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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미디어'에 해당되는 글 19건

  1. 2011/11/15 노동·정치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것, 우리 사회의 희망이 되는 일! by 스윙보이
  2. 2011/08/01 올 여름엔 외롭다는 말, 하지 않을게요 by 스윙보이
  3. 2010/07/29 지금, 말 못하는 우리는 정은임이 그립습니다 by 스윙보이
  4. 2009/08/03 그리하여 다시 정은임, by 스윙보이 (2)
  5. 2008/04/07 '신문의 날'과 세계관 by 스윙보이
  6. 2008/03/03 '계모'도 '엄마'다 by 스윙보이 (2)
  7. 2007/11/12 패리스 힐튼, 이효리를 위한 뒤늦은 변명 by 스윙보이
  8. 2007/11/07 미디어가 '꺼리'를 소화하는 방식 by 스윙보이
  9. 2007/10/25 '외국인노동자' 아니죠~ '이주노동자' 맞습니다~ by 스윙보이
  10. 2007/10/17 그대들은, 정녕 '빈곤'에 관심 없는갸~ by 스윙보이

다행이다. 올해가 가기 전, 박래군 선생님을 뵀다. 소식이야 각종 미디어를 통해 보고 듣지만, 1년에 한 번이라도 눈 앞에서 알현해야, 뭔가 빠트리지 않고 한 해를 보냈다는 느낌을 갖게 해주는 분 중의 한 분이다. 인권운동가다. 인권재단 사람의 상임이사. (물론 서로 아는 사이는 아니다. 혼자 좋아하고 존경하는 선생님.ㅋ)

그런 타이틀보다 래군 선생님의 학교 후배인 김별아 작가가 쓴 칼럼을 읽어도 좋겠다. 내가 좋아하는 김별아 작가 칼럼 중 하나. ☞ 래군이 형 / 김별아

중요한 건, 지금 래군 선생님은 인권센터 건립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계시다. '100일의 기적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인권센터 막바지 모금활동, ‘100일의 기적’ 프로젝트 돌입

나 같은 장삼이사가 할 수 있는 일. 기적의 저금통이다. 

동전을 모으고 있다. 그래서 요즘은 길에서 10원짜리라도 떨어져 있으면 낼름 줍는다. 인권센터에 보탬이라도 될까봐.ㅋ 

얼마나 모일지는 모르겠으나, 모여도 아주 적은 금액이겠으나, 내 작고 사소한 저금통이 인권센터의 벽돌 한 장에라도 보탬이 됐으면 하는 바람.

인권센터 건립기금 모금에 관심이 있거나 주춧돌을 놓는데 동참하고 싶다면, 인권재단 사람의 홈피(www.hrfund.or.kr 혹은 www.hrcenter.or.kr)를 방문하면 된다. 인권센터 건립에 관한 자료와 모금관련 정보 등을 확인하실 수 있다.

어쨌든, 지난 4일 서대문 민주노총 서울본부 사무실, 텍스트 출판사에서 시리즈로 나오고 있는 <우리 시대 젊은 만인보> 필자들과 래군 선생님이 함께 하셨다. 인권센터 관련 응원의 말씀이라도 드리고 싶었으나, 수줍은 내 성격상 말씀을 결국 못 건넸다.^^;; 그래도 올해가 가기 전에 뵀으니 괜찮아!

아래는 그날을 기록한 기고 원문인데, 원고가 게재됐을 땐 앞 부분이 뭉텅 빠졌다. 내가 말하고자 했던 게 그 부분인데, 어떤 이유에선지 빠졌다. 매문하는 입장에서 원고를 넘기면 편집권도 훌러덩 넘기는 지라, 항의 같은 건 않지만, 아쉽다. 왜 그 부분이 빠져야했는지 메일을 통해 한 줄 정도라도 알려주는 편집자의 센스가 없어서. 설마 정치적인 글이라고 오독해서 빠지진 않았겠지? 그렇게 믿고 싶다. 보랏빛 볼드체가 매체에서 훌러덩 삭제된 부분이다. 인권센터 건립이 잘 됐으면 좋겠다.

노동·정치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것, 우리 사회의 희망이 되는 일!
<우리 시대 젊은 만인보> 김류미 박래군 손문상 조약골 한윤형


김진숙, 내려오다.
이 말은 아마 2011년 한국 사회를 설명하는 가장 중요한 열쇳말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309일 동안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의 복직 등을 위해 고공농성을 해야 했던 김진숙 위원이었다. 돈과 권력에, 1%에 일방적으로 밀려 번번이 실패만 거듭하던 99%가 일군 아주 드물고 사소한 성공의 사례.

물론 이 사소한 성공을 위해 우리 사회는 얼마나 많은 힘과 비용을 쏟았는가. 가카 덕분에 모든 것이 암담한 시절, 5차례에 걸친 희망버스가 희망을 굴리고자 안간힘을 썼다. 물대포와 캡사이신이 희망을 저항했고, 사법처리 등의 협박이 난무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한진중공업 해고자의 1년 내 복직 등을 뼈대로 하는 노사 잠정합의안이 마련됐고, 시민활동가 출신의 원순 씨가 서울시장이 됐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과 같은 99%의 처지에 동감했다.

한진중공업 노조원의 한 아내는 이리 말했다. “김진숙 지도위원이 크레인에 올라가 농성을 하고 있는데도 우리 문제를 사람들이 몰라줘 답답하고 힘들었을 때 희망버스가 찾아왔다. 희망버스 행사가 한두 번 열리고 끝나겠지 했는데, 계속해서 우리를 찾아와 응원을 해주니 힘을 낼 수밖에 없었다.” 맞다. 99%가 서로가 서로를 놓지 않고 1%에 저항한 덕분이다.

지난 13일, 41주기를 맞이한 전태일 열사와 지난 9월3일 소천하신 이소선 어머니도 천국에서 미소를 지어주셨으리라. 그렇게 전태일을 떠올리는 시간, 마음을 놓을 수는 없다.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철회소식이 퍼지고 김진숙 위원이 땅을 밟은 날, 쌍용자동차에선 19번째 죽음소식이 날아왔으니까. “해고가 살인”임을 알면서도 자본은 스스럼없이 살인을 자행한다.

세계 7대 자연경관으로 선정된 제주, 그곳의 아름다움과 평화를 담당하는 강정마을을 파괴하고자 하는 국가(군대)와 자본의 협잡과 침탈은 또 어떻고. 우리는 구럼비의 울음을 감당할 수 있을까. 99%의 일상을 흔들어놓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그냥 놔둬도 좋을까. 희망버스가 향할 곳은 아직 많음을 보여준다. 사소한 성공을 이어야 할 이유까지.  

지난 4일, 서울 서대문 서울빌딩, ‘2011년 한국, 젊은이들의 목소리 그리고 저항’이 울려 퍼졌다. 젊은이들은 어떻게 현실에 대응하는지, 저항은 어떻게 조직되는지, 우리가 삼아야 할 희망의 근거가 무엇인지, 텍스트의 연작시리즈 <우리 시대 젊은 만인보>의 필자, 김류미․조약골․한윤형과 박래군 인권운동가가 손문상 화백(프레시안)의 사회로 이야기를 풀었다.


박원순 후보의 압승으로 서울시장 선거가 끝났다. 어떤 변화를 목격하는 것 아닌가?

조약골(이하 골)
할 말이 별로 없다. 현재 나는 제주도 강정마을에 있다. 마을 일이 바빠서 투표를 하지 않았다. 아나키스트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다 보니, 사람들이 아나키스트는 선거를 안 한다고 생각하더라. (웃음) 아나키스트라고 모든 선거를 부정하는 건 아니다. 편의상 날 아나키스트라고 부르나 그보다 넓은 개념으로 활동하고 있다. 선거가 어떻게 진행됐는지 크게 관심을 갖지 못했다.

한윤형(이하 형) 이번 선거 핵심은 2002년 시작됐던 20~30대 연합이 참여정부를 지나면서 해체됐다가 안철수라는 키워드를 통해 다시 이뤄졌다. 세대론으로 볼 수도 있지만, 이번 정권하에서 공통적인 경제적 이해관계를 가졌다고 볼 수도 있다. SNS라는 매체를 통한 연합도 생각해볼 수 있을 테고. 안철수라는 아이콘이 세대를 통합하는데 어필한 것 같다.

김류미(이하 미) 희망청 활동가였으나 현재는 큰기업의 핵심부에 있다. 그 갭이 크고, 옮긴 것에 대해서도 고민이 많다. 이런 상황에서, 일상에서 이번 선거가 가진 의미를 개인적으론 말하긴 어렵다. 물론 관심은 있고,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박래군(이하 군) 앞으로 정치권의 변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을 거라고 보는데, 아주 어렵게 상식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정상적으론 안철수, 박원순 같은 사람들이 보수정당을 하고 이에 맞서는 진보정당이 있어야 한다. 박원순 시장이 진보적이라는데, 내가 보기엔 진보적인 사람은 아니고 합리적인 시장주의자다. 그러나 우리나라엔 합리적인 시장주의자가 없다. 진보정당을 표방하는 쪽도 낡은 틀에 있고, 그런 틀이 깨져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박 시장은 오세훈 전 시장이 벌여놓은 부채문제 등을 정리하다가 임기가 다 끝날 것 같다. 특정세력이 부와 권력을 장악한 틀을 깨는데 얼마나 기여를 할 것인지는 회의적이다. 재벌과 맞설 수 있을까, 이런 부분. 앞으로 변화의 과정을 지켜봐야할 것 같다.

