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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08/11/25 은둔 속에 핀 예술혼, 에밀리 디킨슨 by 스윙보이
  2. 2008/01/04 사랑은, '오렌지주스'에서 시작한다... by 스윙보이 (2)
  3. 2007/09/23 파블로 네루다, 그리고 <일 포스티노> by 스윙보이 (4)
  4. 2007/07/09 [한뼘] 위로 by 스윙보이

은둔 속에 핀 예술혼, 에밀리 디킨슨
(Emily Dickinson, 1830~1886년)

그리고 1775편의 시


살아생전, 주목받지 못했습니다.
1800여 편에 달하는 시는 그저 혼자 내뱉은 독백 같았습니다.
사랑, 이별, 죽음, 영혼, 천국, 자연 등을 다룬 시는,
은둔생활 속에서 핀 꽃이었나 봐요.

그는 내내 고독했지만,
그 고독은 그의 모든 것이었던 시를 잉태한 동력이었습니다.

시와 고독을 평생 친구로 곁에 두고 지냈던 이 사람,
영문학사상 최고 시인 중 하나로 꼽히는 에밀리 디킨슨(Emily Dickinson)입니다.
이상하고 의외의 일이죠?
그가 살아서는 별 볼 일 없는 시인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 말이에요.
하긴 별 볼 일 없다는 것도,
그의 시를 제대로 접할 수 없었던 까닭도 있었겠지요.


에밀리를 얘기할 때, 가장 흔히 따르는 것은, 평생 독신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따지고 보면, 독신으로 살았다는 것이 그닥 부각돼야 할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결혼을 인류보편의 것으로 인식하는 대부분의 사회에서,
독신생활하면서 시 짓기에만 몰두하다시피 한 그의 행보는,
호사가가 아니더라도 입방아에 올릴 수 있는 호기심거리가 될 수 있었겠죠.
마치 시와 결혼한 듯,
자신만의 공간에서 치열한 문학적 열정을 불태운 그였기에,
보통사람들과는 확연히 다른 생의 궤적은 호기심의 대상이 될 수 있을 겁니다.


에밀리는 미국 매사추세츠주 엠허스트에서,
변호사 아버지 에드워드 디킨슨과 에밀리 노크로스의 둘째 딸로 세상과 접촉했습니다.
잘 보시면, 그의 이름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이름에서 하나씩 딴 것이죠.
독실한 기독교 가정에 신학교에도 진학했지만,
그는 보수적인 청교도 신앙에 그닥 흥미를 느낀 것 같진 않습니다.
청교도 정신부활을 위한 '영적대각성운동'이 있었을 때도,
그는 되레 청교도 신앙과 종교적 구원에 대한 회의를 숨기지 않았으니까요.

에밀리를 에워싸고 있던 종교가 시작(詩作)에 큰 도움을 주지 못한 반면,
한 만남이 그를, 그의 시상(詩想)을 일깨웠습니다.
설핏 짐작 가시죠?
맞아요. 역시나 사랑.
독신이었다지만, 설마 그가 사랑 한번 하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진 않으셨죠?
아버지가 하원으로 당선돼,
그의 가족은 1854년부터 이듬해까지 워싱턴에서 살았는데,
필라델피아의 한 장로교회에서 만난 찰스 워즈워스 목사를 만났습니다.
찰스 목사는 스승과도 같았습니다.
문학적인 설교와 칼뱅주의에 입각한 그의 웅변이,
에밀리의 머리와 마음을 흔들었던 거죠.
그것은 하나의 지적도전과도 같았고, 시작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두 사람은 죽이 잘 맞았던 것 같아요.
편지를 주고받았고,
워싱턴을 떠나 다시 엠허스트로 돌아간 에밀리를 찰스 목사가 찾기도 했습니다. 에밀리는 여러 글에서 그를 '지상에서 가장 소중한 친구'라고 적기도 했어요.

그러나 역시나 장벽은 존재했죠.
찰스 목사는 기혼자였고, 그가 1861년 샌프란시스코의 한 교회로 옮기면서,
두 사람의 인연은 그것으로 끝이 났어요.
에밀리는 그를 정녕, 사랑했나봅니다.
친구부부와 동생에게 실연의 아픔을 토로했고, 더더욱 시에 매달렸습니다.
사랑의 아픔 때문인지 시는 봇물처럼 흘러넘쳤고,
좌절된 사랑으로 둘 곳 없는 마음은 작품 속에서 영적인 결합을 이뤘습니다.

