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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내가 발 딛고 있는'에 해당되는 글 188건

  1. 2010/07/18 [책하나객담] 나는 왜 일본축구팀의 패배를 바랐나 by 스윙보이
  2. 2010/07/13 인민을 위한 축구선수도 있다! by 스윙보이
  3. 2010/07/04 사회적기업가 학교 수료 by 스윙보이
  4. 2010/05/26 용의 추락, 부엉이의 비상 by 스윙보이
  5. 2010/05/24 5.23 노무현, 그리고 강룡(부부), 호찬(딸 서진) by 스윙보이
  6. 2010/05/18 5.18 by 스윙보이
  7. 2010/04/10 혹시 기억해? 당신의 스물셋... by 스윙보이 (4)
  8. 2010/04/09 '23살의 봄'앞에 눈물을 쏟고 말았던 이유... by 스윙보이
  9. 2010/03/08 우리, 아이 좀 낳게 해 주세요~ 네에~~ by 스윙보이
  10. 2010/01/20 용산참사 1년, 불길과 빗물 by 스윙보이

내게 또 다른 세계를 보여주면서,
세계를 넓히는 계기도 제공했던 이번 2010 남아공 월드컵.

 
이번 월드컵 경기를 보는 와중,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아니 사실, 이상한 것도 아니다.
왜 그럴까, 생각하게 됐고, 그런 나를 보는 것이 왠지 불편했고, 고민도 됐다.

문제는, 일본과 파라과이의 16강전.
한국은 이미 16강전에서 패배했고, 더 이상 과격하고 광적인 대~한민국을 보고 듣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을 느끼고 있던 찰나였다.
크게 관심이 없다고 생각했던 경기였는데, 어쩌다 보게 됐다.

그런데, 그 경기를 보면서 중간에 나는 푸드드득~했다. 
일본이 지기를 바라고 있는 거다. 일본이 파라과이 진영에서 공을 차고 있으면 불안했고, 파라과이가 일본을 공격하면 골을 넣으라는 주문을 외우고 있는 거다.

아니, 왜지? 의문이 뭉게뭉게. 
왜 나는 일본이 져야한다고 생각하고 있을까. 

나, 아시아인으로서, 한국을 비롯한 다른 아시아팀 모두가 떨어진 마당에 아시아의 마지막 보루인 일본이 이겨야지, 가 이성이라면,
이 쪽발 쉐이들, 아시아의 축구맹주 조센징이 떨어진 마당에 뉘들이 감히 뷁! 이라는 감정일텐데,

후자가 경기를 보는 그 순간을 지배했다.
된장, 나도 어쩔 수 없는 조센징이구나, 하는 생각이 아련하게 들었고,
그걸 느끼면서도, 나는 승부차기에서 일본 선수가 실축하는 것을 보고 쾌재를 부르는 자신을 발견했다.

경기가 끝났다. 일본이 졌다.
라리사 리켈메를 등에 업은 파라과이의 승이 아니라, 일본이 진 것이다!
속은 후련했다. 한도의 한숨 같은 것.
하지만, 이 감정이 머리속에선 불편함으로 둥지를 텃다. 

나는 일본문화에 대해 되레 호감을 가진 편이다.
커피와 카페 문화, 스토리텔링의 향연, 오감을 만족시키곤 하는 영화나 만화, 알흠다운 내 어떤 여신들. 기회가 된다면 일본을 자주 방문하면서 일본과 더 친해지고 싶은 바람도 있다. 과거에 접촉했던 일본인들도 하나같이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더구나, 나는 민족주의에 별반 호감을 느끼지 못한다.
국경 따위도 불만이다. 국경은 곧 한계를 상정하는 것 아닌가.
다른 세계에 도달하려는 노력을 왜 그런 울타리로 막아버리는 건가.
누구나 원한다면 이중 국적, 아니 다중 국적을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고.

그런데도 왜!!!
이게 다 제도권 교육, 특히 국사교과서 때문에 그런 거야, 라고 치부하고,
일단 접었지만 찝찝하던 찰나, 만났다.

다시 만난 임지현

《새로운 세대를 위한 세계사 편지》(임지현 지음|휴머니스트 펴냄).
임지현, 그 이름 때문에 만났다.
만들어진 민족주의가 아닌 트랜스내셔널 역사학을 주창하는 역사학자.
처음 임지현 교수를 접했던《우리 안의 파시즘》, 상당한 충격이었다. 
내 안에 똬리를 튼 파시즘의 속살을 들여다 볼 수 있었던 계기.
그의 이름을 둘러싼 논란도 많았지만, 어쨌든 그는 20대의 내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준 사람 중의 하나였다.

이번 책 역시 만들어진 역사인 국사와 세계사 교과서를 찢으라, 는 기존 율법 차원에서는 과격한(!) 주장을 펴고 있는데,

책의 기조는 역시나 한결 같다. 18명의 과거사 인물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을 띠는 가운데, 이성을 마비시킨 채 기득권의 체제유지수단으로 작동하는 민족주의에 대한 비판. 민족주의가 각 인물의 시대나 상황 속에서, 혹은 그 인물의 내면과 행동에서 어떻게 발현되는지를 콕콕 찝는다.

일본, 집합적 유죄!

아 참, 일본과 파라과이의 16강 전으로 돌아가자. 책을 통해 나는 그 불편함의 정체를 어느 정도 읽을 수 있었다. 한일 관계, 임지현의 표현에 따르자면, 식민주의적 죄의식이 작동하는 굴절의 메커니즘.

그러니까, 나는 내가 받은 제도권 교육의 '국사'를 통해, 제국주의의 후예인 일본인 전체를 '집합적 유죄'로, 한국인은 '집합적 무죄'로 간주하는 인식이 박혀 있었던 거다.

"그러니까 개개인의 행동과 그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일본인이냐 한국인이냐에 따라 좌의 여부가 결정되는 것이지요. 섬뜩한 이야기지만, 나치의 홀로코스트도 사실 이 논리예요. 너는 유대인이기 때문에 죄인이고,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살았는지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했는지에 상관없이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죽어야 한다는 그 논리 말입니다. 식민주의적 죄의식이야말로 전형적인 집합적 유죄의 논리지요."(p.48)

일본이라는 국가에 대해 식민주의 역사의 책임을 추궁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모든 일본인이 죄인이라는 식의 집합적 유죄를 수용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나는 일본 축구팀을 일본과 동일시하면서, '죄인인 뉘들이 한국 축구팀도 좌절한 8강에 감히 어떻게!'라는 생각을 가졌던 것은 아닐까. 식민지 과거를 경험하지 않았지만, 과거에 대한 기억은 지금 일어나는 일이고, 나는 국사라는 교과서를 통해 일본의 민낯을 접했던 세대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죽을 때까지 국사가 펼친 민족주의의 주술에 묶여 살 수밖에 없는가. 일본 축구팀의 선전을 부러 무시해야 하는 건가. 일본이 잘 되면 배가 아파야만 하는가.  

임지현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유럽에서는 국사를 넘어서려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으며, 국가간에도 국사를 떠나, 국경을 넘어 각 지역의 삶과 직접 연관되는 문제의 해결이 필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체르노빌에서 비롯된 핵발전소 사업이 그랬으며, 우리에게도 중금속 미세먼지를 잔뜩 안고 한반도를 공습하는 중국의 황사 문제를 거론한다.

"주권의 신성불가침성과 민족주의의 주술에 사로잡혀 있는 한, 황사문제 등을 풀 수 있는 사회적 상상력은 빈곤할 수밖에 없습니다. 21세기 우리의 삶이 처하고 있는 문제의 해결책을 찾기 위해서는 먼저 국경에 갖혀 있는 우리의 상상력을 민족주의의 주술에서 해방시키는 것이 급선무가 아닌가 합니다. 국사 패러다임을 문제 삼는 것은, 그것이 현재와 미래에 대한 우리의 상상력을 국가의 경계 속에 가두고 질식시키기 때문입니다. 우리 일단 상상력을 해방시켜봅시다."(p.381)

역시, 문제는 상상력이다. 어딜가나 그놈이 문제다. 어떤 상상력이 어떤 미래를 불러오게 될지 알 순 없지만, 지금 역사에게 필요한 것도 상상력이란다. 그래야 나는 그 불편함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다. 국사의 파장에서 벗어나려면 필요한 것도 상상력. 언제 일본팀의 경기를 다시 보게 될지 알 수 없지만, 이 책 덕분에 나는 조금씩 그 주술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다.

책은 기대보다 더 흥미진진한 부분이 존재했다. 아는 인물의 경우는, 몰입도가 상당히 높았다. 속살까지 훔쳐본 기분이랄까. 해당 인물에 대한 앎이나 이해가 부족했던 탓이었겠지만, 임지현이 특히나 애정을 둔 듯한 로자 룩셈부르크가 그랬고, 무솔리니가 그러했으며, 체 게바라가 그러한 한편, 지그문트 바우만 또한 흥미진진. 

알고 싶다, 마르코스!

뭣보다 가장 흥미로운 존재는 마르코스였다. 멕시코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의 부사령관이자 실질적인 지도자였던. 지금은 행방이 묘연한 신비로운 인물. 새로운 정치집단의 권력 장악이 아니라 권력의 작동방식이 바뀌는 것이 혁명이라고 역설했던 인물. 현실의 단순한 반영이 아닌 현실을 만들어가는 담론적 실천이라는 생생한 예를 보여준 마르코스의 말. 열광에 반대하는 사파티스타의 전통 또한 마음에 들었다.

"기존의 체제는 사람들이 이미 결정된 생활방식을 일상적으로 받아들일 때 안정된 재생산구조를 유지하지, 결코 힘에 의해서만 작동하지는 않지요. 혁명을 국가권력의 쟁취라는 정치의 영역에서 일상생활과 문화의 영역으로 확대하고자 했던 당신의 시도가 소중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혁명은 단지 권력을 장악한 정치세력의 교체에 그치고 말 뿐이지요. 정치권력을 장악하는 일이야말로 사파티스타에게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이라는 당신의 말은 이런 점을 지적한 것이 아닌가 싶어요."(pp.244~245)

책에서 지적했는데, 현재의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는 건 과거 그 자체가 아니라 '인식된 과거'일 가능성이 높다. 현실도 그렇다. 사람들의 실천을 지배하고 특정한 방향으로 유도하는 것은 엄연한 현실 그 자체가 아니라 사람들이 인식한 현실이라는 것.

