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바쳐 응원해 본 사람은 안다.
그것이 어떤 감정을 동반하며, 어떤 행동을 야기하는지.
불완전 연소 따위는 끼어들 여지도 없이, 그 순간만큼의 생애는 오롯하다.
고로, 목숨을 거는 일이다. 한 팀을 응원한다는 것은.
나는 사랑을 하면 그렇게 한다.
당신을 만나 사랑할 수 있는 생애, 고맙다. 너에게 나를 바친다. 내게, 사랑은 그런 것이다. 한 팀을 응원한다는 건, 사랑하는 것이다.
너를 위한 그 한 생애를 온전히 완전하게 연소한다. 사랑은 그런 것이다.
어제(9/29), 가을이 열린 쌀쌀하고 맑은 날의 준플레이오픈 1차전.
승부 자체도 짜릿한 명승부였지만, 생애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 겹친 시간.
야구력 30년, 야구장력 28년, 짧다고 볼 수 없는 시간.
생애 처음! 적진에서, 그것도 적진 한 복판에서 직관(직접 관람)했다. 재미나면서도 묘한 감정이 오가면서, 소심하게 입과 몸을 놀려야하는 상황.
적군의 심장부에서 적장들의 눈총을 받으며,
내가 늘 있었던, 내가 있어야 할 곳을 바라만 봐야만 하는,
그러니까, 전장에서 포로가 돼서 아군을, 내 땅을 그리워하는 마음.
내 심장을 벌떡벌떡 뛰게 만드는 저 곳의 함성과 몸짓에 닿지 못한 안타까움.
그런 것도 있고,
아, 내가 싸질렀던 몸짓이 여기선 이리 흡수·반사되는구나. 재미난 핑퐁질.
여기선 이런 노래, 행동, 몸짓, 퍼포먼스, 응원도구들이 사용되는 구나.
미처 알지 못한 세계를 소심하게 두리번 거리면서 신기해한다.
여하튼, 그것은 목숨을 거는 일이다.
적진에 함께 뛰어든 한 형은 내게 꾹꾹 다짐한다.
"적진 가운데서 목숨 걸고 응원한다. 무조건 이긴다."
알다시피, 노떼팬이란 야구인, 준우앓이.
가을의 시작을 알리는 짜릿한 축포.
가을은 노떼의 짜릿한 승리로 열렸다.
"이 맛이 야구다"를 절로 나오게 하는 명승부.
자, 개종할지어다. 노떼로 개종하면, 완전 연소가 가능하다.
'레알' 야구가 알고 싶고 보고 싶다고?
노떼 야구가 '레알' 야구다!
내 힘껏 도우리다. 왜 노떼를 사랑하냐고? 어제 게임으로 그 이유, 충분하다. 하이라이트라도 꼭 보시라.
어제 적진에서 챙긴 전리품. 함께 간 형이 전리품을 들고 있다!
미안하다, 뚱산. 뉘들은 올 가을 노떼의 스파링 파트너다!!
한국시리즈 우승한 마냥, 야구장 밖에서 축제 한 마당을 펼치는,
우리의 노빠(노떼 자얀츠 빠돌이)들! 난리도 아녔다.
나는 오늘도 야구장으로 향한다. 나의 가을은 야구장에서 숨쉰다. 노빠(노떼 자얀츠 빠돌이)라서 행복해요~
알면 달라진다. 달라지면 사유하게 된다. 사유하면서 세계는 새롭게 혹은 넓게 열린다.
김용규 선생님 덕분이다. 숲 덕분이다.
이제 숲과 합방을 하면, 김용규 선생님과 선생님이 말씀해주신 숲이 떠오른다.
좀 더 숲과 가까워질 수 있었던 계기였다.
지난해 4월, 그러니까, 봄.
책을 읽고 용규 선생님을 뵙고, 말씀을 나눴다.
인터뷰가 끝난 뒤, 선생님과 경희궁 부근의,
아는 사람만 아는, 운치 있고 정겨운, 멋들어진 카페에서 낮술(맥주!)을 마셨다.
숲사람과 함께 한, 숲길을 거닌 듯한 상쾌함. 캬~, 이 낮술이 맥주다!
당신도 원한다면, 이곳으로 안내하겠다. 대신 낮술은 당신이 쏴~:)
그리고 나 역시 낙심하지 않았다.
