를 택했던 검객.
12월1일부터 12일까지. 혼자 정해본 인권기간. 1일 세계에이즈의 날(감염인 인권의 날), 우리의 편견에 메스를 들이대고. 8일, 평화와 공존의 사절단, 존 레논이 구름의 저편에 다다른 날. 반전과 인권을 부르짖던 로맨티스트, 존의 'imagine'. 나도 바라고 있어. 천국도, 지옥도, 국가도, 종교분쟁도, 소유도, 배고픔도 없는. 오로지 우리 위에 하늘만 있어서, 모든 사람이 '오늘'을 위해 사는. 평화로운 삶을 영위하며, 오직 인간에 대한 사랑만 존재하는 그런 세상. 바로, 존 레논이 'imagine'하던. 그 세상에선 전혀 인권이를 부를 필요가 없을테지. 그냥 녹아있으니까.
그리고 이어진 10일. 세계인권선언일. 올해 59주년. UN에서 세계인권선언을 발표하면서 시작된 날. 내년이면 환갑인데, 너무 기력이 딸려. 그러면서 점점 빨라져. 노화가. 더구나 올해는 이가 빠졌어. 그것도 앞니가. 바로, '인권 콘서트'. 지난해까지 열여덟번째 행사를 가졌던. 그러면 드뎌 이 땅에 인권이 완성된 것? 이 행사가 열렸다는 건, 이 땅의 인권현실이 열악함을 방증했으니까. 그러나 그것일리는 없고. 무슨 일일까. 아픈 걸까. 이젠 중병으로 진화된 걸까. 응급실에 나자빠진 것?
음 아마, 대꿘이 탓도 약간은 있겠지. 1989년 '양심수를 위한 시와 노래의 밤'으로 시작됐던 인권콘설. 12월10일 즈음이면 꼬박 찾아왔었는데. 행사를 주최하던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홈페이지에 가도 어떤 실마리를 찾을 수가 없다. 자유게시판의 짧은 글 하나가, 아프다. "아직 소식이 없네요. 올해 인권콘서트 언제 하나요? 인권...아직 멀었는데... " 인권 현실을 노래하고 이야기하는 소통의 장이 증발한 것일까. 혹시 유괴? <세븐 데이즈>의 김윤진을 불러라. 무죄를 만들어라. 정신없이 소중한 우리 박희순 오빠도 도와줘~
나는 작년에 이 행사가 없어졌음 좋겠다고 했어. 그러나 이런 식은 아냐아냐. 인권이 제대로 박혀있다면, 소수자와 약자에 대한 차별이 일상화되지 않은
사회라면,이라는 전제가 있었는데. 제길 어케 된거야. 콘설 앞에 '인권'이라는 말을 붙여야할만큼 우리는 너무 많은 인권침해와 박탈 속에 살아가고 있었던건데... 아예, 포기한걸까, 인권. 후, 자신의 인권현실도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도 부지기수인데. 인권이도 지칠만해.
그날, 그러니까 그저께. 우연찮게 난 폭격을 맞았지. "나 사실은 에이즈야"라는 결정적 한마디. 그건, 연극 <뷰티풀 선데이>의 대사. 외로운 사람들, 배제된 사람들, 그들의 아름다운 일요일. '세계인권선언일'과는 전혀 상관없었어. 의도하지 않은 관람이었다규. 그런데도, 나는 그들의 아름다운 일요일에 감동먹었어. 재미까지. 너에게 추천해줄께. ☞ 2007/11/30 - [세계, 내가 발 딛고 있는] - 맞잡은 손이, AIDS를 예방한다
그건 그렇고. 대꿘이 삼켜버린 인권은 어디서 건져내야지? 수렁에서 내 딸은 건졌는데, 인권이는 도대체 어디서. 지금의 세밑 풍경은 그래서 우울해. 좀더 이 세계의 현실을 생각케 만들지 못해. 대꿘이의 방해공작 때문이겠지. 오늘, 우리만이라도 다시 생각해보자. 이랜드-뉴코아 조합원들, 몸을 불사른 동지를 잃었음에도 달라진 것 없다던 전기공 노동자들, 지자체의 폭력적 단속에 내몰린 노점상인, 2년여 거리 투쟁을 하고 있는 KTX의 씩씩한 언니들, 자꾸만 밖으로 밀려나고 있는 이 사회의 또 다른 이름의 신분, 비정규직, 그리고 모든 약자와 소수자들...