이번 선거도 20~30대 표심이 많이 좌우했다는 분석이 있는데, 어떻게 보나?

(형) 우리나라 정치담론에선 지지자가 있다면 새로 유입되는 사람이 더 큰 발언권을 차지하는 경향이 있다. 기존 정치에 관심이 있었다기보다 오늘부터 정치가 중요하게 깨달았다는 얘길 하면 환호받는다. 정치세력을 대하는 방식도 비슷하다. 새로운 사람을 요구한다. 정치인이나 정치적 지지자를 대할 때마다 리뉴얼하겠다는 욕망이 강하게 나타난다.

세대론 자체도 그런 욕망과 비슷하다. 정치를 일신하고 싶은데, 새로운 세력을 찾아내려 하고, 구별 짓기도 생긴다. 계속 리뉴얼을 요구하는 게 정치적으로 좋다고 얘기할 순 없다. 우리나라 정치도 새로운 인물만 유입되다보니 관료들에게 휘둘리기도 하고. 이 욕망을 조건으로 생각하면서도 우리의 정치적 요구를 대변할 수 있는 세력을 만들고 전달할 수 있을지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하다. 세대를 통해 정치가 새롭게 구성된다는 언론 보도에서도 이런 지적이 안 나오고 있다.

(미) 박원순 시장의 당선을 젊은 세대의 정치의식으로 분석하는 건 와 닿지 않는다. 결국 투표라는 것이 쿨 해보였던 것 같다. 연예인이 투표를 하니까, 박원순이 쿨 해보이고, 안철수는 워너비고. 그래서 이번 투표를 문화적 소비와 비슷하게 했단 생각이 든다. 정말, 정치적 주체로 참여해서 결과를 내놨느냐? 나는 회의적이다. 다음 선거가 더 중요하다고 본다.

젊은이들의 지금 정치형태는 트렌드화 되어있지 않나하는 생각도 든다. 젊은이들의 정치의식이 실체는 없는 것 같다.

(군) 젊은이들이 정치에 관심 없다는 건 상대적이다. 아마도 80년대와 대비해서 그런 것 같은데, 요즘 투표장에 가는 걸 보면 정치에도 관심이 있는 것 같다. 한편으론 지금이 워낙 절망적인 상황이잖나. 우리 때는 일자리에 대해 고민 안 했고, 낭만, 열정이 있고, 폼 나게 데모도 나가고. 싸워서 이긴 경험도 있고. 그러나 요즘 세대는 그렇지 않다. 정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다면 희망적일 것이다.


이번 선거에 SNS가 많은 영향을 미쳤다. 요즘 소통방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골) 강정마을에서도 SNS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새로운 소통방식임에는 틀림없다. 잘 활용하면 많은 가능성을 갖고 있는 매체 혹은 수단이다. 강정마을에 사는 젊은이들이 많은데, 이전과 약간 다른 분위기나 성향을 갖고 있다. 하나의 새로운 흐름을 만들거나 저항을 하는 사람들이다. 그런 새로운 흐름이 강정마을에서도 나타나고, 올 초부터 외부세력이 참여하면서 외연이 확장되고 많은 소식이 퍼져나갔다. 

(형) SNS와 관련, 말이 많이 나온다. 이전부터 뉴미디어 정체성을 갖고 얘기하는 게 반복돼 왔다. SNS 자체가 진보성을 띠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인터넷 게시판이나 블로그 등도 처음 수용될 때도 진보적인 공간이었다. 이후 평준화나 사회 분위기를 반영하는 측면이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 트위터도 이전처럼 평준화 될 것으로 본다.

새로운 매체가 생겨서 돌파구를 마련하고, 자본의 통제가 따라오는 것도 반복되지 않을까. 다만 강화되는 게 있다. 개인에게 수용되는 정보의 틀을 개인이 조절하는 추세다. SNS는 자신에게 동의하는 사람들 혹은 정보소스를 통해 정보를 유통하기 때문에 파편화되는 한편 예전과 달리 자신이 동의하거나 구미가 당기는 정보만 선택한다.

개인의 정보선택의 자율성이 높아지는 한편 그 가능성을 제대로 실현하는지는 의심스럽다. 사려 깊은 판단도 할 수 있지만, 구미에 맞는 정보만 확대재생산할 수도 있다. 그런 양날의 검을 염두에 두고, 다양한 정보가 유통되고 공유될 수 있는 활동을 만들어야 한다.

(미) 나는 SNS에 깊이 관여한 경우다. 30대가 SNS를 많이 한다고 큰 범주에서 말하나, 대학생들은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를 그리 많이 하지 않는다. 이력서나 스펙을 위해 SNS를 많이 하나, 그전까지는 별로 필요하지 않다.

아울러 네트워크를 통한 평판사회가 더 강화될 것으로 본다. 그래서 가능한 영역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일반적인 사람과 트위터에서 말을 섞다보면, 나의 견해를 이해시키기 위한 것을 찾는 것에서 희망을 보고 있다.

(군) 나는 기성세댄데, 변화속도가 빨라서 따라가기 힘들다. (웃음) 트위터는 안 하고 페이스북만 하고 있는데, 기존 언론사에서 제공하는 정보보다 각자 전문성을 지닌 사람들이 정보를 제공한다는 측면에선 긍정적이다. 그러나 나중에 자본에 흡수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분명한 것은 스마트폰이 나오고 지하철에서 책 보는 사람이 줄었다. 직접 대면해서 관계를 맺는 것에 소홀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도 있다.

(골) 강정마을 청년들은, 다 SNS를 한다. 조그만 마을이라 서로 매일 보는데, 무슨 생각을 하는지, SNS를 통해 확인한다. 직접 마주보고 소통하는 것보다 그 사람 근황 등을 살피고 소통할 수도 있다. 마을주민이 구속됐다가 보석으로 나온 경우가 있었는데, SNS를 하는 사람들은 이를 공유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어서 마을 주민들에게 트위터 사용 강의를 한 적이 있다.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도구로서 의미가 있고, 한진중공업 등의 소식을 실시간으로 전해들을 수 있는데, 현장에 가지 못하나 같이 하고 있다는 안도감을 받을 수도 있다. 나도 소식을 올리면, 같이 있지 못해서 미안하다, 잘 버텨달라고 응원을 많이 보내준다. 그런 것을 통해 나도 안도하고 응원을 보낸다. 그런 점이 좋다.


온라인상의 연대와 저항을 어떻게 보나?

(형) 처음 인터넷 게시판에 글을 쓸 때는 아이디를 썼다. 온라인 세상이라는 새로운 세상이 열렸고, 오프라인과 다른 짓거리를 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생각을 했다. 군대를 갔다 오니 실명을 쓰더라. 매체가 바뀌면서 양상이 바뀌는 측면도 있는 것 같다. 게시판 문화에선 안티조선운동을 할 때는 텍스트가 길었다. 그러나 지금은 현장에서 사진을 찍고 짧게 올리면서 구체적인 연대를 할 수 있는 활동이 각광을 받는다. 매체 특성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미) 내가 설득하고 싶었던 친구는, SNS를 해보라고 했더니, 거기에 뭘 써야 할지 모르겠다더라.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는 사람도 정해져있다. 수용자를 끌어들일 수 있는 방법이 없더라. 나는 RT를 하는 게 면죄부를 주는 것 같다. 개인적으론 다소 걱정된다.

(골) 참여는 넘치는 것 같다. 면죄부를 주는 것일 수도 있는데, 정말로 강정마을에 오는 경우도 많이 봤다. 트위터를 보고 온 사람들 되게 많다.

(조약골에게) 아나키스트라고 스스로 규정했는지, 아니면 바깥에서 불러줬는지?

(골) 19세기 아나키즘이 무장투쟁을 주창했고, 2차 대전이후 아나키즘은 비폭력 직접행동주의를 주창한다. 무장투쟁은 일부분이었다. 아나키즘은 여러 뿌리에서 발생한 것인데, 무장투쟁만 확대재생산 됐다. 그건 아나키즘의 부정적인 측면을 확산하기 위한 의도였던 것 같다.

운동으로서 직접 행동을 하는 아나키스트들은 주장을 한다. 직접 행동이라면 대의 정치를 통한 정치활동보다는 세상을 바꾸는데 스스로 참여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선 내가 활동하는 방식과 비슷한 점도 있으나 나는 다양한 영향을 많이 받아왔고, 지금도 받고 있다. 다른 운동이 엄숙주의적이고 개인의 희생을 요구한 측면이 있는데, 내가 원해서 즐기면서 한 저항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 많이 했다. 마음에서 우러나오고 일상에서 할 수 있는 것인가 등을 끈질기게 밀고 나가다보니까 지금처럼 살고 있다. 아나키즘을 하나의 이념으로 표현하기엔 부족하다.