선거에서 표를 던지거나 특정한 정책이나 문화적 제안을 지지하는 등의 사회적 실천을 지배하는 것은 일상의 경험보다는 이데올로기적 고정관념일 때가 더 많다. 우리는 그것을 흔히 봤고 경험했다. 아직까지도 그것이 이 사회에서 통용된다. "국사는 흔히 이데올로기의 편이다. 한국 민족, 일본 민족, 폴란드 민족, 유대 민족 등을 동질적이고 단일한 실체로 본질화시키기 때문이지요." (p.374)

꼭 세계를 넓혀야 될 의무는 없다. 좁은 세계에서 복작거리다 뒤져도 그만이다. 하지만, 세계를 넓히는 것은 삶을 좀 더 풍성하게 재밌게 만드는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 이 책은 그런 기반을 제공한다. 엄청 큰 것은 없다. 그런 걸 바라는 것도 우습고. 18명 인물에게 보내는 편지를 인터셉트해서 살짝 훔쳐본다고 생각하고 봐도 좋겠다. 연애편지는 아니지만, 당신의 흥미를 끌만한 요소나 인물이 나오면 그 재미가 쏠쏠찮다.

알퐁스 도데, 다시 생각해봐라


참, 그리고 왠지 반가웠던 이야기. 나는 계급적 폭력 때문에 알퐁스 도데의 《별》을 무척 싫어하는데(나중에 언급할 기회가 있다면 다시!), 임지현은 알퐁스 도데의 반동성(!)을 알려준다.  

왜 일본과 한국에서 알퐁스 도데가 그렇게 유명하고, 일 제국주의 국어 교과서에 수록됐던 《마지막 수업》이 왜 한국 교과서에도 실려서 질긴 생명력을 발휘하는지, 그 궁금증을 풀어준다. 언어적 민족주의를 정당화하는 아주 좋은 교재! 뭐, 연좌제는 아니지만, 악시옹 프랑세즈라는 프랑스 극우파 조직에 알퐁스 도데의 아들이 중요한 활동가로 있었음을 알려주는 이야기까지.  

옛 기억속에 혹시 알퐁스 도데가 아름답게 미화돼 있다면, 부디 다시 생각해보시라. 《별》이 진짜 아름다운지, 《마지막 수업》이 정말 감동적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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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윙보이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한 달여의 항해를 마치고 닻을 내렸다.
 
무적함대 스페인의 월드컵 첫 우승, 공식적인 결론은 그렇게.
마스코트 자쿠미와 남아공의 새로운 아이콘 부부젤라는 이제 과거 속으로.

스페인은 '무관의 제왕'이라는 지겨운 수사를 벗고 웅비할 테고,
스페인 아닌 팀들이야, 4년이라는 권토중래의 시간을 가질 테고,
치맥 등과 함께 즐거움을 만끽한 팬들이야 다시 묵묵히 일상과 마주할 터.

내 나름의 이번 월드컵 결산.

1. 지난 2006년 결승전 지단의 박치기만큼의 임팩트는 아니지만,
스페인의 우승을 확정 지은 이니에스타의 결승골 세레모니는 월드컵 피날레로서 손색이 없다.  


경고를 감수하고, 웃통을 벗어던지며 이니에스타가 전한 메시지.
"Dani Jarque siempre con nosotros (다니 하르케, 언제나 우리 곁에 혹은 다니 하르케, 항상 우리는 함께야!)."

지난해 심장마비로 갑작스레 사망한 에스파뇰 주장이자 친구인 다니엘 하르케에게, 그리고 아직 그를 기억하는 팬들에게 보낸 메시지. 그가 받은 경고는 어쩌면 훈장의 다른 이름. 살아남은 자가 먼저 세상을 떠난 친구에게 할 수 있는 최상의 무엇. 그 아름다웠던 별, 이니에스타. 역시나 소심했던 월드컵에 감동을 안겨준 피날레.  

스페인, 다소 늦된 것 같지만 이번 월드컵 우승, 축하한다. ^^ 
문어의 힘이었나! ㅋㅋ 

 

2. 내게 월드컵은, 알흠다운 몸의 향연을 볼 수 있는 장일 뿐 아니라,
세계를 넓힐 수 있는 창이다. 

가령, 예를 들어 지난번 2006 독일 월드컵에서 박치기 지단을 통해,
이렇게 나의 세계를 넓힌 경험을 했다.

'박치기' 지단이 아름다운 이유

2006 독일월드컵이 막을 내렸다. 이탈리아의 우승으로 ‘공식적인’ 마무리가 됐지만, 많은 사람들은 우승팀보다 ‘지네딘 지단’을 더 연호하고 있다. 월드컵 우승팀보다 진 팀의 개인에게 관심이 쏟아지는 이 기이한 풍경. 특히 결승전 연장에서의 그의 퇴장에 여운이 남는 것 같다. 어찌 보면 불명예스런 퇴장이었지만, 지단을 향한 애정은 그 퇴장을 더 안타깝게 만들더라.

영화평론가 김영진은 지단의 퇴장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지단의 불명예스러운 퇴장은 슬픈 일이다. 지단이 쓸쓸하게 라커룸으로 들어가는 순간에 월드컵은 이미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 도덕적으로 지탄받을지 모르지만 나는 이상하게도 그의 행위가 가식 없는 순수한 스포츠맨의 뒷모습으로 보였다. 지더라도 책략을 부릴 줄 모르는 고수의 모습으로.. 그런 의미에서 지단의 퇴장은 어느 대회 때보다도 소심했던 올해 월드컵의 피날레로 또한 적절했던 것이다..”

나는 전적으로 이 의견에 동감한다. 지단의 은퇴는 그저 유명 축구스타의 은퇴와 달랐다,고 나는 생각한다. 단적으로 프랑스는 준우승에 그쳤지만, 지단은 월드컵에서 최고의 활약을 펼친 선수에게 주어지는 골든볼 수상자가 됐다. 서프라이즈~ 지단, 과연 넌 누구냐!

“세상에는 축구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다”

개인적으로 축구를 그닥 즐겨보진 않는다. 그럼에도 지단의 존재감은 내게 뚜렷하게 각인돼 있다. 이번 월드컵이 그의 마지막 무대라는 사실을 알곤, 적잖이 안타깝기도 했다. 그래서 결승전에서의 나의 관심사는 오로지 ‘지단’. 그렇다 지단의 은퇴경기다. ‘레블뢰’ 유니폼을 입은, 프로 축구선수로서의 그의 몸짓과 발놀림은 이제 더는 볼 수 없을 터이기 때문이었다.

이번 월드컵서 ‘늙은 수탉’이니 ‘힘 빠진 호랑이’니 하는 프랑스 대표팀과 함께 지단의 경기력을 놓고 실망하고 조롱하는 이야기들이 난무했지만, 상관없었다. 물론 그것은 단순히 전성기 때와 비교해 세월을 머금었음을 인정했기 때문은 아니다.

지단의 공식 홈페이지(http://www.zidane.fr)


그건 그가 바로 ‘지단’이기 때문이다.

내가 알고 있는 지단은 ‘축구선수’ 이상이다. 알제리 이민자의 아들로, ‘에트랑제’(이방인)였던 그는 여느 ‘셀러브리티’(유명인) 축구선수와 달랐다. 그는 최고의 축구선수이자 스타플레이어였지만, 그저 셀러브리티에 머물지 않았다.

지단은 늘 어떤 이슈 앞에 선명한 자신의 생각과 지지를 호소했고, 나는 그 입장에 동의하고 자시고를 떠나 그런 모습이 좋았다. “세상에는 축구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다”는 말이 최고의 축구선수로부터 나오는 것은 색다른 경험이다. 물론 축구선수를 좋아할 때 ‘축구(실력)’만으로 좋아해도 전혀 무방하다. 그건 누군가를 좋아하는 자신만의 기호일 뿐이다.

어쨌든 내겐 지단을 좋아하고 존중할 수밖에 없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가 차곡차곡 쌓였다. 다른 사람에게도 그런 비슷한 경우가 있는 걸 보고 내 편린들이 마냥 찌질한 것만도 아닌 듯싶은 안도감도..ㅋㅋ 글고 지단의 말을 찌질한 직딩인 나는 다르게 활용해 봐야겠다. “세상에는 직장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다”고..^^;;

지단이 내게 처음 온 것은 1998년 프랑스 월드컵. 그땐 착한 축구실력을 가진 최고의 플레이어였다. 당시 브라질과의 결승전에서 2골을 쏘며 프랑스의 우승에 착한 기여를 한 그의 플레이는 인상 깊었다.

지단이 내게로 왔다...

그리고 지단을 새롭게 인식한 계기는 2002년 프랑스의 대선이었다. 당시 극우파 장 마리 르펜이 본선에 올랐다. 참고로 르펜은 98월드컵 당시 프랑스 대표팀을 “인위적으로 만든 다인종팀”이라거나 “대표팀 선수들 가운데 유색인이 너무 많다”며 뻘소리를 해 댄 바 있는 작자다.

여느 축구선수라면 르펜이 본선에 올랐다는 그런 사실로 왈가왈부하지 않는다. 뭐 그런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 어쨌든, 지단의 말은 (프랑스 대선과 상관이 없는 나임에도 왠지) 짜릿했다. “나는 프랑스인이라는 사실이 자랑스럽지만 요즘 일어나는 일은 전혀 만족스럽지 않다.” 극우파의 본선 진출이 달갑지 않던 이들에겐 이 말이 얼마나 짜릿했을까. 일종의 대리만족. 지단은 르펜의 인종차별적 발언에 그는  상대 후보인 자크 시라크를 공개적으로 지지하기도 했다.

그리고 2004년 포르투갈서 열린 ‘2004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 2004). 결승전이라고도 불렸던 프랑스-잉글랜드 예선의 놀라움, 기억하는가. 전광판 시계는 멈추고 0-1 거의 패배 직전의 레블뢰. 추가시간 3분 지단의 드라마 같은 2골이 터지고 레블뢰의 극적인 역전승. 90분간 웃다가 마지막 3분, 지옥으로 떨어지면서 슬픔의 도가니탕에 푹 빠져버린 잉글랜드는 주장 데이비드 베컴의 페널티킥 실축을 되새김질 할 수밖에 없었다.