고통을 잊기 위해서였을까요.
실연을 겪고 난 뒤, 그러니까 30세 이후 은둔생활에 들어갔습니다.
그는 흰 옷만 입고 지냈다고 전해집니다.
'뉴잉글랜드의 수녀'라는 별명도 그래서 지어졌습니다.
시작도 계속했으나, 그는 출판에는 소극적이었습니다.
생전에 불과 7편의 시만 발표했을 정도로,
그는 철저히 고립된 속에서 시와 함께 했어요.

물론, 에밀리에게 사랑이 한번만 거쳐 간 것은 아니지만,
그는 독신생활을 청산하지는 않았습니다.
아버지의 오랜 친구이자, 아내를 잃고 홀로 된 로드 판사와도,
사랑을 나눴습니다.
두 사람의 서신에서도 서로 사랑했음이 충분히 드러나 있었지만,
이미 익숙해진 독신생활을 버리지 못해,
그의 청혼을 거절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어요.
그러나 1884년 로드 판사가 죽자,
실의에 빠져 있던 에밀리는,
결국 건강 악화로 2년 뒤인 5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다시 겪은 사랑의 아픔, 그의 전부였던 시도,
그를 더 이상 지탱시켜주지 못했나 봅니다.


에밀리가 죽은 뒤, 그의 동생이 1775편에 달하는 시를 묶어 발표했습니다.
그의 시는 1890~1945년 동안 8권의 시집으로 묶여 출판됐고,
살아생전 주목받지 못했던 그의 시들은 20세기에 와서 제대로 평가를 받았어요. 그는 겉으로 보기엔 은둔자였지요. 가사 일을 끝내고 이층 방안에서 시작에만 몰두하는 것이 그의 일과이다시피 했으니.
그러나 시와 편지를 보자면 열정적이고 재치있는 예술가임을 알 수 있습니다.
거기엔 친밀한 언어로 생과 죽음, 영원과 자연 등에 대해 무한한 상상과 사색, 사랑과 이별을 담았습니다.
그의 예술혼은 그래서 아직도 후세인들에게 전파되고 입에 오르내리는 것 아니겠어요?

(※참고자료 : 위키백과, 국민일보) 

위민넷 - 키위, 여성을 만나다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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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윙보이
연말연시, 곧 덕담이 난무하는 시즌.
누구에게든, 상투구든 뭐든, 좋은 말 한마디씩은 던지는 것, 익숙하지. 전화, 문자, 대면 등을 통해 주고 받은 새해인사를 담자면, 누구나 트럭 백만스물두개 정도는 될 터. "복 받아라"는 클리셰가 가장 흔할 테고, 내 경우, 다음으로 많은 것은, "결혼해야지" 정도가 되시겠다! 뭐, 결혼 안(못)한 종족들의 피할 수 없는 덕담? 악담?

"올해는 결혼하냐?"
"좋은 소식 좀 듣자"
"올핸 국수 먹게 해주는 거냐?"
"새해 장가도 좀 가고..."
"새해엔 결혼해서 부모님을 즐겁게 해주는 한해가 되길 바란다. 사회적 어른!..."

뭐, 이런 말들이 우수수 쏟아지더군.
몇년째야, 대체.^^;; 이 말 건네는 사람들도 슬슬 지겨워질 때가 됐지 싶은데, 제일 만만한 덕담인가? 어쩌다, 결혼 못(안)한 처지가 안스럽다는 뉘앙스까지 은근 품은 말을 들을 땐, 아 그 측은지심에 눈물까지 킹왕짱 쏟아지려구 해. 또 부모님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서라니.-.-; 그건 더 슬퍼. 꼭 부모를 위해 하는 결혼이라. 내 아무리 불효자라지만, 그건 너무해. ㅠ.ㅠ  