대추리, 용산, 두리반, 한진중공업, 강정마을 등으로 이어지는 인디문화, 비주류문화의 실체가 어떤 것이고 저항성은 어떤 것인지, 어떤 느낌을 갖고 있는지 알려 달라.

(골) 여러 측면이 있는데, 하나의 대안 공간을 만드는데 매력을 가지는 것 같다. 기존 사회와 다른 가치를 통해 운영을 해 가는 것에 매력을 느낀다. 경쟁보다는 사회적인 연대와 상호부조를 통해 즐거움과 재미를 찾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이전과는 다른 저항방식이다. 이전은 저항이 즐겁거나 행복하다고 말할 수 없었으나 지금은 어느 순간부터 재밌고 신나지 않으면 다가가기 힘든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재미, 흥겨움으로 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 것인가를 나는 고민했고, 그 답으로 우리 스스로 대안 공간을 만들어냈다. 

저항의 방식으로 글쓰기를 했다. 글쓰기의 한계나 불편함 같은 건 없었나?

(형) 글쓰기가 사회운동의 참여 면에선 회의가 많은 작업이다. 두 가지 이유가 있다. 글쓰기는 우리사회 공동체의 원칙, 가치를 의견을 나누면서 정하고, 그것이 실현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있어야 의의를 찾을 수 있다.

그러나 내가 떠들거나 말거나 세상이 돌아가지 않나. 이를 테면 한국의 통치 자체가 담론적인 이데올로기로 지탱이 된다면 싸워볼 수 있으나, 보수는 말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몸을 공격한다. 사회가 원칙이나 가치를 토론하는 장이 열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 회의는 트위터 100개를 쓰면 사람들 마음에 맞는 부위만, 구절로서만 소비한다. 그런 회의를 하면서 하는 작업이 글쓰기다.

68세대나 386세대는 자본이 뭔가를 내놓을 수 있는 시점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지금은 상황이 좀 더 엄혹하다. 우리가 사는 동안, 세상이 좋아지기보다 조금씩 더 가라앉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좌파는 국가나 자본가 계급을 욕한다. 그러나 국가나 자본가를 악마나 적대적인 대상으로 삼는 게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서 우리 몫이 나오고 다시 돌아오는 것으로 설계하지 않으면 투쟁도 어렵지 않을까. 그래서 글쓰기 등을 통해서 그런 것을 알리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본다.


20대를 규정하는 많은 책이나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어떻게 생각하나?

(형) ‘88만원 세대’라는 규정이후, 그 규정에 대한 여러 의견이 나왔지만, 규정하는 것 자체가 싫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나온 적도 있다. 세대론은 책임론으로 흐르기 쉽다. 특정한 세대에 책임을 떠넘기는. 특정 세대를 지목해서 죄를 부여하는 방식은 좋지 않다. 이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기보다 자기 마음을 편하게 하기 위한 방식이다. 세대론이 그런 쪽으로 흘러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군) 이른바 ‘386세대’는 굉장히 모순적이다. 진보적으로 산다고 생각하지만, 사는 걸 보면 보수적이고 친자본적이다. 한때는 친구들을 만나기가 싫었다. 만나면 증권, 골프, 교육 얘기를 하는데, 정치의식은 또 달랐다. 우리 세대가 자기들이 힘들게 살았다는 것을 젊은 세대에게 강요하는데, 자기들의 경험이나 틀에서만 바라보니 젊은 세대와 맞질 않고 소통이 안 된다. 젊은이들이 어떤 고민을 갖고 있는지 모른다.

‘나꼼수’에 열광하는 것이 젊은이의 저항의 실체일까?

(형) 한 번도 안 들어봤는데, 그건 나꼼수에 대한 열광보다 기존 제도가 약해져 있다고나 할까. 나꼼수의 역할이 있고, 기존 언론의 역할이 있는데, 기성의 텃세가 전혀 작동을 않는 거지. 나꼼수를 들어보질 못했으나, 나꼼수를 받아들이는 언론에 대해선 비판하고 싶다.

(군)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는데, 자기 방식대로 얘기하는 모범을 만든 것 같다. 그런 방식으로 하는 것도 유효하다는 생각도 드는데, 한편으론 아슬아슬하다. 쓰는 언어 등에선 마초적인 부분이 많다. 대신 욕을 해주는 거라서 대리만족을 하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도 든다. 아무나 욕한다고 들어주는 것 아니지 않나. 이것도 유행이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점령하라(Occupy)’ 등의 운동이 있다. 우리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변화의 조짐을 어디서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혹은 젊은이들에게 요구되는 덕목이 있다면?

(군) 서구의 사회복지국가가 가능했던 건 노동조합의 힘이었다. 우리는 다르다. 노동조합의 힘이 부족한 채로 사회복지 국가로 가자고 얘기한다. 갈 수도 있겠으나, ‘점령하라’가 월스트리트를 점령한 것은, 과거부터 다져서 지금의 힘이 된 것이다. 우리는 그러나 흉내만 낸다. 혁명과 운동은 수출되는 것이 아니다.

‘점령하라’는 신자유주의, 금융자본의 본질을 공격하는데, 우리는 그 수위까지 올라가 있지 않다. 우리는 타깃을 어디에 맞춰야할지 고민해야 한다. 일제강점기부터 한 번도 청산되지 않은 권력과 소수가 갖는 부를 어떻게 깨느냐가 중요하다. 1%만 누리고 있는 권력과 이익 구조를 깨는 것이 가능하다면, ‘점령하라’뿐 아니라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FTA(자유무역협정), 강정 싸움일 수 있다. 올 들어 곳곳에서 노동문제가 부각되고 있는데, 노동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가깝게 느끼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고, 이런 것이 긍정의 동력으로 작동할 수 있으면 좋겠다.

(골) ‘점령하라’가 한국 사회에서 비슷한 양상으로 있었던 게 2008년 촛불이다. ‘점령하라’는 리더가 없는 운동이다. 이게 중요하다. 새로운 운동이 아니라, 1999년 시애틀에서 WTO 반대운동이 일어났고, 이후 리더가 없는 수평적 네트워크가 하나의 패턴으로 자리 잡았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운동을 한다는데, 대중적인 저항운동을 끊임없이 할 수 있을까에 대해선 궁금하다. 지금 많은 문제가 산적해 있는데, 스스로 참여하고 도구를 이용하면서 저항운동에 더 많은 사람이 참여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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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윙보이
올 여름엔 외롭다는 말, 하지 않을게요.
8월4일 아름다운가게 동숭동헌책방서 제7회 정은임 아나운서 추모바자회 개최

새벽 세시,
고공 크레인 위에서 바라본 세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100여일을 고공 크레인 위에서 홀로 싸우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의 이야기를 접했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올 가을에는 외롭다는 말을 아껴야 겠다구요.

진짜 고독한 사람들은
쉽게 외롭다고 말하지 못합니다.
조용히 외로운 싸움을 계속하는 사람들은
쉽게 그 외로움을 투정하지 않습니다.

지금도 어딘가에 계시겠죠?

마치 고공크레인 위에 혼자 있는 것 같은 느낌
이 세상에 겨우겨우 매달려 있는 것 같은 기분으로
지난 하루 버틴 분들
제 목소리 들리세요?

저 FM 영화음악의 정은임입니다.


지난 8년 전, 2003년 10월22일, 심야의 아나운서가 우리에게 건넸던 말이다. 지금이라고 우리는 다르지 않다. 심야의 아나운서가 조곤조곤 들려준 그 말이 유효하리란 생각, 해보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지상으로부터 35m, 한진중공업의 85호 타워크레인. 2003년 故 김주익씨가 있었고, 지금 김진숙 씨가 아무 죄도 없이 잘려나가는 이 세상에 겨우겨우 매달려 있는 것 같은 사람들을 대신해 올라가 있다. 그들을 응원하기 위해 희망버스가 달려간다.

지금 다시, 정은임 아나운서는 어떤 멘트를 남길까요? 여전히 외로움을 투정할 수 없는 시절, 그 사람의 목소리가 자꾸만 그리워집니다. 당당하면서도 따듯한, 그럼에도 단호하고 분명하게 우리의 심장을 깨우는. 하지만, 지금 그 사람은 없다. 지난 7년여 전, 불의의 교통사고로 우리 곁을 떠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사람을, 그 목소리를 기억하는 아름다운 하루가 열린다.
 


정은임 아나운서를 기억하는 팬들이 오는 4일(목), 아름다운가게 동숭동헌책방에서 제7회 추모바자회를 연다. 8월4일은 정 아나운서의 기일로, 추모바자회는 ‘정은임 아나운서 팬페이지’(www.worldost.com)가 ‘아름다운가게’(www.beautifulstore.org) 등과 함께 열고 있는 행사다. 매년 기일에 맞춰 ‘정은임 아나운서를 기억하는 사람들과 아름다운가게가 함께하는 아름다운 하루’라는 제목으로 열리고 있다. 더 나은 세상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세상을 터치할 수 있는 기회다. 스마트폰의 터치감보다 훨씬 좋다. 