이날 경기의 극적인 역전과 지단의 활약상을 리와인드하자는 것은 아니다. 지단의 진가는 경기가 끝난 뒤 나온다. 그는 경기 후 가진 인터뷰에서 “이런 경기가 끝나면 나는 늘 진 팀에 먼저 마음이 가게 된다. 나는 지금 데이비드를 생각한다”고 말했다. 같은 팀, 레알 마드리드에서 함께 뛰는 베컴을 위로한 것이다. 그는 진정한 승자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는 승자로서의 자만보다 패자에 대한 배려심을 잃지 않았다. 승리에 겨워 날뛰는 모습도 좋다. 그만한 자격도 있고, 사람이라면 그게 인지상정 아닌가. 그러나 지단의 말은 내게 참으로 인상 깊었다. 누군가는 그것을 연출된 것이라 힐난할지 몰라도 나는 그의 진심을 믿고 싶었다.

이번 월드컵에서 포르투갈과의 준결승에서 경기가 끝난 뒤 피구에게 건넸을 말도 익히 유추가 된다. 두 남자의 멋진 포옹. 당시 34세(1972년생) 두 동갑내기 세계 최고의 축구선수들이 보여준 포옹 이상의 무엇. 각각 알제리 이민자의 아들로 마르세유 뒷골목에서 공을 찼던 지단과, 리스본의 노동자 거주지역에서 태어난 피구는 뭉클한 무엇을 . 월드컵은 그렇게 단순한 스포츠행사로 그치지 않는다.
 


세월은 흘러 2005년, 프랑스의 이주민들의 집단 저항. ‘폭동’이라 불러대며, 이주자들의 애환과 차별을 애써 무시하고, 프랑스의 분열을 얼토당토않은 ‘순혈주의’의 관점으로 짖어댔던 미친 작자들의 개념없음을 나는 기억한다.

지단은 말했다. “그들의 방화와 파괴 행위를 지지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충분히 이해한다.” 극우파의 ‘반이민’정책에 반대의 목소리를 낸 그를 나는, 기억한다. 그가 단순히 이민자의 아들이라서만은 아닐 것이다. 출신은 이방인이지만, 프랑스인들 누구도 그를 이방인으로 생각지 않는다. 그는 이미 그것을 넘어선 명실상부한 ‘대표’프랑스인이다. 프랑스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인물에 매년 1, 2위에 오르는 그를 보면 알 수 있지 않나. 그는 차별을 반대한다. 누구보다 차별이 가져올 폐해를 안다.

어쩌면 이번 지단의 퇴장과 관련한 구구한 추측 어쩌면 억측은 그의 태생과도 연관이 있는 듯하다. ‘마에스트로’를 그라운드에서 몰아낸 이탈리아 마테라치의 입놀림을 놓고 독화술까지 동원되는 판국. 명예로운 은퇴무대를 장식하고 싶었을 지단이 ‘박치기’까지 해가며 퇴장당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추측.

마테라치가 지단에게 무엇을 했는지는 당사자들 외에는 며느리도 모른다. 각국의 언론들은 앞 다퉈 마테라치가 지단 가족을 모욕했다는 얘기, 인종차별 발언 가능성 등을 제시한다. 마테라치의 ‘입치료’가 필요했던 것일까. 그건 아직 알 수 없지만, 전 세계가 그의 퇴장을 얼마나 안타까워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마테라치가 지단에게 "모욕적인 말을 했다"고 시인했다는 보도가 있었지만 좀더 지켜봐야할 듯 싶다.
 

지단의 박치기 장면 캡쳐


지단의 ‘박치기’가 지지를 받는 이유?

지단은 인종차별에 민감한 모습을 보여 왔다. 앞서 언급했듯 그는 부모 모두 프랑스 식민지였던 알제리 출신의 이민자 2세다. 지단은 98년 월드컵 때도 사우디아라비아와의 조별예선에서 상대 선수를 발로 밟아 퇴장을 당한 바 있다. 당시 밟힌 상대는 지단에게 “이 북아프리카 출신의 야만인아”라는 식의 인종차별적 발언을 행했고, 지단이 이에 발끈했다고 알려졌다.

지단의 분노와 액션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추정도 앞선 지단의 여러 말과 행동에 근거한다. 말 수 적고 묵직한 지단은 꼭 필요할 때 잊지 않고 입을 열고, 르펜을 반대했던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였던 것 같다.

지단은 그와 관련, 트라우마를 갖고 있을 법하며 인종차별에 분노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있다. 알제리는 프랑스의 아킬레스건이다. 지단의 아버지는 알제리 산악지역 소수민족 출신으로 알제리의 독립투쟁 때 프랑스 편에 서서 싸운 전력 때문에 알제리 이민자들로부터도 냉대를 받기도 했다고 한다.

무엇보다 프랑스 정부의 검열과 주류 언론의 은폐로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1961년 10월17일의 ‘파리대학살’이 정점에 있다. 프랑스 식민지를 벗어나 프랑스에 거주하던 알제리 이민자들에겐 통금령이 부여돼 있었다. 말도 안 되는 차별이었다. 이에 알제리 민족해방전선(FLN)이 주도가 돼 이를 해제해 달라며 수천명의 알제리인들이 시위를 벌였다. 그러나 프랑스 정부는 무력진압에 나섰다. 총기는 불을 뿜었고 200여명의 알제리인이 학살당했고, 센강으로 던져지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했다.

프랑스 경찰은 무력충돌은 우연이었으며 단 3명의 알제리인만이 숨졌다고 ‘거짓’ 발표했다. 이 학살은 2차대전 중 나치에 협력, 유대인을 프랑스에서 쫓아냈던 경찰청장 모리스 파퐁의 명령에 의한 것이었다. 차별·분리주의 정책의 되풀이. 프랑스 정부는 이를 쉬쉬하다가 1988년에야 학살극을 인정하고 희생자들을 위한 위령패를 세웠다. 그러나 아직 단 한명의 학살 가담자도 정식 기소되지 않았다고 한다. 프랑스가 짊어진 식민지배와 학살의 부채감은 아직 남아있다.

지단이 인종차별에 대해 유난 민감한 것도 이런 점들에서 찾아볼 수 있지 않나 싶다. 그리고 아직 명확한 이유는 밝히질 않았지만, 그의 퇴장이 인종차별적인 발언과 연관이 돼 있을 것이란 추정이 박치기가 지지받는 이유가 아닐까도 싶다.

지단이 아름다운 이유

그랬다. 지단은 그저 셀러브리티에만 그치지 않았다. 최고의 축구선수로서만 존재하지 않았다. 유엔개발계획(UNDP)의 친선대사로 가난한 자의 편에 섰고 장애 아동을 돕는 모임에 성심껏 참여한다고 한다. 사실 나는 “축구선수는 축구만 잘하면 되지”라는 말에 반대하지 않고 그닥 거부감도 없다. 누구든 선수를 좋아하고 말고 하는데 자신만의 기준이나 취향만 있음 된다. 이건 옳고 그름도 아니고 그저 호불호다.

그래서 나는 베컴, 호나우두, 호나우지뉴, 박지성 등등도 나름 좋아한다. 그들은 축구 잘하는 선수들이다. 그러나 그들이 지단과 같은 존재감으로 다가오진 않는다. 나는 지단을 존중하고 그의 말과 행동에 귀를 기울인다. 지단은 내게 축구만이 아닌 ‘세계’를 생각하게 만든다.

그런 지단의 마지막 게임이기에 나는 어설프게도 프랑스가 승리하길 바랬다. 누가 이겨도 사실 상관없지만, 내가 존중하고 좋아하는 지단이 마지막 게임에서 승리하는 모습, 그 모습을 바라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감정이지 않았겠는가.

[지단, 21세기의 초상]의 한 장면


그리고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지단에 대한 다큐, < 지단, 21세기의 초상 >(Zidane, Un Portrait Du Xxie Siecle)을 봐주는 센스. 참고로 이 영화는 칸 영화제 비경쟁부문에 초청되기도 했다. 그러나 쉽게 생각할 수 있듯, 단순하게 지단의 축구인생을 조명하는 다큐가 아니란다. 지난해 4월23일 비야레알과의 경기, 17대의 카메라가 동원돼 지단 한 명만을 좇는 이야기(?).


공동 연출을 맡은 파레노감독의 말에서도 한 가지 팁을 얻자. “제작진은 21세기를 대표하는 한 남자의 초상을 그리고 싶었고 지단이 이 주제에 적합한 인물이라는 데 착안했다. 지단은 축구팬들에게 중요한 무엇인가를 대표하면서 동시에 축구 이상의 뭔가를 보여주고 인물이다. 기획 때부터 지단을 염두에 뒀으며 그가 수락하지 않으면 포기할 생각이었다.”

그의 떠남이 아쉽지만, 그가 아예 우리 곁을 떠나는 건 아니다. 사람의 있을 곳이란, 누군가의 가슴 속밖에 없다지 않은가^^;; 중원의 지휘자, 마에스트로.. 그를 명명하는 숱한 닉네임들은 오로지 지단만을 위해 존재한다. 그가 아니면 감히 누가 달쏜가.

박수칠 때 떠나라~

특히나 그는 자신을 속이지 않음에 더욱 믿음이 간다. 월드컵에서도 힘든 모습을 보이며 체력적 한계는 어쩔 수 없는 모습을 보였던 그였기에, 앞선 그의 은퇴 발언은 남달랐다. “지금까지 해 온 것만큼 잘할 수 없을 것 같아 은퇴를 결심했다.” 지난 2001년 현 소속팀 레알마드리드로 옮길 때 그의 몸값은 무려 7200만유로(860억원), 한해 연봉만 80~90억원에 이른다. 그저 한해 정도 더 뛰어도 엄청난 연봉이 보장되지만, 그는 지금까지 해 온 것만큼 잘할 자신이 없어 은퇴한단다. 여느 찌질한 한국의 노블레스들과 다르다.

이럴 때 이형기 시인의 '낙화'를 떠올리는 것은 자연스럽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리고 우리는 그에게 박수를 친다. “박수칠 때 떠나라”를 몸소 실천하는 그에게. 지단의 모습이 바로 그렇다. 이 아름다운 남자의 모습을 나는 잊지 않고 기억할 것이다. 마에스트로의 퇴장은 한 시대 축구의 역사가 접히는 순간과도 같지 않은가.