그들의 마음을 모르는 것, 당연 아니지.
충분히 할 수 있는 얘기고, 당연 날 위해 건네는 진심이란 것, 알아~ 그럼에도, 그 말이 때론, 폭력적인 말이 될 수 있음을 알아줬음 좋겠어. 생을 사는데 있어서, 단 하나의 방식만 있는 것도 아니잖아. 그건 끔찍한 일이야. 또 나는 아니지만, 결혼이라는 '제도'를 거부하고 살아가는 소수도 있음을 고려하면 더 좋지 않겠나 싶어서. 나도 누군가에게 꽂히면, 그 제도와 도킹하는 날도 있겠지. 그래도, '결혼' '장가' '시집'이라는 말보다 '사랑'이란 말을 하면 더 좋지 않을까. "결혼해라"는 말 대신, "사랑해라" 혹은 "더 많이 사랑해라"는 그런 말. "연애해라"도 좋겠군.

며칠 전, 현재 결혼 상태의 한 친구가 툭 던진 이말.
"넌 혼자여두 씩씩한 것 같아... 난 혼자여두 외롭고, 둘이어도 더 외로워지라..."
쓸쓸함이 묻어난, 그 자조섞인 얘기에, 난 뭐라고 해야 좋을지 잠깐 고민.
"어, 왜 이래. 난 외로움도 못느끼는 외계인이냐? 외로움은 죽을 때까지 피할 수 없는 거야. 친구처럼, 감기처럼 평생 옆에 달고 있어야 돼. 사람에게 숨길 수 없는 세가지가, 기침, 가난, 사랑이라는데, 난 거기다 외로움도 더 붙여야 한다고 생각해..."
뭐, 이런 시시껄렁한 말을 해줬다. 결혼도 못(안)한 '아해'의 망언?

사실, 나는 일찍 눈치챘다.
외롭지 않기 위해 결혼한다는 것, 순 말짱 거짓말이라는 걸. 단지 외로움을 떨치려고 하는 결혼이라면, 물론 나는 자격따윈 없지만, 그 결혼 반대닷. 그런 사람은 그 외로움의 실체를 제대로 모르는 것이 아닐까 싶어. 마음의, 감정의, 빈 공간을, 한갖 제도로 편입함으로써, 메울 수 있으리란 생각은 오산인게지. 그럴 때 하는 결혼일수록, 허물어지기 쉬운 모래성이 될 것 같고.

나는, 그 친구에게 "사랑해라"고 말해줬어.
그 사랑의 대상이 누구일지는, 온전히 그의 몫이지만, 나는 좀더 그가 '아름다운 개인'이 돼줬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봐. 경험상, 외로움은 떨치는 것이 아니더라구. 그리고 떨친다고 되디? 그것이. 그놈, 킹왕짱 질긴 놈이야. 아싸리, 친구가 되는게 상책이더라규. 뭐랄까. 외로움과 좀더 친해질 때, 사랑도 더 잘할 수 있는 법이고, 아름다운 개인이 될 수 있을 것 같아. 사랑의 대상이, 스스로가 돼도 좋겠어. '싱글'은, 때론 결혼 혹은 연인 여부와는 무관한 레떼르일 수도 있는데,

그리하여,
'싱글'에게 고하노니, 올해 사랑하시라. 이것이 너에게 건네는, 나의 첫 새해덕담이노니.

그리고, 이건 내가 아는 한 사랑의 시작. 바로, <노팅힐>. 너에게 권해줄께.
우리 올해, 오렌지주스나 실컷 마시자규.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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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윙보이
영화를 본다는 행위가 세계를 넓힌다는 것과 때론 동일한 의미로 사용될 때가 있다. 최소한 내게는 그렇다. 물론 모든 영화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 한편의 영화가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이 세계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진 않지만, 한 사람의 세계를 바꿔놓을 수는 있진 않을까. 세계관을 뒤흔들어 놓을 수도 있지. 당연, 영화가 반드시 그래야할 이유는 없다. 영화는 때론 혼자만의 것이니까.

오늘 묵은 영화 한편을 꺼내는 건, 역시나 그런 의미다.
내 세계를 넓혀 준 한편의 영화. <일 포스티노>(IL POSTINO).
떠들썩 하진 않았지만, 알게 모르게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영화지.
누군가는 '시와 음악이 물빛 그리움으로 번지다...'라는 시 같은 헌사를 바치드만.