바자회는 정은임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자발적인 기부와 참여로 이뤄진다. 행사 당일 아름다운가게에 모여 봉사활동과 수집된 물품을 판매한다. 누구나 자발적으로 참여 가능하다. 수익금은 아름다운가게에 전액 기부하고 있다.

지난 1회 바자회 수익금 전액(200만원, 특별후원금 70만원 포함)은 아름다운가게 수해지원금에 포함됐으며 2회 때는 바자회 행사와 추모영상회를 가져 바자회 수익금 전액(182만7천원)은 아름다운가게 수익나눔성금으로 활용됐다. 3회(136만2천원), 4회(155만4450원) 5회(187만2010원) 6회(111만원) 바자회 수익금 전액은 아름다운가게 수익나눔 성금에 보태졌다.

추모바자회에 물품을 보내고자 하는 사람은 아름다운가게 대표번호(1577-1113)로 전화하면 무료택배(기증량 1~2상자)를 이용할 수 있다. 물품을 보낼 경우, 아름다운가게 동숭동헌책방(서울 종로구 동숭동 1-139 지하1층, 02-765-6004)으로 보내면 된다. 단, 보낼 때 [정은임 아나운서 동숭동헌책방 행사물품]이라고 써야 한다. 기증방법이나 기증받지 못하는 품목 등에 대해서는 관련사이트(http://www.beautifulstore.org/Join/Giving/Process.aspx)를 참조하면 된다.


추모바자회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정대철 씨는 “추모바자회는 정은임 아나운서가 팬들에게 남긴 마지막 선물로 올해도 기일에 맞춰 열게 됐다”며 “정은임 아나운서를 기억하고 사랑하는 많은 분들의 참여를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다음은 7주기 추모행사 내용이다.

1. 행사일 : 2011년 8월4일 목요일
2. 행사장소 : 아름다운가게 동숭동헌책방 (서울 종로구 동숭동 1-139 지하1층)
약도 : http://www.beautifulstore.org/AgaOrg/GetInfo.aspx?SerialNo=1000000134
3. 아름다운가게 기증 방법 : http://www.beautifulstore.org/Join/Giving/Process.aspx

관련사이트

http://www.worldost.com  정은임 추모 사업회
http://www.cyworld.com/bastian2004  정은임 미니홈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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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임, 정든님이여.

지금, 입을 봉쇄당하고, 생각을 통제당하고 있는 우리.
그래서, 당신이 더욱 그립습니다.

6년이 흘렀습니다.
다시 여름이며, 다시 8월4일이 옵니다.

정은임을 기억하는, 정영음을 추억하는,
그의 목소리에 교감하고 그의 마음에 공명했던,
당신의 작고 사소한 참여를 기다립니다.

당신과 나는, 그렇게 우리입니다.
정든님 정은임을 생각하는 우리입니다.
당신의 작은 참여, 기다립니다. ^^
 
은임 누나는,
제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 사람입니다.
그런 누나이기에, 일년에 한 번이지만,
나는 그 하루를 누나를 그리워하면서 보냅니다.

www.worldost.com


 지금, 말 못하는 우리는 정은임이 그립습니다
8월4일 아름다운가게 동숭동헌책방서 제6회 정은임 아나운서 추모바자회 개최


한 사람이 있었다. 이 사회와 그 속에 살고 있는 사람을 생각하고, 그것을 영화로 풀어내며 음악을 들려주던 목소리를 가진 사람. 그 어느 날 새벽, 100여일을 고공 트레인 위에서 홀로 싸우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의 이야기를 전하던 그 목소리. 조용히 외로운 싸움을 계속하는 사람은 쉽게 그 외로움을 투정하지 않는다며, 외롭다는 말을 아껴야겠다고 말하던 사람. 그리고 이 세상에 겨우 겨우 매달려 있는 것 같은 기분으로 하루하루를 버티는 우리들에게 혼자가 아님을 알려준 사람이다.

그 사람, 정은임 아나운서다. 말 못하고 숨죽이며 살아야 하는 지금, 그 사람의 당당하면서도 따듯한 한 마디가 그리워진다. 하지만, 지금 그 사람은 없다. 지난 6년여 전, 불의의 교통사고로 우리 곁을 떠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사람을, 그 목소리를 기억하는 아름다운 하루가 열린다.

정은임 아나운서를 기억하는 팬들이 다음달 4일(화), 아름다운가게 동숭동헌책방에서 제6회 추모바자회를 연다. 8월4일은 정 아나운서의 기일로, 추모바자회는 ‘정은임 아나운서 팬페이지’(www.worldost.com)가 ‘아름다운가게’(www.beautifulstore.org) 등과 함께 열고 있는 행사다. 매년 기일에 맞춰 ‘정은임 아나운서를 기억하는 사람들과 아름다운가게가 함께하는 아름다운 하루’라는 제목으로 열리고 있다.

바자회는 정은임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자발적인 기부와 참여로 이뤄진다. 행사 당일 아름다운가게에 모여 봉사활동과 수집된 물품을 판매한다. 누구나 자발적으로 참여 가능하다. 수익금은 아름다운가게에 전액 기부하고 있다. 이번 행사에는 공정무역 커피회사 카페 티모르(www.cafetimor.com)도 커피 등을 통해 행사에 참여한다.

지난 1회 바자회 수익금 전액(200만원, 특별후원금 70만원 포함)은 아름다운가게 수해지원금에 포함됐으며 2회 때는 바자회 행사와 추모영상회를 가져 바자회 수익금 전액(182만7천원)은 아름다운가게 수익나눔성금으로 활용됐다. 3회(136만2천원), 4회(155만4450원) 5회(187만2010원) 바자회 수익금 전액은 아름다운가게 수익나눔 성금에 보태졌다.

추모바자회에 물품을 보내고자 하는 사람은 아름다운가게 대표번호(1577-1113)로 전화하면 무료택배(기증량 1~2상자)를 이용할 수 있다. 물품을 보낼 경우, 아름다운가게 동숭동헌책방(서울 종로구 동숭동 1-139 지하1층, 02-765-6004)으로 보내면 된다. 단, 보낼 때 [정은임 아나운서 동숭동헌책방 행사물품]이라고 써야 한다. 기증방법이나 기증받지 못하는 품목 등에 대해서는 관련사이트(http://www.beautifulstore.org/Join/Giving/Process.aspx)를 참조하면 된다.

추모바자회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정대철 씨는 “추모바자회는 정은임 아나운서가 팬들에게 남긴 마지막 선물로 올해도 기일에 맞춰 추모바자회를 열게 됐다”며 “정은임 아나운서를 기억하고 사랑하는 많은 분들의 참여를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다음은 6주기 추모행사 내용이다.

1. 행사일 : 2010년 8월4일 수요일
2. 행사장소 : 아름다운가게 동숭동헌책방 (서울 종로구 동숭동 1-139 지하1층)
   약도 :
http://www.beautifulstore.org/AgaOrg/GetInfo.aspx?SerialNo=1000000134
3. 아름다운가게 기증 방법 : http://www.beautifulstore.org/Join/Giving/Process.as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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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이 꾹꾹 흘러갔습니다.  
'무심하게'라는 말로, 그 5년을 무책임하게 말하고 싶진 않았어요.
그 5년이라는 시간, 누군가에겐 세계가 바뀌고,
자신의 생태가 달라진 시간이었을 테니까요.

내일 8월4일.
(정)은임 누나가 우리에게 작별을 고한 지,
천국을 장식하기 위해 떠난 지,
5년이 되는 날입니다.

늘 이맘 때면 생각나는 그 사람.
허허, 어쩔 수 없습니다.
내 생체시계는 그렇게 돌아가도록 5년 전부터 프로그래밍 돼버렸거든요.

그리하여, 다시 정은임입니다.
내일(4일) 누나를 만나러 갑니다.
아름다운가게 광화문점에서 누나를 그리는 사람들이 모여,
추모바자회를 엽니다.
저녁시간엔 누나를 함께 그리는 시간도 갖겠지요.

1년 여 동안 쌓아온 시간을,
누나에 대한 켜켜이 쌓인 기억을 풀겠지요.
우리는 그렇게 다시 1년을 버티고 견뎠습니다.
참, 대견한 일입니다.
시간을 그렇게 버티고 견디면서,
각자의 생을 살아온 것이.

지난해 행사를 마치고선,
은임 누나를 기억하고, 추억하고픈 사람들만이라도 추모문집을 만들고 싶어,
의견을 내서 올해 추진해보겠다고 공언했지만!
5주기 행사가 닥친 지금,
내 눈 앞에 닥친 일에 허덕거리다 결국,
보도자료 작성과 배포만 하고,
추모문집은 '언젠가'로 미루고 말았어요.