뭐 지단이 저 멀리, 말도 통하지 않는, 찌질한, 청년의 서툰 연서에 고마워할 일도, 신경쓸 일도 없겠지만, 그냥 한마디 해야겠다.ㅋㅋ

지단 행님~ 수고했어요. 그라운드에서의 당신 모습은 마지막이겠죠? 앞으론 더 볼 수 없게 될 터이니, 아쉽긴 해도 축구보다 더 중요한 일을 해도 좋고 안 해도 좋지만, 당신이 있어 그래도 이 세계가 약간은 덜 슬퍼진 것 같네요. 아름다운 당신, 고맙습니다. 꾸벅 ^.^

'(내가 발붙이고 있는) 세계를, 세상을 생각하게끔 만드는 사람'
나는 그래서 지단을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당신이 생각하는 지단은 어떤가?


축구선수가 사람들에게 어떻게 세계를 사유하게 해주는지 알려준 좋은 예.
이번 월드컵에서 프랑스 축구팀은 비록 예선전에서의 논란을 비롯해 월드컵에서 거둔 성적 때문에 국가적인 풍파를 겪었지만,
지단도 그 논란의 와중에 입길에 오르기도 했지만,
내게 지단은, 세계를 사유할 수 있게 만든 알흠다운 사람.

이번에도 나는, 드록바와 정대세를 통해, 독일 축구팀을 통해 세계를 엿봤다.

우선, '드록신'이라 불리는 코트디부아르의 디디에 드록바(첼시). 
과거 그 이름과 명성을 들은 바 있지만, 이번 월드컵을 통해 좀 더 확실히 알았다. 그가 어떻게 세계와 관계를 맺고 있는지. 

이런 말을 봤다.  
"드록바는 검은 예수다." 혹은,
"드록바는 검은 예수가 아니다. 예수가 하얀 드록바다. 록렐루야."
왜 이렇게 말을 할까. 단지 축구를 잘한다는 이유만으로? 궁금했다.

아쉽게 16강에 진출 못하고 예선전에서 탈락한 코드디부아르는,
그 이름도 생소했던 코트디부아르는,
아프리카 서부의 세계 최대 코코아 생산국이다.
코코아라고 하니 공정무역 초콜릿도 확 떠올랐는데.

코트디부아르의 아픔을, 세계의 상처를 전달한 메신저가 드록신이었다.
프랑스 식민지였다가 독립한 코트디는 2002년부터 5년간 내전을 겪었다.
반군인 북부 이슬람 세력은 정부를 장악한 남부 기독교 세력이 코코아 수출의 이득을 갈취하고 있다며 쿠데타를 기도했다 실패, 이내 내전이 벌어졌다.

'피의 초콜릿(blood chocolate)'.
반군과 정부군의 전쟁자금 조달책으로 사용된 코코아.
전혀 의도하지 않았으나 내가 먹었던 초콜릿이 저 먼 곳에서 서로를 죽고 죽이는 자금으로 사용됐다는 충격적인 사실.

드록신은 그런 와중에, 지난 2005년 10월, 무릎을 꿇고 이렇게 호소했단다.
2006 독일월드컵 본선 티켓을 획득한 직후 생중계 카메라 앞에서였다.

"사랑하는 조국의 국민 여러분. 적어도 1주일만이라도 무기를 내려놓고 전쟁을 멈춥시다."

정부군과 반군은 드록신의 호소에 총질을 멈췄다.
그것이 비록 1주일이었다고는 하나,
건국 최초로 총성이 울리지 않았던 평화의 순간을 만들었다.
2년 뒤, 코트디부아르 내전은 종식됐고.


드록신이 만든 평화의 순간. 한 명의 축구선수가 만들 수 있는 평화의 시간.
축구만 잘해도 그것으로도 충분하지만,
그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잊지 말아야 할 진리를 몸으로 실천했다.

드록신은,
2007년 꾸준한 자선활동과 아프리카의 문제점에 대해 경각심을 불러일으킨 공로로 UN 홍보대사로 임명됐으며,
2008년 디디에 드록바 자선 협회를 설립, 자신의 재산은 물론 첼시 선수들과 구단주를 설득, 그들의 도움을 얻어 아프리카 지역에 의약품 및 식음료, 축구공과 유소년시설 등의 지원을 시작했고,
2009년 개인재산 60억을 코트디부아르 종합병원 자금으로 기부하는 한편,
2009년 나이키의 아프리카대륙의 교육환경 개선 및 에이즈 치료를 위한 Lace up & save lives 캠페인 동참, 홍보대사로 임명됐다.

왜 그에게 드록'신(神)'이라는 작명을 선사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부상 등으로 이번 월드컵에서 그의 활약을 충분히 보지 못한 아쉬움이 있지만, 나는 다시 초콜릿을 생각하고, 코트디부아르와 아프리카의 현실을 생각할 수 있었다. 드록신에게 감사를! 인민을 위한 축구선수, 하나.


축구선수로서 드록신을 가장 닮고 싶다고 한,  
인간 불도저, 인민 루니, 우리 빠박이 정대세(의 눈물)도 빠질 수 없겠다.

대세(大世). 이름, 재밌다 싶었더니, 이런 뜻.
'세계를 향해 크게 날개를 펼치라.'
그렇다면 그는 이름대로 비상본능을 발휘하고 있는 셈. 당연히 현재진행형.
언젠가 혹시나 나도 아이를 갖게 된다면, 그 아이의 이름은 대세로.^^
물론 미래의 아내에게도 동의를 받아야겠지만.

대세는 한국 국적을 가진 북조선 축구선수로 월드컵에 출전했다.
이땅의 분단 현실이 가져온 기묘한 조합인데,
그에겐 또 하나의 세계 혹은 국적(나라)가 있다.
"나의 모국은 일본이 아니에요. 일본 속에 또 하나의 나라가 있죠. 바로 '재일'이라는 나라에요. 북한도, 한국도, 일본도 아닌 '재일'이라는 나라가 나의 모국이고 재일인이라는 존재를 널리 세상을 향해 알리는 것이 제 삶의 주제가 아닐까 싶어요."

세상은 어디에든 속할 것을 강요(!)하지만, 그는 가뿐히 그것을 넘어선다. 
재일(在日). 자이니치.
지구 어디에도 없는 국적이며, 
그것은 어쩌면 분단의 아픔과 슬픔을 고스란히 투영한 것이지만,  
그는 단독자처럼 당당하고 세계의 옹졸함과 구획짓기를 폭로한다.  

물론 그는 '조선'적을 갖고 싶었다.
어쩔 수 없는 법적인 한계로 그리 못했지만.
그의 표현대로라면, "재난이 일어났을 때 모두가 피난 가는 방향과는 거꾸로 재난 발생지를 향해 스스로 나아가는 것과 같은 짓"이었지만,
그는 그것을 넘어선다.  
"자신의 꿈을 향해 달려가는 저 자신을 오히려 자랑스럽게 생각했습니다."

축구공을 잘 차는 축구선수로서 그의 진가는 이미 확인됐고,
대세를 통해 나는 볼 잘 차는 것 이상의 사회적 인간을 만난다.
누군가는 볼이나 잘 차면 되지, '왠 오지랖?'이라 여길지 몰라도,
나는 세상을 대하는 그의 태도와 자세에 감동 한 방 먹는다.

"지구온난화로 북극과 남극의 얼음이 녹아내리는 걸 걱정하다 잠 못 자고, 아프리카가 서서히 사막화되는 걱정으로 밤중에 모금함에 돈을 넣으러 편의점에 가는 등 별짓을 다 합니다."

뭣보다 대세는 눈물이 흔해빠진 남자. 사내자식이 뭔 눈물이냐고?
아니, 그의 정서적 감응 '능력'이야말로, 그가 '세계'적인 선수로 발돋움할 수 있는 중요한 요인이 아녔을까. 물론 혼자만의 생각. ^^; 

"이제까지 몇 리터나 되는 눈물을 흘렸을지. 애정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도 눈물을 흘립니다. 물론 <겨울연가>를 볼 때도 울어버렸습니다. 대자연의 동물들을 보여주는 프로에 특히 약합니다. 약육강식이 지배하는 자연계의 냉혹함을 보고 있으면 눈물이 납니다. 여성 팬 여러분, 이런 남자는 안 됩니까?"
 
멋지다. 정대세.
중국의 한 여성이 그에게 결혼해달라는 구애동영상을 날리는 것,
끄덕끄덕할 만하다.

그래, 대세의 세계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그 세계를 통해 나 역시 세계를 만나고 넓힌다. 
고맙다, 대세. 


내가 이번 월드컵을 즐길 수 있었던 아주 충분한 이유. 
인민을 위한 축구선수(들)는 있다.
 
더불어, 일부 오해("준수는 야큐만 좋아하고 축구를 싫어한다")에 대한 해명(?).
축구(경기 뛰기)를 무척 좋아하는만큼, 축구(경기 보기)도 좋아한다. 
특히나 세계 쵝앙의 선수들이 펼치는, 몸과 몸이 부딪히는, 그 근육들끼리의 파열과 재간이 드러내는 아름다움을 어찌 거부할 수 있으랴. 

다만, 월드컵에서 내가 거북살스러운 것은,
빨간색 옷을 한결같이 맞춰입고 한 목소리로 외치는 대~한민국.
그 안에 내재된 듯한 광기를 띤 집단적인 열정.
분별없는 열정이라 불러도 좋을 그 과도함. 
즉, fanaticism. '광신주의'라고 해석되는 그 무엇 때문이다. 

혹자는 내게 '넌 애국심도 없냐'고 타박 혹은 농담을 건네는데,
나는 축구를 통해 발현되는 일종의 패나티시즘이 영 불편하다.
애국심, 일치단결, 조국을 향한 과도한 열정 같은 것을 강요하는 기제로서의 축구가 못마땅할 뿐. 

그것이 축구의 속성이라고? 
글쎄, 노동자의 운동으로 탄생했던 축구의 태생을 보자면, 그건 과도하다.
유추하건대, 국가를 대입하는 건, 지배세력의 농간(?)이 아녔을까.

내가 이번 월드컵에서 한국팀에 애정이 가장 많이 투영됐던 건,
16강전에서 우루과이에 졌을 때였다.
빗속 차두리의 눈물. 흙.


어느 경기든 끝났을 때,
나는 이긴 팀 선수들의 희희낙락 미소보다,
진 팀 선수들의 낙심한 표정에 더욱 눈이 꽂히고 마음이 짠했다.

4년 후, 나도 기다린다.
월드컵을 통해 내 세계도 그것이 아주 초큼이라도, 넓어질 테니까.