물론 도시에선 이것이 쉽지 않지만,
잘 찾아보면 도시에도 숲이 있고, 자연이 있다.
신선한 공기, 빛나는 태양 맑은 물, 그리고 친구들의 사랑 이것만 있거든 낙심하지 마라. (괴테)
질경이는 여러 해를 사는 다년생 풀입니다. 주로 길의 가장 자리나 빈터 등 다른 풀들이 살기 어려운 자리에서 자랍니다. 길 위의 수레바퀴 위에서 자주 발견된다 하여 한방에서는 잎을 차전, 씨앗을 처전자라 부르며 약용합니다. 녀석의 살아가는 방식을 가만히 들여다 볼 때마다 나는 '혁명'이라는 단어를 떠올립니다. 누간가는 혁명을 얼음 위에 불을 피우는 일과 같다고 했습니다. 그만큼 불가능에 가까운 상황을 전복해야만 겨우 가능해지는, 실로 어려운 일이 혁명일지도 모릅니다. 질경이는 그렇게 어려움이 많은 혁명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개척한 들풀입니다. 녀석은 주로 옥토보다는 비전박토의 척박한 딸을 골라 자랍니다. 왜 옥토가 아닌 박토의 땅을 골라서 자랄까요? 그것은 누구도 침범하기 힘든 자신만의 터전을 확보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숲에게 길을 묻다》(p.124)
그러니까, 아래는 그 만남의 기록이다.
글 첫머리의 '봄'은 '가을'로 바꿔도 좋겠다.
아, 선생님 숲을 만나러 가기로 했는데, 아직 못갔다. 기회를 만들어야겠다. :)
의심할 여지없이, 봄이 내렸다. 더할 나위 없이, 당신도 함께 내린다면야 더 좋겠지만, 그건 잠시 묻어두자. 지금은 봄의 지저귐에 귀 기울일 때다. 물론 좀 과잉이다 싶게, 후끈 달아오른 감도 없진 않지만, 그래도 어쩌겠는가. 지금은, 봄이다. 설마 당신, 컴퓨터 앞에 코 박고, ‘오로지 일!’만을 사수한답시고 디지털 사막에서 허우적대는 건 아니겠지?
아마도 당신은 봄을 만끽하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하얀 속살을 드러내 목련의 야릇함과 물오른 초록이 흥건한 버드나무의 살랑거림, 그리고 바람에 살랑거리는 벚꽃과 분홍빛의 알싸한 유혹적 자태를 드러낸 철쭉의 향연.
그렇다. 일찍이 괴테선생 가라사대.
신선한 공기, 빛나는 태양 맑은 물, 그리고 친구들의 사랑 이것만 있거든 낙심하지 마라.
하지만 알다시피, 대부분의 도시생활은 괴테선생의 이런 속삭임에 동의하기가 어렵다. 그도 그랬다. 숲생태전문가 김용규. 그는 한때 도시에서 한 모험기업의 CEO(최고경영자)였다. 대부분의 사람이 선망하는 자리였지만, 그는 맞지 않는 옷 같았다. 더구나 도시와 자본의 욕망을 뒤치다꺼리하느라 지칠 대로 지쳐있었다. 이건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었다. 결단을 내렸다. 더 이상 그 뒤치다꺼리를 하지 않겠다며 CEO자리를 내던졌다. 허섭한 욕망이여, 안녕~
그리고선 숲으로, 농촌으로, 발걸음을 뗐다. 『숲에게 길을 묻다』(김용규 지음/비아북 펴냄)는 그래서 나왔다. 그는, 더 이상 도시와 자본의 욕망에 부대껴야 하는 CEO가 아니다. 숲생태전문가이자 농부. 그러니까, 당시 이런 것.
“바이 바이 바이 정든 도시여 굿바이/ 너를 두고 나 돌아간다…♩ 논 갈고 밭가는 나의 진짜 집으로 나 돌아간다/ 도시여 안녕♪ 촛불하나 밝히는 나의 진짜 집으로 나 돌아간다/ 도시여 안녕~♬”(조영남 ‘도시여 안녕’)
지난 6일 경희궁의 낮. 녹음은 짙음을 더해가고 있었고, 햇살은 따사롭다 못해 따가웠다. 도시의 비슷비슷한 얼굴들 틈에서 산속 사람의 포스를 지닌 한사람. 모처럼 충북 괴산의 오두막에서 서울 나들이에 나선 그를 만났다.