뭐, 어떻습니까.
누나도 이해해줄 겁니다.

그보다 누나는,
철탑에 올라간 노동자들의 아우성과 비명이 계속되고 이 현실에,
더욱 안타깝고 애타는 눈빛과 목소리를 건넬지 모르겠습니다.
괜히 누나에게 미안해집니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랄까요.

혹시나,
내일 추모바자회에 참여할 수 있는 분들은,
작은 정성을 함께 맞들 수 있었으면 좋겠고요.
아니면, 함께 누나를 추억하고 그릴 수 있는 시간을 함께 나눴으면 좋겠어요.

그도 아니라면,
그저 내일 짧은 찰나라도,
누나 한번 떠올려 주세요. ^.^

누나~ 안녕!
킁, 여전히 잘 지내고 있는 거죠? ^.^


P.S. 문집이 만들어졌다면,
저는 누나 떠나던 그 해, 눈물과 함께 긁적인 이 글을,
담고 싶었어요.
라디오시대 마지막 스타가 떠났다(2004. 8)

이하, 행사 보도자료.
============================


제5회 정은임 아나운서 추모바자회 개최
오는 4일 광화문 아름다운가게

지난 5년여 전,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고 정은임 아나운서를 기억하는 아름다운 하루가 열린다.

‘정은임 추모사업회(준)(www.worldost.com)’은 오는 4일(화) 아름다운가게 광화문점에서 제5회 추모바자회를 연다. 이 추모바자회는 ‘정은임 아나운서 팬페이지’가 사망1주기를 맞은 2005년 ‘정은임추모사업회(준)’로 이름을 바꾸면서 ‘아름다운가게’(www.beautifulstore.org)와 함께 열고 있는 행사다. 매년 정은임 아나운서의 기일(8월4일)에 맞춰 ‘정은임 아나운서를 기억하는 사람들과 아름다운가게가 함께하는 아름다운 하루’라는 제목으로 열리고 있다.

지난해(2008년) 4회 추모바자회 행사 사진


바자회는 정은임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자발적인 기부와 참여로 이뤄진다. 행사 당일 아름다운가게에 모여 봉사활동과 수집된 물품을 판매한다. 누구나 자발적으로 참여 가능하다. 수익금은 아름다운가게에 전액 기부하고 있다. 아름다운가게도 정은임 추모바자회 때 영화관련 물품을 지원해 영화와 연애했던 정은임 아나운서의 뜻을 기리고 있다.

지난 1회 바자회 수익금 전액(200만원, 특별후원금 70만원 포함)은 아름다운가게 수해지원금에 포함됐으며 2회 때는 바자회 행사와 추모영상회를 가져 바자회 수익금 전액(182만7천원)은 아름다운가게 수익나눔성금으로 활용됐다. 3회(136만2천원)와 4회(1,55만4450원) 바자회 수익금 전액은 아름다운가게 수익나눔 성금에 보태졌다.

추모바자회에 물품을 보내고자 하는 사람은 아름다운가게 대표번호(1577-1113)로 전화하면 무료택배를 이용할 수 있다. 물품을 보낼 경우, 아름다운가게 신광화문점(서울시 종로구 종로1가 24번지 르메이에르종로타운 지하2층 B215-1, 02-733-6004)로 보내면 된다. 단, 보낼 때 [정은임 아나운서 팬클럽 신광화문점 행사물품]이라고 써야 한다. 기증방법이나 기증받지 못하는 품목 등에 대해서는 관련사이트(www.beautifulstore.org/donation/method.asp)를 참조하면 된다.

행사 관계자는 “정은임 아나운서가 팬들에게 남긴 마지막 선물인 추모바자회를 통해 정은임 아나운서를, ‘정은임의 FM영화음악’(정영음)을 기억하고 있다”라며 “영화인 정은임, DJ 정은임을 기억하는 많은 분들의 참여를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관련사이트
http://www.worldost.com  정은임 추모 사업회
http://www.cyworld.com/bastian2004  정은임 미니홈피

다음은 5주기 추모행사 내용이다.

1. 행사일 : 2009년 8월4일 화요일
2. 행사장소 : 아름다운가게 광화문점 (서울 종로1가24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B215)
3. 아름다운가게 기증 방법 : http://www.beautifulstore.org/donation/method.a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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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7일. 52주년 '신문의 날'.
일제 주구 노릇을 했던, '독립신문' 창간일을 신문의 날로 존속시키는 것은 웃기지만,
신문의 굴절이 가져오는 세계관의 굴절이 나는, 무섭다.

'신문을 읽어야 세상이 보이'고,
'세상을 읽어라 신문을 펼쳐라'(올 신문의 날 표어 대상)에는 분명 공감하지만,
그 세상을 제대로 담아, 독자와 소통하고 있느냐고 묻는다면,
지금-여기의 많은 신문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야 할 판이다.

늘, 신문들은 땅에 떨어지고 있는 '독자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고 동어반복을 씨부려대지만,
그 신뢰회복을 위한 공동의 노력은 거의 없다. 오직 자사 이익만을 향한 이전투구가 물밑 전개될 뿐.
일선 현장이나 기사에서 일부 매체를 제하고, 그들은 이미 오만방자한 권력이고 계몽주의자들이다.

세계관이 서로 '다른' 것은, 세계관이 분화하는 것은, 나쁘지 않다.
매체의 개성과 편집방향에 따라, 독자의 취향과 세계관이 영향을 받는 것은 재밌고,
다양성을 위해서라도 바람직한 현상이다.

그러나, 지금-여기의 신문들에게 그런 것을 기대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취향과 세계관의 분화이전에,
당연히 전제돼야 할 공공성에 대한 기본조차 잊은 '망각 저널리즘'의 토대 위에서,
내가 펼친 신문을 통해 이 세상을 제대로 보고 읽고 만날 수 있을지 당최 의문이다.
많은 기자들을 알고 있지만, 나는 솔직히 그들 중 다수를 '기자'로서 인정하지 않는다.
그저 '월급쟁이'요, '타이피스트'요, 혹은 '양아치'로 생각할 뿐.
아니면, '친구'일 뿐, '기자'라는 타이틀을 붙여줄 수 있는 자들은 소수다.

한때, 기자였던 나는, 그 세계에서 튕겨져 나온 '패배자'에 불과하지만,
나름 변명을 하자면,
그 세계에 계속 있다가는, 스스로 그어놓은 마지노선 밑으로 투항해서 절대 타협해야 할 것 같았다.
이렇게까지 기자를 해야 하나, 미디어에 있어야 하나, 싶은 선까지 거의 도달했기에,
그냥 때려쳤다. 점점 더 나락 속으로 빠져들 것 같은 그런 절박함.
그렇다고 이른바 '투철한 기자정신'을 갖고 있었기 때문은 절대 아니고.
뭐, 사실은, 능력 부족에, 처신 부족이지.

어쨌든 나는,
누군가가 어느 매체를 주로 보느냐가, 그의 세계관을 보여주는 판단기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일부 신문들을 제하고는, 세계를 왜곡하고 굴절시키기만 하니,
그것이 내게 신문 펼치기를 주저하게끔 만든다. 그렇지 않은 신문을 보는 것도 점점 어려워질 판.
그렇게 형성된 세계관은, 점점 더 이 세계를 슬프고 암울하게 만들고 있는 건 아닐까.  
한 사람의 세계관을 바꿔놓는 건, 결국 세계를, 세상을 바꿔놓는 것과 다르지 않다.
착한 신문이, 착한 세계관을 만들어 놓을 터.
그래서, 나는 착한 신문을 많이 펼치면서 세계와 만나고 싶다.

허허. 공연한 잡설이었다.
그런데, 신문의 날은 진짜 바뀔까.

P.S... 이 씨잘데기 없는 씨불렁거림에서, '신문'은 단순히 종이신문만을 일컫는 것은 아님.

2007/05/21 - ['착한' 미디어] - 성년의날에 생각하는 미디어와 세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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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에 맞춰 언급을 하고 싶었지만, 좀 늦어졌네.  
영화 < 주노 >를 보고나니, 이야기가 좀더 명확해질 것 같았다.


'계모는 악녀다?'

얼마전, 울산에서 실종됐던 여섯살배기 어린이가 결국 살해된 것으로 밝혀진 사건, 들었지?
폭행에 의한 내장파열과 출혈이라는 부검결과가 있었잖아. 천인공노할 일이지.
어떤 사연이 있든, 그건 용서받을 수 없는 범죄지. 더구나, 이를 은폐하려고까지 했으니.

뭐, 결정적으로 이 사건이 부각됐던 건, 어린이 살해의 주체가 엄마였기 때문이지.
물론 보도된 대로 그냥 '엄마'는 아니었지. '계모'라는 이름의 엄마. 그렇지. 의붓어머니.
그런데, '계모'라는 사실이 왜 그렇게 부각되던지.
대다수 신문방송 보도의 제목은 온통 '계모'에 방점이 찍혀 있는거 아니겠어!
다들 '친모'밑에서 잘 자라서 그런가봐.-.-;  

사실 이젠 별로 놀라지도 않아. 그런 보도 행위들.
그래도 한숨이 나오더군. 휘유...
시대착오적인 제목들이 선정적으로 나부끼는 것을 보니.
'계모=악녀'라는 통념을 더욱 강화해줬으니.  
다른 선량한 '계모'들이 당할 부당한 시선을 생각하자니.