당신도, 이번 월드컵 잘 보셨지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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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은,
사는 것이기보다 버티고 견디는 것,
이라고 믿는 내게,
선택은 그래서 중요하다.
버티고 견딜 수 있는가,
지속가능할 수 있는가의 문제. 

사회적기업가 학교를 선택했다.
다행이다. 낙마 안 했다. 수료했다.
장하다. 나에게 토닥토닥. 
 
그럼에도, 나는 안다.
다음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지금보다 더 잘해내는 것이 중요하다.


솔직히,
나는 사회적기업이 이 미친 세상의 완벽한 대안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사회적기업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글쎄.
내가 생각하기에, 그건 '진짜' 혁명이 아니면 안된다.
기득권을 송두리째 날려버리는, 체제를 완전히 바꿔버리는, 그런 혁명.
사람이 희망이라고?  
음, 나는 사람을 믿지 않는다기보다 사람의 가변성을 믿는다.
아침의 주림을 저녁의 다담상으로 잊는 것이 사람이다. 나도 그렇다.

물론, 아주 사소하고 작은 균열이 세상을 조금씩 바꿀 것이다. 아마도.
김성기 교수님이 뒷풀이에서 물었다. 무엇이 좋았고 아쉬운 건 뭐였냐고.
나는 좋은 것에 대해선 그랬다.
다른 무엇보다 비슷한 마음을 가진 동지들을 만난 것이 가장 좋았다고.

마음의 동지.
나는 그것이 영원하리란 기대 따윈 않는다. 살아보니 그렇더라.
동지들의 마음이 앞으로 어떤 행동으로 발현되고,
어떻게 더 잘해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다만, 어설프게 이런 생각은 있다.
우리 동지들이 메이저가 아닌 '인디'로 계속 남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인디는 자본의 극강마수에 포섭되지 않고,
무한이윤과 암세포의 성장이 미덕인 흉포한 자본에 복무하지 않는 것.
인디는 그 자체로 정체성이자, 삶의 태도와 자세다.  
인디에서 메이저가 되는 것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인디 그 자체로 한결같이 살면서 달팽이의 속도로 꾸준히 거니는 것.
그것을 확고히 믿는다거나 확신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되면 좋겠다.

사회적기업(가)이,
한 시대를 대표하거나 시대적 대세(트렌드)로서 자리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이라면,
꾸준히 일관되게 지키기로 마음 먹은 것을 지키면서 살아가는 게 아닐까.
내가 그랬으면 좋겠고, 누군가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으면 좋겠다. 


《절망의 구》에 대한 서평이었을 것이다. 이런 말이었다.
"가장 끔찍한 건 절망의 구에 쫓겨 달아나면서 점점 그 구를 닮아가는,
자신 속에 잠재된 구를 보지 못하는 인간 군상의 모습이다."

아니라도, 그것은 어쩔 수 없다.
이것이 행복하지 않다면, 즐겁지 않고 고통스럽다면,
나는, 우리는, 과감히 이것을 버릴 줄도 알아야 한다. 
그런 순간이 오지 않길 바라지만. 


태어나 처음으로 신영복 선생님을 뵀다.
가장 보통의 사람인 내게 이런 영광이 올 줄은 몰랐다.
더구나 신영복 선생님 이름이 박힌 수료증, 거참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수료생 가운데 사회적기업을 일군 사람을 위해선,
직접 캘리그래피를 써주시겠다고 하셨다.
이거, 확 구미 '땡'기는 제안이지 않은가.
 


어쨌든, 그랬으면 좋겠다.
 

누구보다 크게 울 줄 알고
누구보다 견디고 버틸 줄 알며
누구보다 정당하게 분노할 줄 아는데다
누구보다 싸울 줄 아는 한편
누구보다 용서할 줄 아는,

그런 사람.
어쩌면 영원히 오지 않을 내 희망사항.

아, 그러기 위해서는,
파라과이가 우승했어야 했다. ㅠ.ㅠ
파라과이 축구팀이 8강전에서 떨어져서 너므너므 아쉬웁따!

왜냐고? 에이, 알면서 뭘 물어보나!
'형제의 나라, 파라과이'니 뭐니 하는 호들갑은 떨지 않겠다.
다만, .....................................


.........................다시 태어난다면, 음, 그녀의 휴대폰으로 태어나는 것, 
안되겠니, 응? ^^;;  

뭐? 변태라고? 맞다, 난 변태준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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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회대.
약 1년 전부터 얼굴을 대면한 성공회대와 관련된 사람들.
물론 그들은 아마 거의 나를 알거나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그러면 어떠리. 나는 좋은 걸. ^^


한홍구 교수님
이갑용 선생님
이지상 선생님
김성기 교수님
탁현민 교수님

그리고 지금 나는,
성공회대 사회적기업가학교를 다니고 있다.
더불어 혹은 따로또같이 연대를 꿈꾸는 사람들과 함께.

물론 태생적 시니컬로 인해,
다른 세상이 올 거란 기대는 하지 않지만,
그러면 어때. 그저 바라면서 뚜벅뚜벅 발걸음을 옮길 뿐.

1년 전, 한홍구 교수님의 강연을 듣고 이렇게 정리했다.
그러니까, 노무현 대통령 서거 직후였지. 1년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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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을 딛고 용의 추락을 부엉이의 비상으로 승화시켜야 한다”
『특강 : 한홍구의 한국 현대사 이야기』 (한홍구 교수 강연)


지난 5월의 어느 토요일 아침, 차마 믿기 어려운 뉴스가 전달됐다. 질곡 많고 얼룩 많은 대한민국 현대사에 또 하나 아로 새겨진 깊은 슬픔. 그렇게 지난 한 주, 대한민국에는 슬픔이 물결쳤다. 소중한 것은 잃고 나서야 그 가치를 알게 된다는 말, 많은 이들이 새삼 깨달았다.

그는 멀게는 신라이후, 가깝게는 건국 이후 강고하게 유지돼 온 기득권에 의미 있는 흠집을 냈던 비주류 정치인이었다. 그 무모함에 ‘바보’라는 타이틀이 붙었고, 그는 세대 아닌 세력 교체를 추구했다. 그렇게 그는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던 많은 이들의 가슴에 불을 질렀던 한국 현대사의 중요한 아이콘이었다. 권위로 포장된 불합리한 권력에 얼룩을 남겼던 정치인이 떠난 자리.

느닷없이 닥친 슬픔에, 믿기지 않을 법한 큰 사건 앞에 현대사 특강이 펼쳐졌다. 지난달 25일 신촌에서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가 ‘지금 이 순간의 역사’라는 테마로 독자들과 만났다. 앞서 한 교수는 지난해 10월부터 12월까지 한겨레교육문화센터에서 이뤄진 강의를 엮어 『특강 : 한홍구의 한국현대사 이야기』(한홍구 지음/한겨레출판 펴냄)을 지었다. 각자 가슴에 한 움큼의 슬픔을 품고 만난 대한민국의 어떤 현대사.

역사를 보는 관점

한 교수는 말한다. “우리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역사의 주류가 돼야 한다. 우리 현대사는 큰일이 많이 일어났다. 깜짝깜짝 놀랄 일이 많았다. 지난 토요일 아침에 그런 소식을 듣게 될 지 누가 상상이나 했겠나. 그 소식에 대해서도, 조선․중앙․동아일보와 한겨레․경향의 관점에서 보느냐에 달라진다. 똑같은 세상사, 사람에 대해서도 평가가 극과극이듯, 누구의 눈으로 역사를 볼 것인가가 중요하다.”


그 예를 한번 들어보자. 2009년. 사망 100주기를 맞은, 우리 역사에 굉장히 중요한 인물이 있다. 20세기 후반 큰 영향을 미친 한 인물과 제삿날이 10월26일로 같은 사람이다. 100년 전 그 사람. 이토 히로부미(이등박문). 두 사람의 제삿날이 같은 것은 물론 우연이지만, 한 교수 왈. “이런 우연만 쫓아가도 역사에는 재미난 일이 많다.”

그 이등박문을 쏜 의사 안중근. 깔끔하게 성공한 거사였다. 그러나 한 교수는 한 발짝 떨어져서 생각해보자고 한다. “비무장 정치인에게 숨어서 총을 쐈다. 테러인가, 아닌가.” 그러니까, 테러리스트 안중근.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상상하기 힘들다. 하지만, 곰곰 생각해보면, 이건 관점의 문제다. 누가 하면 테러고, 누가 하면 전쟁인가. 이라크를 맹폭한 미국의 공격. 그것도 이라크인들이 보기엔 분명, 테러가 아닌가.

“안중근 의사가 한 것은 테라라고 생각한다. 나는 테러를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어떻게 하면? 억압이 없어져야 한다. 총을 맞고, 이등박문이 했다고 전설처럼 내려오는 말이 있다. ‘누구냐, 조선 놈이냐, 빠가야로.’ 그의 관점에서 보면 안중근 의사는 바보천지고, 멍청한 테러리스트다. 조선을 근대문명으로 이끌려고 온 몸을 다해 조선을 보호하려는 마음을 몰라주고 총을 겨눴으니.”

그렇게 관점에 따라 세상사를 바라보는 게 달라진다. 한 교수는 영화 <라쇼몽>의 예를 든다. 중세 일본 사무라이 부부가 도적을 만나 아내는 겁탈 당하고 남편은 죽은 사건을 놓고 네 개의 시선에서 바라본 영화. “역사학자 사이에서는 역사에는 최소 네 개의 판본이 존재한다. 나, 너, 진실, 실제 일어난 일. 정리된 역사가 진짜 역사냐. 우리는 합리적으로 의심해야 한다. 그것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안목이 있어야 한다.”

역사는 진보할까


그렇다면 역사는 진보하는 것일까. 역사를 공부한 누구든 물음직한 이 질문. 100년 전과 비교한다면, 대부분 다 우리는 발전했다고, 진보한다고 말할 것이다. 그렇다면 과거 권영길 의원이 물었던 식으로 물어보자. 10년 전과 비교해, “살림살이 나아지셨습니까?” 그렇다면 당신의 대답은? “다들 이 질문에는 아니라고 한다. MB식으로 말하자면, ‘잃어버린 10년’이다. 살림살이가 나빠진 10년. 가슴 아프다. 그러나 한 세대 전과 비교하면, 어디가 더 살만할까. 물질적으로야 비교가 안 되게 좋아졌다. 그런데 우리네 삶도 같이 풍요로워졌나. 우리는 역사 속에서 우리의 삶이 좋아졌는지, 나빠졌는지,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다른 기준으로 보자. 100년 전에 비해 평등해 졌는가. 평등해졌다. 그때는 신분제가 살아있을 때니까. 그렇다면 60~70년 전과 지금은. 한 교수는 다시 신분제가 생기는 것이 아닌가 의심이 간단다. 그래서 결론은 평등해 지다가 삐끗해지면서 다시 벌어지고 있는 것 같단다.