그건 곧 우리야. 울림은 때론 흐느낌. 계속 귀를 기울일 수 있어야할텐데. 소수자와 약자들의 인권을 향한 노래를, 우리의 양심에 호소하는 이야기에. 나도 때론 두려워. 휙~하고 휩쓸릴까봐. 그래서 이런 발악이라도 하는지도 모르지. 그래, 당신이나 나나, 약간의 시간이 허락한다면, 이 세계의 인권과 약자들을 생각해보자규. 인간으로서의 내 권리가 제대로 작동되고 있는지도.
인간.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요구. 그 인권. 많은 것을 바라는 것도 아님에도 세계는 점점 더 엄혹해져. 많은 이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의 계급성을 배반하고. '대꿘'이 불알만 만져대. '대꿘'이는 밀접해야 할 인권이와 그닥 친하질 않아. 어쩌다 이름이
불려도 찬바람 휘잉~ 지금 대꿘이는 경제, 아니 정확하게는 '자본'과 아삼육인거 같애. 계는 없고, 색만 있어.ㅋ
마흔 셋의 나이에 눈을 감은 조영래 변호사. 과거 인권탄압을 고발했던 그는, 지금 살아있다면 어떤 이야길 들려줄까. 문득 궁금해지는 하루.
사실, 몸이 힘드네. 헥헥. 머리도 안 돌아. 역시 한해를 보내는 일이 마냥 쉽지만은 않아.^^; 뭐긴 뭐겠어. 술술. 역시, 환락의 밤은 짧고 숙취의 낮은 길어. 역시 난 취꿘이 어울려. ^^;;;;;;;;;;;;;;;;;;
글고, 아직 술독이 남아있는 것을 빌어, 대꿘, 특히 인권과 가장 거리가 먼 작자에게 한마디.
전태일, 당신이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를 외치며 산화한 그날 입니다. 벌써 37년이 흘렀습니다. 오늘, 다시 돌아오셨네요. 저는, 당신을 추모하는 노동자입니다.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의 한 장면
당신의 그 외침이후, 사람들은 더 이상 스스로 기계가 아님을 자각했고, 인간답게 살기 위한 '노동운동'이 본격화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시대는 변했다고들 했습니다.
2005년 '전태일의 거리' 개막식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당신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2005년에는 전태일 거리·다리의 조성도 있었고.
표지판, 출처:전태일기념사업회(www.chuntaeil.org)
당신이 섰던 그 자리엔 표지판이 이렇게 새겨져 있습니다. '인간다운 삶'.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것이 정말 힘들었던 시대를 보여주는 것 같네요.
마석 모란공원 전태일열사 묘역, 출처:전태일기념사업회(www.chuntaeil.org)
누군가는 당신을 찾아, 마석 모란공원 묘역을 찾겠지요. 이미 추도식이 치러졌겠군요. 11시에 있다고 했으니.
출처:전태일기념사업회(www.chuntaeil.org)
37주기. 당신을 위한 다양한 행사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당신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흠, 제가 당신을 처음 만난 것은, 바로 이 책을 통해서였습니다. <<어느 청년노동자의 삶과 죽음>>에서 <<전태일평전>>으로 이름이 바뀐 개정판. 친구의 강요에 가까운, 권유 때문이었습니다. 몰랐고, 놀랐습니다. 제가 태어나기도 전, 그같은 일이 있었는지. 학교에서는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습니다. 그렇듯, 어떤 사람들은 고 조영래 변호사가 쓴 당신을 통해 당신을 만났습니다.
혹은 영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이었거나. 당신은 그렇게, 우리의 가슴에 부활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지금-여기'의 풍경은, 당신을 떠올리기 부끄럽게 합니다.
노동자들은, 점점 설 곳이 좁아집니다.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70년대 구호가 아직도 유효한 세상입니다. 정말, 당신의 죽음 이후에도 변한 것이 없는 듯 싶습니다. 그 엄혹한 풍경에서 한치도.
출처 : 민주노총(www.nodong.org)
20년 넘게 전봇대를 오르내린 전기공, 정해진씨는, "전기원 노동자 파업은 정당하다"고 외치며 스스로 몸을 불살랐습니다. 주5일제도 아니고, 격주 토요휴무제를 요구했을 뿐이었습니다. 그가 죽었는데도, 달라진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동료의 넋두리가 가슴을 후빕니다.
MBC 화면 캡처
서울 창전동 아파트 10층 높이의 교통 관제탑에는,
more..