한 신문의 독자 지적마냥,
많은 보도들은, "마치 '계모'라는 조건이 아이를 살해하는 이유와 동기를 말해주는 듯" 했다규.
인면수심 계모, 잔인한 계모... 등등
그리고 나부끼는 댓글 등을 보자면,
계모에 대한 편견과 악견이 꾸역꾸역 자기증식 하는 꼬라지.
"역시 계모는 악녀고, 어쩔 수 없다"는 식의 무책임한 결론은 대체 어떻게 형성된 것일까.

나쁜 동화, 계모를 내치다

보도가 나올 무렵,
한 친구와 통화를 하다가,
우연찮게 이 사건이 화제로 나왔지.
그 친구, 말하더군.
"정말 계모 무섭지 않냐? 핏줄이 아니라는 이유로. 아이만 불쌍하게 됐지..."
흠, 순간 나는 그 친구가 가진 편견이 더 무서웠다규.

그건 대개의 우리에게 똬리를 틀고 있는 통념.
'나쁜' 동화들과 '혈연'에 치우친 가족의 개념에서 파생된, 계모에 대한 불편부당한 대우.
어쩌면 그런 사회적인 편견과 삐뚤한 시선이 악순환을 조성하는 건 아닐까.

어릴적, 우리가 주섬주섬 줏어읽었던 어떤 동화들, 나는 그들이 참 나쁜 동화가 아닌가 싶어.  
콩쥐팥쥐, 장화홍련, 신데렐라, 헨젤과 그레텔, 백설공주 등등.
'계모'의 악행을 부각했던 동화들.
그러고보니, '좋은' 계모를 다룬 동화는 기억에 없어. 넌 혹시 있니?
물론 착한 계모의 전형을 다룬 이야기도 분명 있겠지만,
이들 나쁜 동화의 강력한 전파력과 영향력은 실로 엄청나지.
그들이 어쩌면 '못된' 계모보다 더 많을지도 모를 '착한' 계모를 내친 건 아닐까 싶어. 우라질.
이들 동화는 제발 좀 전복 시켜야 돼.
그 '모성'이라는 것도, 혈연에 많이 기댄 채 '계모'를 왕따 시키고 있는 것 같구.
'계모는 모성이 없어서 그런 일을 저지른다?' 무서운 발언이야.  

'계모'라고 똑같진 않아~


이번 사건, 간단해. '계모'가 주체가 될 것이 아니라, '개인'의 악행일 뿐이야.
한 개인의 특정 행위에 지위나 신분을 지나치게 결부하려는 태도, 좋지 않아~
가령, 마약을 한 전문직이나 교사 등을 더 부각하는 것도 선정적이야.
그래야 더 많이 읽히고, 배설할 수 있는 쾌감을 느끼겠지만.
기사나 글을 쓰는 사람의 태도나 인성이 중요한 건 그래서지.
"역시 계모라서 어쩔 수 없군"이라는 편견이 작동하는 한,
그의 기사는 선량한 계모의 심장에 바늘을 찌르는 것과 다를 바 없다규.  
그래서 그런 유혹에서도 벗어나는 것, 중요하지.

물론 계모가 친모보다 아이를 학대하는 경우가 더 많을 순 있겠지. 그걸 부정하고 싶진 않아.
설마 통계가 있을까.ㅋ
그렇다고 친모라고 그러지 않는 것도 아니잖아. 그런 경우들 충분히 보아왔잖아.

그런 면에서,
< 주노 >에서 열여섯, 주노의 계모는 이런 편견과 무관한, 통쾌한 캐릭터였어.
계모 캐릭터의 편견을 무너뜨려주는 킹왕짱 엄마.
친모, 계모 구분할 것 없이, '좋은 엄마'의 표상이 아닐까 싶었다규.
의붓딸인 주노의 임신 고백에 새엄마는 다부지다며 주노를 격려하고 주노의 마음을 헤아려주는 것이 막 느껴져. 막그래, 막그래...
특히 초음파 검사에 같이 간 새엄마의 활약이 오나전 킹왕짱!!!
"10대 미혼모들은 아기 키우기에 '꽝'"이라는 한 초음파 기사의 말에 새엄마는 딸을 위해 아주 통쾌하게 쏘아붙여주시거든.
또 배가 불러오는 주노를 위해 고무줄 바지도 만들어주고,
개에 대한 알러지가 있는 주노를 염려해서 그렇게 좋아하는 애완견도 기르지 않아.
대신 강아지 사진을 모으고 수를 뜨는 새 엄마.
주노에 대한 애틋한 애정의 수액이 곳곳에 뿌려져 있더라.


물론 주노가 있는, 미국은 이혼과 재혼이 일반화된 사회이기 때문에,
이같은 관계의 설정이 자연스러운 것일지도 몰라.
그렇다면, 우리도 좀더 문을 열 필요가 있지 않을까.
특히나, 사회적인 영향력이나 파급력이 큰 언론이나 미디어가,
과거의 볼썽사나운 편견에 얽매인는보도를 하는 건, 후져. 후져.


또, 이율배반적인 시선 하나.
입양 말이야.
입양에 대해선 개거품을 물고 "가슴으로 낳은 아이"니 뭐니 신성시해대면서,
의붓부모에 대한 시선은 대체 왜 그런거야.
계부,계모 입장에서 보면, 아이는 입양을 한 셈이잖아.
제발 시각을 넓혀줘.


한 개인의 행위를 그 사람의 지위나 신분과 연결해 지나치게 확대해석하거나 일반화하지 말아줘.
그럼, 계모를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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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늦어졌지만, 한국이 약간 떠들썩했다.
동갑내기 셀레브리티이자 패셔니스타, 패리스 힐튼과 비욘세 놀스가 한국을 방문한 탓에.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이나 한국에서의 Talk, Play에 그닥 관심은 없지만, 미디어들은 역시나 집중포화를 부어대더군. 뭐 덕분에 심심찮게 그들의 패션이나 행보를 살짜기 엿봤다.

비욘세는 일단 차치하고, (그는 나의 열입곱번째 뮤즈 정도 되시겠다.ㅎㅎ)
패리스 힐튼. 나는 그를 아주, 좋아하거나 싫어하거나 그런 것은 아니다. 영화(<하우스오브왁스>)에 나온 그를 보고, 앞으로 연기는 엔간하면 안했으면 좋겠단 생각을 했어도. 갠적으로 호감가는 연예인은 아니라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다. 주변에 패리스 힐튼하면 짜증내는 사람들도 꽤 많고, '머리가 비었다' 등으로 괜한 우월감을 확보하려는 사람들도 봤다.

그는 호감과 비호감이 극명하게 갈리는 연옌이 아닌가 싶다.
연출된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사고뭉치' '무개념' '무뇌' '철부지' '백치미' '된장녀' 등 부정적인 뉘앙스의 레떼르가 그를 규정하는 것도 사실이다. 아니 아마, 멍청하다. 그것이 그의 명백한 상품가치다. 현실과 유리된, 쇼윈도의 공주님 같은 인상도.(그는 어쨌든 '힐튼호텔' 체인의 상속녀 아닌가!) 그런 한편으로 천부적이 아닐까 싶게, 미디어플레이에 능수능란하다. 미디어를, 사람들을 꼬이게 하는 재주, 그 하나는 끝내준다. 물론 제대로 전략을 짜서 하는 것 같진 않다. 섹스동영상이 발각되자, 이를 DVD로 제작 판매하던가, 음주운전에 따른 감방생활 경험을 팔아먹거나, 르완다로 가서 봉사활동 하겠다고 선언하다니. 그는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이 어떻게 소비되는지 알고, 그것을 이용할 줄 아는 것 같다. 아니면 주변에서 누군가 도와주거나. 미디어와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거나. 오죽하면, 미국의 한 일간지가 말했듯, "패리스 힐튼에게 최악의 보도란 그녀를 보도하지 않는 것"이라지 않은가. AP가 일주일간 패리스 힐튼에 대해 보도하지 않겠다는 '실험'도 하고, 한 여성 뉴스진행자는 패리스 힐튼 보도를 않겠다고, 방송에서 선언함으로써 엄청난 화제를 모으지 않았던가. 역시나, 놀라운 패리스 힐튼.

어쨌거나, 나는 그를 평가하거나 재단할 생각은 없다.
세간의 평들이야 어쨌든, 나는 가끔, 패셔니스타로서 패리스의 모습을 보는 것은 나쁘지 않다. 가끔, 멋지단 생각도 한다. 그는 자신의 세계를 패션을 통해 전달하는데 탁월한 면이 있다. 멍청하다는 그 이미지까지도! 무엇보다, 나는 패리스가 "자신의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면서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데 동의한다. <어글리 베티>의 아메리카 페레라가 "대단하다"고 멘트했던 것에 고개를 끄덕인다.