“여길 오기 전, 한 기사를 봤는데, 한국 주류가 갖고 있는 뿌리 깊은 배타성을 다뤘다. 우리 역사는 그런 면이 있다. 보수층은 말도 못하게 뿌리가 깊다. 문자로 기록된 2000년 동안의 역사를 보면 단 한 번도 엘리트가 바뀐 적이 없다. 그 배타성이 노무현 전 대통령을 죽인 한 요인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중국과 비교해보면, 중국은 한마디로 알록달록하다. 200~300년 마다 확 바뀌었다. 엘리트들 판갈이가 자주 이뤄졌고 불판을 싹 바꿨는데, 우리는 어떤가. 우리는 2000년 동안 왕조가 3번 바뀐 나라다. 이런 경우가 흔치 않다. 왕조가 오래 지속됐고 보수층의 뿌리가 깊다.”

한 교수에 따르면, 제국주의에 협력했던 세력이 살아남은 경우가 딱 두 나라다. 우리나라와 남베트남. 그것도 남베트남은 북베트남에 흡수통일됐으니, 딱 하나 남은 것은 바로 한국이다. 그것도, 친일파 숙청을 못한 정도가 아니라 민족적 양심세력이 친일파에게 역청산을 당한, 어이없는 경우다. “일본놈 앞잡이가, 즉 떡고물을 받아먹던 놈들이 떡판을 차지”한 경우다.

우리 역사는 그런 절호의 찬스를 놓쳤다. “민주화는 친일청산의 다른 말이다. 우리가 진짜 민주화가 됐나? 내 생각에 이건 민주화도 아니고, 안 된 것도 아니다. 전직 대통령 2명을 감옥에 보낸 것은 대한민국 밖에 없다. 그런 대통령들이 이렇게 떵떵거리며 사는 것도 대한민국 밖에 없다. 이 나라 엘리트들은, 신라부터 한 번도 바꾸지 않았다. 그 특징은 오만방자가 하늘을 찌른다는 거다.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은 그런 의미에서 예사롭지 않다. 대통령 재직 시에 나도 욕을 많이 한 사람이지만, 저 비극적인 죽음을 보니 굉장히 슬프다. 특히 우리 역사가 갖는 벽이나 실체 같은 것들, 우리가 극복해야 할 그 무엇이 아닌가 싶다.”

그러니까, 과거 우리가 얘기했던 민주화는 완성이 아닌,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과거 청산도 제대로 이루지 못한 나라에서 민주화는 아직 멀었다. “저는 이를 바로잡는 과정이 민주화 운동이었다고 생각해요. 우리의 민주화 운동이 철저하지 못하고 한 번도 깨끗하고 완전하게 정리하지 못한 수십 년에 걸친 과거를 바로잡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p.70)

그런데, 진보에 대한 의문은 있다. 일본 무리들도 고종 장례식에 조선인들의 애도와 슬픔을 총칼로 막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시민들이 슬픔을 함께 나누기 위해 자발적으로 만들어놓은 분향소를 경찰들이 막고 부수는 행패라니. 우리는 대체 지금 어느 시대에 살고 있는 걸까.

아직 진행 중인 민주화


그러니까, 노무현 전 대통령을 찍은 사람들은 바로 변화를 바랐던 사람들이다. 무언가 다른, 민주화를 바랐던 그런 사람들. 노 전 대통령은 그런 87년의 거대한 물결, 민주화시대를 상징하는 인물 중의 하나다. “하루하루가 역사에서 굉장히 중요한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노 전 대통령의 비극은 한 시대의 좌절이라면 좌절이다. 그런데 그게 좌절로만 끝날까. 그렇지 않다. 그 슬픔을 딛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분명히 있다.”

박정희 신드롬은 이 같은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민주화와 살림살이의 나아짐은 분리된 것이 아니다. “국민소득이 60년대 초반에 비해 급격하게 늘었지만, 살림살이는 진짜 나아졌나. 국민소득은 200배 이상 늘었지만, 그 200배 만큼 우리의 살람살이가 과연 풍족해졌나. 불과 30년 새 우리는 출산장려국으로 바뀌었는데, 왜 애를 낳지 않느냐면 키우기 힘드니까 그렇다. 옛날에는 아버지 혼자 벌면서도 애들이 많아도 키울 수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두 명이 맞벌이를 해도 애 하나 학원 보낸다고 벌벌 떤다. 불과 한 세대 사이에 이런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그러니까 다시 돌아가, 민주화와 살림살이의 관계. “월급봉투는 사실 두꺼워졌다. 87년 민주화된 직후. 1953~1987년까지 파업은 1년에 백 여 건이 있었다. 그러나 87년 민주화항쟁 시절, 석 달 열흘 동안 파업이 3000건을 넘었다. 사흘이 1년이었던 시절이다. 그 시간 노조는 1200~1300개가 만들어졌고. 노조를 만들면서 임금인상이 된 거다. 그 전에는 경제발전만 했지, 분배한 적이 없다. 기업들은 파이를 키워야하는데 어찌 분배하냐고 변명만 하고 국가도 억누르고. 그러나 민주화되면서 군사정권은 자기 살기에 바쁘니까, 진짜 신나게 월급이 인상됐다. 그렇게 3년 동안 평균 300~400% 올랐다. 민주화가 되니까 가능했던 거다. 노동자 문화도 달라졌다. 잔업이나 철야가 없어지고 시간이 생기니 영화를 보러갈 수 있게 된 거고. 정치적으로 민주화가 되니까, 경제적 민주화도 이뤄졌다.”

그러니까, 정치와 경제를, 그러니까 민주화와 살림살이를 분리하는 것은 기득권의 공작(!)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민주화 항쟁 이후 3년이었다고 한 교수는 말한다. “딱 3년 월급을 그렇게 주다보니까, 자본가들은 아깝다는 생각이 든 거다. 노조 관리에 들어갔다. 정치권도 3당 합당을 통해 보수대연합에 나섰다. 국가권력이 정신을 차린 거다. 그렇게 다시 기득권이 뭉치고, 그나마 지금까지 87년 6월 이후 버텨간 거다.”

우리는 이미 그 현장을 경험하고 있다. 많은 자본가들이 어떻게 우리네 삶을 갉아먹었는지. “도급․용역 등 온갖 종류의 비정규직을 만들었다. 20년 전만 해도, 말 자체가 없었다. 특히 IMF 등을 거치며 본격화돼 지금은 우리 사회 일자리의 기본모델이 된 거다. 우리 삶을 지배하고, 특히 20대들을 옥죄고 있다. 재벌들도 민주화돼서 무지하게 좋아졌다. 우리가 좋아진 것이 10이라면 그들은 억조다. 공중 분해된 국제그룹이나 고 정주영 회장이 대통령 선거에 나온 것도 다 (민주화되지 않은) 국가권력 때문이었다. 국가권력 앞에 재벌들은 깨갱이었다. 민주화되니 달라진 거다. 지금 최고 권력은 누군가? 삼성이다. 센 이유가 뭐냐. 지금 정권도 2013년 2월이면 끝나지만, 그 재벌은 끝을 모르지 않나. 박정희나 전두환이 왜 힘이 셌나. 끝이 보이지 않는 것, 그게 힘이다. 진짜 권력은 죽을 때까지 누리다가 새끼에게 물려주는 것이다.”

국가 권력도 물론 차이가 있다. “박정희․전두환 때는 전국민을 보호한다는 시늉이라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것도 하지 않는다. 그것도 당당하게. 용산참사의 본질이 뭔가. 그런 분쟁이 있으면 싸움이 극한에 가지 않도록 타협시키는 것이 국가권력이다. 그러나 지금 정부는 조정자 역할을 벗어던지고 한쪽 편을 든다. 20년 전에는 안 그랬다. 또 지금 정책을 봐라. 박정희․전두환 정권시절에 만들어 놓은 것을 깨고 있다. 평준화나 의료보험 같은 거. 약자나 소수자를 위해 만들어 놓은 제도를 마음 놓고 거둬들이고 있다. 옛날에는 달래기라도 했지, 요즘은 밟는다.”

‘개천에서 용 나는’ 교육은 없고, 허황된 꿈을 심은 부동산 정책


교육문제를 보자. 노 전 대통령은 그러니까 개천에서 용 난 경우다. 시골 출신에 상고를 나왔다. 그나마 고시를 패스했지만. 한 교수의 표현을 들자면, “어디서 굴러 먹었는지도 모르는 개뼉다구”였다. 그런 그가 대통령까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야말로, 개천에서 용이 난 경우였다. 주류는 그것을 못견뎌했다.

“한국사회는 개천에서 용 나는 사회여야 한다. 그래야 꿈과 희망을 갖는다. 그나마 옛날의 입시제도가, 가끔 입시부정이 있긴 해도, 공평하게 기회를 줬다. 그러나 이젠 주류에서 개천에서 용 나는 것을 더 이상 못 보겠다고 한다. 집값 높은 동네가 서울대를 가장 많이 보낸다. 돈 갖고 고액 족집게과외로 입시제도를 왜곡시키고 있다. 이젠 서울대에 가난한 집 자식은 별로 없다. 개천에 용은커녕 이제 미꾸라지도 살 수 없을 지경이다.”

오죽하면, 한 교수는 전두환의 지적을 꼽는다. 과외금지. 피칠갑을 하고 태어난 태생적 한계로 대중영합정책을 펴야했던 까닭에 만든 정책. “아는 기자가 당시를 말하더라. 과외를 폐지하고 나니, 진짜 아이들 성적이 바뀌었다고. 우리나라 입시제도는 부의세습을 위한 것이다. 조선시대의 과거제도도 그랬다. 과거급제자 반이 주요 본관들이 차지했고 후기 가면 더 심해졌다.”