메타포 그리고 파블로 네루다.
<일 포스티노>가 준 선물이었다. 그만큼 내 세계는 조금 더 확장됐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칠레의 명민한 좌파시인, 파블로 네루다를 처음 알았고,
좋아하게 된 파블로 네루다의 '詩'라는 시를 만났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메타포(은유)를 느꼈다.

9월23일, 오늘은 파블로 네루다의 34주기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구름의 저편으로 몸을 숨긴 세계의 문인. 1971년 노벨문학상 수상.
무엇보다 그는 노동자와 농민의 낙원을 꿈꾼 민중의 시인이었다.
그는 자신의 계급적 근원을 알고 계급성에 기반해 자신의 문학과 언행을 펼쳤다.
노동자의 아들로서, 칠레의 명예영사로서 세계 곳곳을 누비면서 접한 부조리가,
절친한 동료시인들을 잃은 1936년 스페인 내란이 그의 정치적 태도를 확립시켰다.
칠레 공산당에 입당해 빈곤문제의 해결을 위해 갖은 활동을 했지만,
네루다는 결국 꿈을 이루지 못하고 망명생활을 하게 됐다. (<일 포스티노>에는 망명생활을 하는 파블로 네루다가 나온다.)

다시 돌아온 칠레였지만,
피노체트의 군사쿠데타는 네루다의 희망을 꺾고 기력을 쇠하게 만들었고, 결국 그는 펜을 놓았다.
그의 장례식에는 엄청난 수의 군중들이 모여들었고, <인터내셔널가>가 울려퍼졌다고 한다. 상상만 해도 그 광경은 참으로 벅찬 장면이다.
파블로 네루다의 정신과 시,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피노체트의 군부독재 마감에 일조를 했다는 말은 그만큼 칠레에서 파블로 네루다의 존재감이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 방증하는 것이겠지.

사실 그는 '사랑'에 목마른 연애시의 대가였다.
약관의 나이인 20세에 낸 두번째 시집 <스무편의 사랑의 시와 한편의 절망의 노래>로 칠레에서 가장 유명한 시인이 된 그의 이력을 봐도 충분하지.

'파블로 네루다'라는 이름은 본명이 아니다. 시를 쓰지 못하게 하는 아버지의 눈을 피해 찾게 된 이름이 체코슬로바키아의 하층민 출신 시인 '얀 네루다'였고, 그는 여러가지 필명을 쓰다가 네루다를 선택했다. "체코의 서민 시인이었기 때문에 계급적 동질성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했다. 본명은 도저히 기억할 수 없는 이름이다. 리카르도 네트탈리 레예스 바소알토. 휘유 -.-;;

20세기의 가장 완벽한 인간, 체 게바라가 죽기 전 필서하면서 들고 다니던 시가 파블로 네루다의 것이었다지? ☞ 게바라 죽는 순간도 ‘詩와 함께’

이걸 밝히면 더이상 비밀이 아니지만, 내 이력서에는 파블로의 작품 '詩'의 한 구절을 변용한 문구가 있기도 했다.^^;;

파블로 네루다에 대해 좀더 자세하게 보고 싶다면,
☞ 파블로 네루다(바람구두연방의 문화망명지)

아마 3년여쯤 됐나. <일 포스티노> 감상기다. 가을, 편지, 그리고 파블로 네루다... 이번 추석엔 <일 포스티노>를 다시 꺼내 봐야할 것 같다. '詩'를 한번 읊어봐야할 것도 같고. 지난해 타계한 <시네마천국>의 알프레도 아저씨, '필립 느와레'가 <일 포스티노>에선 파블로 네루다로 나온다는 사실. 필립 아저씨를 보고 싶기도 하고.

사실 <일 포스티노>가 한편으로 안타까운건,
우편배달부, 마리오 역과 각본을 맡았던 마시모 트로이시는 영화 촬영을 끝내고 이틀후 세상을 등졌다. 영화 촬영 전 두번의 심장수술을 했고, 영화를 찍으면 생명이 위험해질 수 있다는 경고에도 불구, 그는 <일 포스티노>와 함께 했다고 한다. 영화에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부었던 걸까.