그에게 어떤 대단한 진실이나 생의 숨겨진 비밀을 캘 필요는 없다.
그건 그걸 잘하는 사람들이 해 주면 된다. 패리스의 역할은 분명 다른 것이고.
그는 아마, 계속 사고(!)를 치고 다닐 것이다. 사치하고, 파티 즐기고, 수시로 연애파트너를 바꾸고, 음주운전도 다시 할지도 모른다. 그러면서도, 그는 가식적인 고개 숙이기나 악어의 눈물을 보이지는 않을 것 같다. 그것이 그답다. 미디어들도 패리스에게 '공인'이라는 말도 안되는 잣대를 들이대며, 어떤 책임을 요구하진 않을 것이다.

나는 그런 면에서, 한국의 연옌들이 안스럽기도 하다.
이혼한다고 기자회견까지 해 대면서, 할 말, 안할 말 모조리 까발리고. 별로 그네들 사생활 알고 싶지도 않은데, 굳이 큰 소리로 말씀까지 하시고. 진상 미디어들은 그걸로 장사해 먹겠다고 혈안이고. 물론 연옌들 사생활은 어느 정도 까발려질 수밖에 없지만,
아쌀하게 패리스처럼 하던가, 아니면 조디 포스터처럼 입에 자물쇠를 채워놓던가. 미디어들도 좀더 솔직해지고.

그러다, 이런 기사도 마주쳤다.
이효리, 6일 약속대로 국민연금 납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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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날짜, 한 포털사이트의 메인에 볼드체로 아주 강조를 해 주셨더구만. 이전에 어떤 맥락이 있었는지 몰랐다. 국민연금을 아마 안 냈던거 같은데, 약속까지 하셨나보다 했다. 관련기사 제목을 대충 보아하니, 이 기사가 시발점이 된 듯 했다. '단독확인'하셨다니. 이 얼마나, 놀라운 취재력인가. -.-
[단독확인] 이효리, 국민연금 장기체납…"1년 이상 미납부" 물의

보다가, 폭소를 터뜨렸다. 얼척 없었다.
"...스타들의 도덕 불감증이 위험수위를 넘어선지 오래다. 1년에 수십억원을버는 그들에게 매월 32만 4,000원(최대 납부액)은 큰 금액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수도 있다. 아니 깜빡했을 수도 있다. 적어도 자신의 이름앞에 붙은 공인이라는 수식어가 부끄럽지 않으려면 설령 그 법이 악법이라 해도 사회적책임을 갖고 먼저 이행해야 한다. 그것이 공인이라는 자의 의무다..."

물론 이효리쪽이 기본적으로 잘못한 거다.
하지만, 생각해봐라. 32만4000원을 일부러 안 냈겠나. 그걸 악법이라 생각해서 버텼겠나. 과연 이효리가 국민들을 위해 공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공인이었나. 이걸 도덕불감증과 접목하는 저, 놀라운 센스! 후지다. 정말. 완전 후진 엄숙주의. 기사를 조용히 1단으로 처리하던가, 이효리 쪽에 살짝 언급만 해줘도 될 문제를 저렇게 후지게 다루다니. 지들이야말로 사회의 공기로서 제대로 의무나 역할을 하는지, 먼저 자문해봐야는 거 아닌가.

아이비는 또 어떤가.
연애한 게 무슨 죄라고. 그렇게 꽁꽁 숨어야되나. 죄라면, 그딴 남자를 연애상대로 택했다는 것 정도지. 동영상이 있니, 없니, 그게 뭐니. 둘 사이의 연애사를 시시콜콜 캐고, 동영상 찾아 헤매는 이 후진 미디어들. 하이에나 습성이지. 남들 먹다버린, 썩은 음식만 찾아 댕기는. 쯥.

21세기에도 여전히 후진 건 어쩔 수가 없다. 이 땅에 자유연애는, 1920년대에 기지개를 폈다. 당시 신여성이었던 나혜석은 "내 몸이 제일 소중하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자유연애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게끔 만드는 후진 미디어들이 있는 현실, 나혜석은 이 꼬라지를 보면 뭐라고 할까.

이 땅의 연옌들은 패리스 힐튼이 아마도 부러울 것 같다. 아싸리 몸뚱아리를 국가에 헌납하고 연옌 생활을 하는 편이 훨 낫겠다. 후진 미디어들도 아예, 스스로 '옐로 페이퍼'라고 커밍아웃하던가. 괜히 엄숙한 척 하지 말고. 솔직한 애들이 되레 착해보인다니까. 기계적인 엄숙함을 강요하는 자들은 너무 끔찍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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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이면 모를까,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때,
대다수 미디어들도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꺼리'에만 함몰돼 있을 때,
그는 지속적으로 기사를 생산하면서 고군분투했다.

하지만, 머나먼 소말리아에서 당하고 있는 선원들의 고통은,
아니, 정확하게는 '돈 없고 빽 없는' 사람들의 고통 따위는,
대다수 (주류)미디어로부터 환대는커녕 시선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바로 앞서 있었던 아프간 인질 사태와도 확연히 다른 풍경.
물론 국제정세나 사태의 주체 등 주변 변수들의 차이도 분명 존재하지만.

그래도, 그는 꿋꿋이 자신이 책임져야할, 저널이 맡아야할 책임을 끝까지 완수했다.
피로하고, 외로웠을 것이다. 자신이 낳은 기사가 부각되지 않는다는 것은 문제도 아니다.
머나먼 타국에서 감금돼 폭력에 시달리고 있는 선원들의 현실을 담아 세상에 뿌렸음에도,
대부분 미디어나 사람들이 무관심하다는 그 사실이, 그 현실이 견디기 힘든 것이다.
지금-여기의 미디어에 대한 환멸도 당연히 들었을 터이고.

숱한 시간이 흐른 뒤, 선원들은 마침내 구출됐다.
선원들에 비할 바는 당연 아니겠지만,
그도 피로하고 외로웠지만,
피로는 성취감을 배가한다. 시장함이 맛을 돋구는 것처럼.
무엇보다 다행이었다. 선원들이 풀려날 수 있어서.
아울러, 자신의 울림이 뒤늦게라도 조금씩 먹혀들어서. 마냥 공허함에 그치지 않아서.

한편으로 그것은,
지금-여기의 대부분 미디어를 보여주는 하나의 실례.
그들은 자신들이 보여주고 싶은 것만 담는다. 그리고선 우리가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환상을 심어주며 의식을 교란시킨다. 실체나 진실을  향한 노력은 언감생심. '재편집한' 세계를 보여주면서 그것이 모든 것인양 재단한다. 미디어는 그렇게 인공적인 건조물. 문제는, 사실 우리가 아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이 웃기는 주류 미디어들.

아래 그의 인터뷰 내용은,
'지금-여기'의 대다수 미디어 혹은 언론이 기사거리를 소화하는 방식 중 하나.
“아프간 사태 때 납치됐던 샘물교회 사람들의 집안은 전직 고위관료도 있을 정도로 유력했지만, 이들은 선원이라는 특수한 직종인데다 가족 또한 대부분 가난하고 ‘빽없는’ 사람들이었다. 과연 이들이 선원이 아닌 승객이었다면 이렇게 무시할 수 있었을까. 피랍 초기 ‘협상에 지장이 있다’ ‘보도하면 몸값 오른다’ ‘선적(배의 국적)이 한국도 아니다’라는 외교부의 주장이 먹혀 언론에 등장하지 않은 면이 있다. 그러나 10월 언론들이 많이 보도한 뒤에도 몸값은 오르지 않았다. 언론이 너무 쉽게 외교부 주장에 동조했다.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들 만큼 언론은 이 문제를 공론화하지 않았다.” (미디어오늘)

☞ "소말리아 피랍 선원이 ‘승객’이라도 무관심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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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는 내 좋은, 친구다. 자랑스런 친구.
수고했다. 뺑. 너의 수고를 치하하마. ^.^

2007/09/17 - ['착한' 미디어] - "세상에는 '변-신'보다, '디워'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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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노동자'보다는 '이주노동자'가 더 적합한 이유.

외국인노동자는 "한국 사람이 아닌 외국에서 온 노동자"를,
이주노동자는 "노동하기 위해 생활 터전을 옮긴 노동자"를 의미한다.
'이주노동자'는 외국인이라는 국적의 차별성을 강조하던 기존의 명칭 대신
노동자라는 동질성에 주목하고,
사실상 대다수의 사람들이 살던 곳을 옮겨가며
노동한다는 이주의 당위성을 강조하고 있다.


- <씨네21> 620호 '이주노동자영화제를 가다' 중에서 -


나도 이주노동자다.
생활 터전을 타국으로 옮기는 것까지는 아니지만,
노동의 터전을 옮겨가며 노동하고 있다. ^^;

그래서,
어디에서 오건, 국적이 어떻건, 우리는 '노동자'라는 테두리에서 동질성을 갖고 있다.
다른 나라에서 온 노동자 역시, 여기에 살아온 노동자와 다를 바 없는 대우를 받는 것이,
올바른 태도겠지만, 말그대로 그건 '환상'이고.