부동산은 또 어떤가. 말죽거리의 신화(?)로 치장된 졸부의 양산. “박정희․전두환 정권은 죄가 많다. ‘왜 우리 아버지는 말죽거리에 땅을 안 사놨지’하며 허황된 꿈을 꾸게 한 죄. 말죽거리는 30~40년 새 10~20원 하던 땅이 지금은 3000만원씩 100만배 넘게 뛰었다. 그때 땅 산 사람들에게는 말죽거리 신화, 나머지는 말죽거리 잔혹사가 됐다. 그게 불과 한 세대 전이다. 그러니까 현대사가 중요하다. 우리 삶을 옥죄는 문제들은 불과 한 세대 전 만들어진 일이다.”

대한민국이 정체성을 회복하려면


우리의 현대사는 ‘한강의 기적’으로 대변되는 놀라운 성취와 성과에도 불구, 너무도 뚜렷한 한계를 노정하고 있다. 그것이 극소수 엘리트들에 집중되고 고착화되고 있다. 대한민국의 진짜 정체성이 회복돼야 하는 이유다. 우리의 정체성을 찾을 수 있는 명확한 지점을 한 교수는 헌법과 임시정부라고 단언한다.

“정말로 임시정부가 어떤 나라를 세우려고 했는지 알고 가르쳐야 한다. 임시정부의 수장이었던 백범 김구는 우익으로 진짜 민족주의자였다. 그런 임시정부의 강령이 지금의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보다 훨씬 세다고 하면 믿겠나. 뉴라이트 등이 내세우는 제헌헌법도 임정 강령보다 약해도 국유화를 강조했다. 실제 개혁은 우익이 잘했다. 선거나 사회복지 등 모두 우익이 이뤘다. 그래야 혁명을 막을 수 있으니까. 그러나 지금은 내용 없는 보수가 날 뛰는 세상이다. 보수도 공부를 해야 한다. 누군가 중국을 다녀와선 촛불을 보곤 누가 돈 줘서 샀는지 알아보라고 한 적이 있다. 자기 머리로 이해가 안 될 때, 꼭 찾는 것이 배후다. (웃음)”

그렇다. 우리는 하루하루 중요한, 지금 이 순간이 중요한 역사의 중심에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고민을 해야 할 때다. 누군가의 죽음이 우리에게 안겨준 것이 슬픔만이 아니었다. 우리의 현대사는 어떤 교훈을 알려줬고, 어떤 행동을 하도록 우리의 마음을 움직였다. 3․1운동, 고종황제. 6.10만세운동, 순종. 4.19혁명, 김주열 열사. 그리고 6.10항쟁, 박종철과 이한열 열사가 있었다.

슬픔을 승화하기 위한 우리들의 자세

“지금은 정말 슬퍼해야 할 때다. 다른 거 따지지 말고. 지금의 슬픔과 분노가 어떤 방향으로 갈지, 우리 역사의 큰 흐름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게 될지 모르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은 우리사회의 용이었다. 끝내 승천을 못하고 추락했지만. 부엉이 바위에서 추락했다는 것은 의미심장한 것일지도 모른다. 새벽을 알리는 부엉이들이 많이 솟아올라야 한다. 슬픔을 딛고 용의 추락을 부엉이의 비상으로 승화시켜야 한다.” 


부엉이의 비상. 남은 자들에게 주어진 과제. 우리는 함께 울었고, 함께 슬퍼했다.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 있는 것이 마냥 다른 것이 아니었구나, 하는 어떤 안도. 그것을 확인한 만큼 그것을 그냥 둬선 안 된다. 우리는 더디더라도 그것을 모으고 연대해야 한다. 역습을 가해야 할 때다. 더 고통 받는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희망을 가지면서 우리는 버티고 견뎌야 하지 않을까. 내 옆 사람을 경쟁상대가 아닌 우리의 문제를 헤쳐 나가기 위해 힘을 합칠 사람으로 보는 것. 우리는 그렇게 만나야 하지 않을까.

노 전 대통령 분향소에 있었다는 어느 아주머니의 글. “앞으로 자식교육 똑바로 시키겠습니다.” 그의 서거로 인해 새삼 일깨운 어떤 가치를 박경신 고려대 교수는 말하고 있었다. 그동안 자식에게 ‘잘 살 것’을 요구해온 것이 최근의 우리였다. 행여 험한 일을 당할까 하는 두려움과 화폐가 지배하는 사회적 분위기에 휩쓸려 우리가 한참 뒤로 밀어 넣고 골방에 처넣었던 그 가치 말이다.
 
한 교수의 말에 중첩된 박 교수의 이 말. “우리나라의 한 학부모가 이런 글을 스스로 남기도록 한 것은 엄청난 일이다. 수많은 독립 운동가들이 그 이름도 후세에 전하지 못하고 일제의 탄압에 스러져가는 동안 일제와 결탁하여 치부한 자들이 반민특위의 위기를 돌파하고 다시 군사독재시대의 고도성장을 거쳐 우리 사회의 ‘지도층’으로 자리 잡았다. 그 뒤틀린 역사 속에서 우리는 ‘옳은 것’을 자신 있게 주장할 용기를 잃어갔고,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는 용기의 부재를 성숙함으로, 조직성으로 추앙하게 되었다.… 운동권과 노동계의 수많은 열사들이 죽음으로 ‘저항’하였지만 학부모들의 마음을 움직이지는 못했다. 도리어 ‘제발 너는 저렇게 되지 말아라’며 자식들이 불의에 눈감고 살기를 바랐다. 노 대통령은 죽음으로 학부모들에게 각인시켰다. ‘올바르게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임을. 지금부터라도 당장 자식들에게 ‘잘 살기’를 가르치던 것을 중단하고 ‘올바르게 살기’를 가르치기 시작하지 않으면 어떤 괴물이 나올지도 모른다는 것을.”

한 교수의 특강은 그렇게 얘기하고 있었다. 밥 짓는 문제, 일상 속으로 들어가서 우리 안의 부엉이를 비상하게 만드는 것이, 우리의 슬픔을 감내하는 길이라고. 기득권이 아닌 우리가 바로 지금 이 순간의 역사를 만들 수 있는 길이라고.


책의 서문에 한 교수가 언급한 이광웅 선생의 「목숨을 걸고」라는 시가 절절하게 와 닿는 시절이요, 시대다. 목숨을 걸었던 진짜 정치인, 그를 애도한다. 

이 땅에서
진짜 술꾼이 되려거든
목숨을 걸고 술을 마셔야 한다

이 땅에서
참된 연애를 하려거든
목숨을 걸고 연애를 해야 한다.

이 땅에서
좋은 선생이 되려거든
목숨을 걸고 교단에 서야 한다.

뭐든지 
진짜가 되려거든
목숨을 걸고
목숨을 걸고……

(※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애도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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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5월23일.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기차 안.
친구로부터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소식을 들었다.
미친 놈. 구라 한 번 뻑적지근하게 친다고 첫 생각했다. 

결과적으로 미친 '팩트'였다.  
서울에 도착하고, 경기도 모처의 결혼식장으로 향했다.  
펜션에서 열린 강룡의 결혼식.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결혼식 중의 하나.
(언제가 얘기할 날이 다시 있을 테고.)
식상하고 진부한 여느 결혼식과 판이하게 다른 축제의 현장.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가 가슴을 아리게 해도, 
축제를 멈출 수는 없는 법. 있는 힘껏 축하해줬더랬지. 

마침 그날은, 
그 결혼식에 엄마아빠를 따라 참여한 서진(호찬님 딸)의 생일. 

내 심장에 달고 다녔던 노란색 추모리본


5월23일은 그런 날이었다.     
벌써 1년. 봉하마을을 다시 찾았다.
작년 서거 이후 장례식이 열릴 때, 산청에 있었고,
자전거발전기 제작을 마친 어느날, 새벽을 달려 봉하마을에 첫발을 디뎠다.

여전했다. 
노무현 자서전 《운명이다》(노무현재단, 유시민 엮음|돌베개 펴냄)
추모방문단의 일원으로 봉하마을에 1년여 만에 다시 발을 디뎠다. 운명이다.


한때 한 동네에 살았던 동네 아저씨, 초등학교 동창의 아버지, 대한민국의 대통령이었던 사람. 나는 그를 추모하고 애도했다.
봉하마을 출발 전부터 흐르던 추모의 비는,
봉하마을에 도착해서도, 추모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계속 세차게 퍼붓더니,
서울로 올라갈 즈음부터 뚝 끊겼다. 운명이다.


사람들 마음에 내리던 비가 구름을 뚫고 떨어졌음이리라. 운명이다.

솔직하게, 나는 다른 어떤 추모사보다 이 말이 심장에 콕콱 박혔다!


노무현, 그 노란색의 잊지 못할 풍경.
강룡(부부) 결혼 1주년,
'사람 사는 세상'을 물려주어야 할 서진이의 생일도 축하했던 5월23일.
운명이다.


더불어, 국가대표 조리사 김 여사의 첫 외박일.
60 넘은 여고동창들 네 명이 모였단다.
놀라운 일이지만, 김 여사의 외박이 잦아졌으면 좋겠다.
당연한 일이지만, 김 여사도 이제는 가족보다 당신의 삶이 우선이어야 한다.

이래저래 기억할 일이 뎀비는 날이다.
그래, 운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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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30년.
1980년 5월18일.
광주.
인민항쟁.
임을 위한 행진곡.

태어나 처음 광주를 찾았던 1993년의 봄.
5.18민주묘지 앞에서 서성이던, 울먹이던 내 모습.
그 후 몇 차례 광주를 찾을 때마다, 늘 혼자 그곳을 서성였던 한 청년.

그리고, 5.18이면 떠오르는 당신의 생일.

진한 에스프레소 도피오로 짧게 묵상했던 내 추모.
나는, 그렇게 당신(들)이 아프다.
부디, 평안하시라.
분노는 남은 우리의 몫.
또한 우리의 힘.

참 뭣보다,
오늘 나보다 먼저 분노해준, 여전히 마음함께여서 좋은,
내게 큰 마음의 위로를 건네준 호돌형에게 캄솨!~
형, 땡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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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마치고,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길.
느닷없이 창밖을 보다가, 눈물이 주루룩.  

깊게 내려앉은 밤 때문이었을까.  
잘 비워낸 하루가 천천히 그렇게 식어가고 있었건만,
뜨거운 눈물이 볼에서 꼼지락거렸다.