이처럼, 나는 파블로 네루다, 필립 느와레, 마시모 트레이시의 이야기나 모습이 담긴 <일 포스티노>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

무엇보다, 잊을 수 없는 장면은,
극중 베아트리체 루소에게 푹 빠진 일포스티노, 마리오가 파블로 네루다에게 사랑에 빠진 자신의 심경을 토로하는 장면. 물론 이건 영화를 봐야  좀더 확실한 이해가 가능하다는 것.

"전 사랑에 빠졌어요"
"그건 심각한 병이 아니야, 치료약이 있으니까"
"치료약은 없어요! 치료되고 싶지 않아요... 계속 아프고 싶어요..."

"이 섬의 아름다움을 말해보겠나?"
"베아트리체 루소"

누군가 한국의, 서울의, 아니면 당신이 살고 있는 곳의 아름다움을, 자랑을 묻는다면,
당신은 반드시 지금 당신이 사랑하고 있는 사람의 이름을 대라.
닭살이라고?
이봐이봐, 사랑은 원래 그런 거라구.
그리고 그것이 또한 메타포라규.

나는 당신의 사랑을 지지한다. ^.^
그리고 올 가을엔 꾹꾹 눌러쓴 편지를 써 보는 건 어떻겠나.
<일 포스티노>도 함께 봐주면 좋겠다.

아니면 황지우 시인의 '일 포스티노'(시집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에 수록)를 읊어도 좋겠군.

자전거 밀고 바깥 소식 가져와서는 이마를 닦는 너,
이런 허름한 헤르메스 봤나
이 섬의 아름다움에 대해 말해보라니까는
저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으로 답한 너,
내가 그 섬을 떠나 너를 까마득히 잊어먹었을 때
너는 밤하늘에 마이크를 대고
별을 녹음했지
胎動하는 너의 사랑을 별에게 전하고 싶었던가,
네가 그 섬을 아예 떠나 버린 것은

그대가 번호 매긴 이 섬의 아름다운 것들, 맨 끝 번호에
그대 아버지의 슬픈 바다가 롱숏, 롱테이크되고 ;
캐스팅 크레디트가 다 올라갈 때까지
나는 머리를 박고 의자에 앉아 있었다

어떤 회한에 대해 나도 가해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에
영화관을 나와서도 갈 데 없는 길을 한참 걸었다

세상에서 가장 쓸쓸한 휘파람 불며
新村驛을 떠난 기차는 문산으로 가고
나도 한 바닷가에 오래오래 서 있고 싶었다


시와 편지 그리고 바다, <일 포스티노> (2004. 3)

편지. 참으로 먼지 폴폴 날리는 오래 묵은 골동품과도 같은 뉘앙스다. 이제 ‘편지를 쓴다’는 행위는 목욕재개하고 신실한 마음에서만 가능할 것만 같다. 벌써 향수가 된 건가. 내 안의 누군가와 대화를 나눈다. 떠오르지 않는 시상(詩想)으로 머리를 쥐어짠다. 그리고 또박또박 한자한자 꾹꾹 눌러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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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윙보이

첫 소절을 만나고선 눈물이 울컷 솟는 어떤 노래들이 있다. 어쩌다 들을 때 특히 더 그렇다.

그건 어떤 추억과 맞닥뜨려서일 것이다. ㅠ.ㅠ

언젠가 우리 다시 만나면


에이 안 되겠지, 하면서도 한편으로 혹시나하며 기대했던 어떤 축제에서 작은 상을 타게 됐다.

오래전에 써 놓은 글이었지만, 시간이 흐른 뒤에도 날 위로해 주기도 하는구나.

그래, 아주 작지만 지금-여기의 내 생에선 크나큰 위로다. 요즘 같이 너절한 슬럼프에선 더욱더.

생은 가끔 이런 식으로 위안을 받는다. 나는 숨을 쉰다. 휴우.


그런데 '언젠가 우리 다시 만날' 수 있는 일말의 기적 혹은 기대감마저 박탈당한 사람에겐 저 노래가 너므너므 아플 때가 있다. 죽음이 그렇듯, 연애도 사랑도 결코 익숙해질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매번 그 대상이 다르기 때문일까. 죽음도, 연애도, 사랑도 진짜 연습이 없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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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윙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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