이랜드-뉴코아 조합원의 고공 투쟁이 있습니다. 20일도 넘었습니다. 그들은 매장에서 하루 6시간 이상 서서, 손님들을 상대하고, 바코드를 쉴새없이 찍고, 화장실도 제대로 못갔습니다. 그 댓가라는 것이 80만원도 채 되지 않았습니다. 그같은 노예노동을 몇년동안 해도, 언제 파리채에 걸릴지 모르는 파리 목숨이었습니다. 그것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는 요구를 합니다. 그러나 요구조차, 들어줄 수 없는 것이 이땅입니다. 그 회사 사주가 십일조 헌금으로 교회에 내는 돈만 130억원. 혼자만 구원받고 싶나 봅니다.
이것이, 비정규직 보호법안의 현실입니다. 900만에 가까운 비정규노동자들은 낭떠러지에 서 있습니다. 이 모습을 보고선, 지난 2003년 고공크레인 위에서 목숨 건 투쟁에 나설 수밖에 없었던, 어느 일하는 아버지가 생각났습니다.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길에서도, 초등학생인 세명 아이들에게 휠리스를 사주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린다던, 그 아버지. 결국, 그 엄혹한 풍경에서 한 치의 나아감도 없습니다.
왜 노동자들의 눈물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을까요. 모든 것이 변한다는 이 시대에도 말입니다. 저도, 이랜드, 혼내주고 싶습니다. 물론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작습니다. '후아유'를 비롯해 이랜드 생산 옷은 이제 절대로 사지 않습니다. 뉴코아 홈에버 가지도 사지도 않습니다.
10여년을 거리에서 붕어빵을 팔던 중, 지자체의 폭력 단속에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노점상인, 이근째씨도 있었습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우리는 한발짝도 나아가지 못한 건가요. 당신은 17년 전 오늘,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건만, 21세기에 접어든 지금도 1970년대의 구호가 여전히 유효하다니, 당신의 죽음 앞에 나는 부끄럽고 화가 치밉니다.
샛길이지만, 며칠 전, 신문을 보다가, 당신을 열사로 만든 대마왕의 유산을 그대로 이어받은, 작자들이 뭉친 당의 광고를 보고, 띠바, 토할 뻔 했습니다.
그 계쉐요, 씨베리아 쉐리들은, 아직도 성공이데올로기를 끊임없이 주입시키고 있었습니다. 아직 70년대의 구호속에 살고 있는 듯한 그네(근혜?)들의 인식 앞에, 나는 섬뜩했습니다. 그네들이 정권을 잡게 됐을 경우, 펼쳐질 성공 지상주의의 늪이 펼쳐져서. 그네들이 말하는 '성공'이란 불을 보듯 훤한 것이지요.
나는 다시 한번, 이 말을 되새김질 합니다. "성공에 목매는 사회, 성공하지 않으면 불행을 피할 수 없는 사회에 살다보면, 성공 지상주의가 구성원들의 마음 속에 내면화해 이데올로기가 된다."
제가 감히 말이 길었습니다. 그 예전, 정은임 누나의 말처럼, 조용히 외로운 싸움을 계속하는 사람들은, 쉽게 그 외로움을 투정하지도 않을텐데 말입니다. 당신도, 그 외로움을 투정하지도 않았고, 우리에게 큰 선물을 주고 가셨잖아요.
올해 나온, 당신과 관련한 이야기. 특히 아이들에게 꼬옥 권하고, 읽히고 싶은 이 책. <<태일이 1·2>>. <고래가 그랬어> 기획.
그리고 청계피복노조의 빛나는 기억. <<청계, 내 청춘>> "모든 것은 그 사람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은임 누나의 말로 오늘, 당신을 추모하는 한 노동자의 넋두리를 대충 마치고자 합니다.
새벽 세시, 고공 크레인 위에서 바라본 세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100여일을 고공 크레인 위에서 홀로 싸우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의 이야기를 접했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올 가을에는 외롭다는 말을 아껴야 겠다구요.
진짜 고독한 사람은 쉽게 외롭다고 말하지 못합니다. 조용히 외로운 싸움을 계속하는 사람들은 쉽게 그 외로움을 투정하지 않습니다.
지금도 어딘가에 계시겠죠? 마치 고공 크레인 위세 혼자 있는 것 같은 느낌. 이 세상에 겨우 겨우 매달려 있는 것 같은 기분으로 지난 하루 버틴 분들, 제 목소리 들리세요?
저 FM 영화음악의 정은임입니다.
그리고, 제발, 플리즈, 이 소원이 이뤄졌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처럼, 누군가 죽지 않더라도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