다시, 스물셋의 봄이 떠올랐고,
그 어느해, 내 스물셋의 봄을 생각했다.
햇살 찬란했던 내 스물셋, 
모든 것이 가능하리라 기고만장했으며, 
기쁨과 슬픔이, 한데 행복이라는 울타리를 가득 채웠던 그 시절.

과거여서 분명 미화된 측면도 있지만,
행여나 내게도 그런게 있었다면, 내 인생 최고의 황금기였다.

스물셋.
나는 첫 사랑을 만났고, 어수룩해도 사유할 수 있는 틀이 형성됐으며,
모든 것을 흡수할 수 있을 정도로 유연했던 시절.

내겐 그런 시절이었는데,
고 박지연 씨에겐 멈춰서고 말았던 스물셋.

오늘 이지상 선생님을 통해 건네받은 어떤 울림까지 겹친 결과물이었을까.
아마 '엽전'들은 모르리라.  
그녀의 죽음 앞에 나 몰라라, 생까고 있을 개새끼 엽전 나부랭이들.

아마도,
카페에서 숱하게 스친 말간 얼굴들과도 겹쳐진 탓이었을 게다.
연인과 함께 혹은 친구와 함께 말간 웃음을 가득 담은 그 얼굴들.
아마 그녀도 같은 얼굴을 지니고 있었을 터인데...

그리고,
있었는지 없었는지 모르겠지만, 혹시나 그녀의 연인.
얼굴도 모르는 그 연인이 마음에 밟혔다.
그의 생에 닥쳐온 그 균열. 그 무엇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그 균열.
아마도 그 사람의 생은, 그 균열로 인해 비포와 애프터로 나뉠 것이고, 
어떻게든 달라질 것이다. 그 마음이 그냥 아파서...
 

이 감정, 기억하고 싶어서.
이렇게 늦은 밤, 몸은 더 없이 피곤하지만,
공연히 죄 없는 자판을 두드리며 마음을 달랜다.
나는 그렇게, 당신이 아프다, 당신이 슬프다...

아울러 당신에게도,
혹시 기억해? 당신의 스물셋...

참, 지금 스물셋이라는 문근영.
문근영의 스물셋과 박지연의 스물셋은, 지구와 안드로메다 사이인 걸까.
(물론, 문근영은 아무 죄 없다. 그저 스물셋이라서 끌어왔을 뿐. 문근영의 스물셋은 미친 듯 보도하면서, 박지연의 스물셋에는 생까는 많은 언론(이라고 쓰고, '찌라시'라고 읽는다)에게 묻는 거다.)

"삼성을 선택한 제가 원망스럽고 후회스러울 뿐이었습니다."
 스물셋 나이에 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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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하다가, 문득 인권오름에 들어갔다가, 왈칵, 눈물을 쏟고 말았네요...

그림 그리는 인권활동가 '고달이'님이 그린, '23살의 봄'!

삼성에 취업했다고 좋아했던 소녀, 
월급을 모아 나중에 봄볕이 반짝이는 대학교정을 걷고 싶었던 그 소녀...
하지만 그 꿈을 꺾은 것은 바로 저를 포함한 우리였습니다...

삼성반도체 마크가 찍힌 방진복을 입고 일하던 그녀가, 
백혈병에 걸려 2년 간 투쟁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투쟁은 꺾이고 말았습니다...
 
왜 우리는 얘기해주지 못했던 걸까요...
미안하고 또 미안합니다...
당신의 23살의 봄, 그 자그마한 소망조차 지켜주지 못해서...

이지상 선생님의 노래와 맞물려, 눈물이 그렇게 왈칵 쏟아졌나봅니다.
당신이 그토록 원했던 '23살의 봄',  
이제야 속살을 드러내기 시작한 이 봄을 나는 어떻게 맞아야할까요...

2010년의 봄도 그렇게 잔인합니다. 
T.S.엘리엇이 그랬고, 딥 퍼플이 그랬듯,
만물이 자기 피부를 찢으며 소생하는 계절,
그 울음소리가 천지를 진동하는 봄은, 그래서 잔인할 수밖에 없는 건가요... 

박지연, 당신의 봄을 애도합니다...
당신의 투쟁은 잔인하게 꺾였지만, 우리의 투쟁은 끝나선 안 되겠지요...
우리 승리하리라. Venceremos. 벤세레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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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내 경우.
왜 결혼을 않고 있냐고 혹은 못하고 있냐고 타박(?)을 듣곤 한다.
빈도가 몇 년 전보다 줄긴 했지만 아직도 자주. (주변에선 이젠 귀찮으니까!)
뭐 전혀 동의하진 않지만, '결혼적령기'를 넘은 싱글남이 받아야할 직구다.
포수 미트와 보호장구가 튼튼하다보니, 그 직구. 수월하게 받는다. 얼쑤~

그러면서 따라붙는 말, "애는 언제 어떻게 키우려고 그러냐."
친절하게 애가 초등학교 중학교 등등을 가면 내가 몇 살인지 깨우쳐주기까지.
쯧, 별 걱정 다한다.
있지도 않은, 태어나지도 않은 남의 애와 나의 미래까지 걱정해주는 저 오지랖. 

사실 오지라퍼들의 걱정(?)도 이해못할 바는 아니지만,
한편으로 드는 생각은, 물론 누가 그런 말을 했느냐에 따라 다르긴 하나,
이렇게 생각하게 만드는 사람이 있다.
당신, 언제부터 그렇게 인류와 사회를 걱정하면서 살았나. 조까라.

종족 번식을 위해, 결혼의 타당성(?)을 극렬옹호하는 사람도 많이 봤다.
뭐, 그러라지. 니 결혼의 목적까지 내가 관심 있는 건 아니니까, 뭐.
 
그러니까, 요지는 이거다.
나는 지지한다. 
'출산파업'!
대부분의 파업에 대해 지지하는 니 성향 때문 아니냐,
고 의심의 눈길을 보낸다면, 조까라.
(물론, 지금 이 나라 이 정부의 정신줄 놓은 파업 혹은 태업에 대해선,
아니 '무'정부-기업화 상태에 대해선 지지할 턱이 엄꼬.)

아이 낳지 않을 권리.
물론, 지금 이 시대에선, 그것은 '비자발적'일 가능성이 훨씬 농후하다.
이 꽃 같은 세상, 애 제대로 키울 수나 있겠어. 
진짜 부모로서 자리매김할 수나 있겠어. 썅.
"'비자발적 출산파업' 부르는 국가, 손쉬운 해법 있다"
그러니까, 권리라기보다 '어쩔 수 없음'이 더 맞는 말이지.
비자발적 출산파업은, 사실 "아이 좀 낳게 해달라"는 말이나 마찬가지.

그리하여, 이런 말 나오는 것, 당연.

 

3월8일 여성의 날을 맞아 여성들이 파업을 음모했습니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은 ‘□할 때까지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출산파업 선언자를 모았습니다. 그동안 ‘출산파업’이란 용어는 사회·경제적 이유로 아이 낳기를 꺼리는 세태를 일컫는 레토릭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공개적으로 “아이를 낳지 않겠다”며 집단행동에 나섰습니다. 왜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것일까요? <한겨레21> 801호는 출산파업 참가자 가운데 10명을 골라 이유를 물었습니다. ‘파업 해산’에 도움이 될 만한 스웨덴과 프랑스의 출산·육아 제도도 함께 소개합니다.


그리고, 부럽다. 프랑스. 
"왜 결혼 않고 출산? 파리엔 미혼모 없습니다"
썅, 대한민국아, 무조건 애 낳으라고, 출산하라고 말만 하면 다냐.
아무 맥락도 없이, 낙태금지법만 강화하면 다냐.  
니가 국가 맞냐, 혹시 순풍컴퍼니 아냐?
아~ 쉬파, 대한민국, 조까라 그래...

3월8일 102주년 여성의 날을 맞아,
여성주의자도 페미니스트도 아닌, 평범한 수컷에게 든 단상.
언젠가, 여성의 날이 없어지는 그날을 기다리며.
아직 이땅의 여성에게 가해지는 핍박과 억압에 대해,
가해자 수컷의 일원으로 진짜 미안해.

생명의 근원인 여성들에게서,
"여자라서 행복해요~"라는 말이 자발적으로 나와야 하건만,
이넘의 천박한 천민자본세계는 냉장고 하나 가졌다고,
"여자라서 행복해요"라는 주술을 읊게끔 만든다. 미친 세상.

남보원? 에이, 그런 건 신경 쓰지 마시공. 정신 건강 나파지니까.

2009/03/08 - [나는 당신을, 감탄한다...] - 남자는 맞아야 한다!
2008/03/08 - [세계, 내가 발 딛고 있는] - '여성의 날'이 없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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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윙보이

2009년 1월20일.
불길이 치솟았고, 여섯 명이 죽었다.

딱 1년, 2010년 1월20일.
빗물이 내린다. 최근 가까스로 장례를 치른 다섯 명의 눈물일까.

꼭 의미를 부여할 것 없이도 내렸을 비다.
그럼에도 의미를 부여하는 건, 오늘로 1년이 됐기 때문이다.

용산참사.

그냥 좀 마음이 그렇다.
지진으로 육신과 마음 모든 것이 파괴된 아이티의 참사.
1년이 됐고, 우리에게 마음의 빚을 남긴 용산 참사.
참사로 뒤범벅된 세계.
그럼에도 꾸역꾸역 살아가는 우리들.
커피 한 잔에 담긴 내 마음은 그냥... 그렇다.

박래군.
이권과 권력의 횡포 앞에 인권과 사람을 위해 늘 투쟁했던 그 이름. 
"이행자 시인이 “박래군 같은 사람이 다섯 명만 있었다면 나라 꼴이 이 지경은 아닐 것!”이라고 호언장담할 정도로 그는 ‘타고난 활동가’이자 ‘운동진영의 보배’로 손꼽혀왔다."
그저 활동가·투사인 줄로만 알았던 그는, 한때 문학소년이었다.
야만의 시대는 문학소년마저 투사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 래군이 형 (한겨레, 김별아)

아울러, 김진숙.  ≪소금꽃나무≫. 달라진 것은 없다. 별일 없이도 산다.
그냥 이 비가, 마음을 건드릴 뿐이다.
☞ 용산 참사 1년, 김진숙을 읽고도 별일 없이 산다


[용산 부활도], 이윤엽


부디, 이 다섯 분이 웃음처럼 환하게 부활하시고,
국가에 의해 희생 당한 경찰 한 명도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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