그저 작은 부분이라도, 할 수 있다면 좋겠지.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외국인노동자'라는 단어를 쓰기보다는 '이주노동자'에 익숙하면 좋지 않겠나. 뭐, 입이나 손에 익지 않으면 할 수 없고.

그런 맥락에서 더 나아가자면,
나는 고용허가제가 아닌 노동허가제를 지지한다!

..."고용허가제는 말 그대로 고용주에게 모든 허가의 권리를 주는 거예요. 노동자에게 사업장 이동의 자유가 없고. 1년 단위로 계약을 해야 하고. 모든 권력이 고용주에게 있으니까 노동자는 노예와 마찬가지예요."...

무슨 차이냐고 물을지 모르겠으나,
제도의 주체가 누구냐, 법 규율의 대상을 누구로 하느냐는 실로 큰 차이가 아닐 수 없다.
고용허가제는 고용주가 이주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는 권리를 줌으로써 고용주 위주의 제도로 존재한다. 그러나 노동허가제는 노동자에게 집중한다. '고용할 권리'가 아닌 '노동할 권리'. '노동권의 보장과 체류자격·기간'이라는 현실적 주제에서도 노동허가제가 바람직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것이 사회적 비용을 더 줄일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쓰잘데기 없는 갈등과 차별을 조금이라도 극복할 수 있는. ☞ 고용허가제를 넘어 노동허가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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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10월 17일)은 '세계빈곤퇴치의 날'.
1993년 UN총회에서 정한 날로서 지구촌 곳곳에서 이날 '빈곤에 반대하는 지구적 호소(Global Call to Action against Poverty, GCAP)' 캠페인이 진행된다. 몇몇 사회단체 등은 이날 '1017 빈곤심판 민중행동'이라는 행사도 갖고, 빈곤에 대한 관심 촉구를 위한 콘서트도 열린다. '화이트밴드 콘서트'. 왜 화이트밴드냐고? 특정한 날을 정해 뜻을 함께 하는 전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동시에 '흰 띠(White band)'를 착용해 빈곤 퇴치를 위한 실제적인 행동을 촉구한다는 의미다.

다수빈국과 소수부국의 불균형.
알다시피, 빈곤은 심화되고만 있다. 빈곤은 어디에도 널려있지만, 그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줄어든다. 소수의 부자는 다수의 빈자를 착취하고, 이를 국가로 바꿔도 다르지 않다. 빈곤은 어디에도 널려있다. 그러나 관심은 그닥 없다. 그저 일상적인 현상으로만 치부해서일까. '함께 사는 길'은 별 것 아니다. 타인의 고통에 예민해지면 된다. 일독하시라.
☞ 남의 고통에 무덤덤한 사회

빈곤은 바로 우리의 문제 아닌가?
하긴 어려운 문제다. 이 팍팍하고 비열한 세계에서, 먹고 살기도 바쁜데, 무슨. 그래도 하루만이라도 관심 가지면 좋지 않나. 나와 관련없다고 치부하지만, 언제 내 자신의 문제가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 아닌가. 어느 누가 친구, 연인, 친척이 될지 어떻게 아나. 우리가 발 붙이고 사는 이 세계의, 우리가 외면할 수 없는 이웃의 문제 아닌가? 하긴 귀찮다고 해도 그렇게 타박할 문제만은 아니다. 소수를 제외한 평범한 개인의 일상과 삶은 이미 어찌할 도리없이 숭악한 자본의 질서에 편입돼 죽지 않을정도로 시달리고 있지 않은가. 정신의 빈곤.

묻는다.
120억의 인구가 먹고도 남을 만큼의 식량이 생산되고 있다는데, 왜 하루 10만명이, 5초에 한 명의 어린이가 굶주림으로 죽어가고 있는가? 최근 읽은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장 지글러 지음, 유영미 옮김 / 갈라파고스 펴냄)가 제기한 문제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 조사에 따르면, 2005년 현재 8억5000만명이 굶주림에 스러진다. 미국의 생산가능 곡물 잠재량만으로도 전세계 사람들이 먹고 살 수 있고, 프랑스의 곡물생산으로 유럽 전체가 먹고 살 수 있는 전세계적 식량과잉의 시대에도 우리는 먹을 것이 없어 굶어죽는 이들을 접해야 한다는 사실. 참으로 불합리하고 흉포한 세계질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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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은 먹고 다니냐",
고 묻던 (송)강호 행님의 말은 그저 허튼 농담이 아닌 셈이다. 이 책의 해제를 맡은 우석훈 성공회대 외래교수는 이런 말을 던진다. "기아에 대한 그의 고민(장 지글러)은 실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과 자기가 속해 있는 작은 우주에 대한 질문 자체이다." 19세기 산업혁명으로 생산성의 급격한 향상으로 물질적인 결핍은 이제 찾아볼 수 없다지만, 굶주림으로 죽음에 이르는 생명들은 아직 여전하다. 아니 굶주림은 더 심화되고 있지. 이 책은 말한다. "현재로서는 문제의 핵심이 사회구조에 있단다. 식량 자체는 충부하게 있는데도,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그것을 확보할 경제적 수단이 없어." 빈곤은 세습되고 배고픔의 저주는 대물림된다는 사실. 끔찍하지 않은가.

그러나 미디어들의 관심은 역시나 썰렁하다.
'지금-여기'의 대다수 미디어들은 빈곤 문제에 그닥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그 끔찍한 문제에 눈을 감고 있는 것 같다. 빈곤은 너무도 익숙한 의제라서? 나서봐야 별 볼 일없다는 판단 때문에? 돈이 안돼서? 이유야 다양하겠지. 굳이 입 아프게 말하지 않아도 알만한 이유. 세상을 담는 그릇이자 공기임을 자임하지만, 많은 매체들은 오늘도 연예인 부부의 이혼소식에 더 많은 관심을 쏟는다. 검색해도 관련 기사가 나온 곳은 몇개 없네. 알기나 하는걸까.
☞ "죽지 않을 정도의 원조로 빈곤 해결되나"
☞ "세상을 바꾸는 '천원'을 아십니까?"

너무해, 야만적인 미디어들.
빈곤 앞에 '악' 소리 제대로 내지 못한채 스러지는 빈자들의 아우성에 미디어들은 귀 기울이지 않는다. 오늘 하루라도 미디어들이 부자 되는 법 설파를 멈추고, 빈곤한 자들의 아우성과 빈곤의 구조적 문제에 대한 관심을 촉구해 주면 안될까. 물론 그것이 '쑈'에 불과할 지라도 억지로 이런 날은 알고 가자고 속삭여주면 안될까. 그렇게라도 이 얼척없는 세계를 고민해주면 안될까. 미디어들의 야만성. 하긴, 바보 같은 바람이지.

물론 그것으로 세상은 바뀌지 않아.
나도 충분히 알아. 그러나, 학교도, 미디어도 이를 충분히 알려주지 않는건 아닐까. 빈곤이나 기아의 원인과 결과는 세부적이고 정확한 분석을 필요로 하는데, 왜 그들은 침묵하지? 자기네들 배가 불러서? 미디어나 학교가 마땅히 해야 할 일 아닌가. 그래서 우리는 모호한 이상이나 현실과 괴리된 인간애나 정서만 가질 뿐, 그 구조적인 원인과 끔찍한 결과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 아닐까. 그러니 이런 날 단 하루라도 얘기해 달라고. 당신들의 잘난 지식과 지혜로. 무엇이 빈곤을 심화시키고 세습시키는지, 대안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단 한사람이라도 그것을 제대로 고민하게끔 만들면 좋지 않겠나. 빈곤이 당장 없어지진 않겠지만, 한사람이라도 구원받을 수 있도록.

다시 한번,
'좌파 낭만의 스토리텔러' '결핍된 계급의식의 저격수', 우리의 켄 로치 감독님의 일갈을 되새김질!
"희망은 없다. 정치가와 경제인은 대개 남을 위해 일하지 않고 자기 이익을 위해 일한다. 고용주는 고용인의 일자리를 뺏고, 헐값으로 대체 노동력을 산다. 이런 구조 안에서는 누구도 빠져나갈 수 없다. 유일한 희망은 새로운 경제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소수의 탐욕에 봉사하는 경제가 아니라, 다수의 생계를 안정시키는 그런 구조 말이다."
나는 여전히, 이 말을 믿는다. 아니 신봉한다. 그리고 당연한 것이다.

이럴 때, '헬스보이'!
코너는 끝났지만, 나와서 함 소리쳐 주지 않겠어?

"미디어들은, 정녕 '빈곤'에 관심없는갸~"
"그렇다면 세상을 담는 그릇 노릇을 제대로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갸~"
"언제까지 빈곤 문제를 방치하고만 있을 것인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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