영락없는 산사람이었다. 길게 늘어뜨린 머리는, 일종의 표식이자 징표였다. ‘더 이상 이 도시가, 사회가 요구하는 대로 살지 않겠어’라며 숲과 합궁하기로 결정하면서 길렀던 머리. 단정하게 매만졌을 CEO의 헤어스타일은 과거일 뿐. 그는 이미 그렇게 숲의 일부가 돼 있는 듯 했다.
그리하여, 아래는 숲생태전문가이자 농부, 김용규와 나눈 숲의 대화다. 9가지 열쇳말로 본 그의 이야기. 어쩌면 당신과 나, 우리의 마음 어느 한 구석에 둥지를 튼 어떤 희망과 소망, 용기의 속삭임.
나를 만나는, ‘숲’
우선, 숲으로 향하기로 마음먹은 출사표를 보자.
“나는 이제 나답게 살 것이다. 나답게 산다는 것은 어떤 삶인가? 그것은 돈이나 출세 때문에 비굴해짐이 없는, 자존과 자립으로 가득한 삶. 나의 편리를 도모하고자 타인의 이익을 빼앗지 않는, 죄짓지 않는 삶. 숨 막히는 도심에 갇힌, 자연에 대한 그리움을 마음 놓고 채울 수 있는 고삐 풀린 삶. 모색하고 싶으면 싶은 대로, 그만두고 싶으면 싶은 대로, 그렇게 가슴이 시키는 대로 창조의 자유를 벅차게 누리는 삶.
그리하여, 마침내 마음이 두어 뼘 더 자유롭고 평화로워지는 삶. 이 모든 것으로 조금 더 아름다운 세상을 이루는데 기여할 수 있는 삶. 내가 나답게 산다는 것은 바로 이러한 삶이다. 내가 내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삶이다.”(p.174)
나이 마흔 살. ‘도시여, 안녕’을 고하기로 마침내 마음먹었다. 2년을 준비했다. 혼자서도 숲을 공부했고 1년여는 집중적으로 숲생태전문가 양성과정과 필드강사 등을 거쳤다. 살 곳을 찾기 위해 1년여 강원도를 헤집으며 돌아다녔다. 한군데가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자금 마련 등으로 아쉽게 사흘 차이로 놓쳤다.
그리고 결정된 곳이 충북 괴산. 우리 기술로 지은 수력발전소가 있는 괴산댐 주변이었다.
숲에 들어가기로 결정하기 전, 6개월 동안 산 구석구석을 누볐다. 새벽, 한낮, 저녁, 비 등등 각기 다른 조건과 환경의 모습에서. 산에게 묻고 또 물었다. “나를 받아주시겠습니까?” 답이 당장에 있을 턱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가죽나무가 말을 건넸다. “나를 베지 마라.” 귀가 번쩍 뜨였다. 두 번째로 숲과 교감한 경험. 그러니까, 숲의 조건부 승낙이었다. ‘나를 받아주겠다는 거구나. 베겠다는 내 마음을 질책하는 것이구나.’ 일단 저지르고 보자, 더 필요하면 배워보자, 의 마음이었다.
아 참, 첫 번째 교감은 국립광릉수목원에서였다. 전나무길이었는데, 누워서 20여분을 있으면서 무아지경을 경험했다. 온 세상은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나도 없고, 세상도 없는 첫 경험. 지금도 그런 경험은 어려울 정도로 놀랍고 신비로운 것이었다.
“숲에 기대어 사는 삶을 시작하면서부터 숲은 나에게 스승이 되어 주었습니다. 그의 가르침을 얻기 위해 내게 필요했던 것은 다만 더 나은 삶을 위한 기술과 기교를 내려놓는 것이었습니다.”(p.39)
직장과 도시 ‘탈출’
도시에 사는 모험기업의 CEO. 힘겹고 스트레스도 많았다. 오십견까지 올 정도였다. 학교 졸업 후 유학을 생각하고 유학비를 벌기 위해 들어간 것이 회사였는데, 어떡하다보니 모험기업의 CEO까지 오른 터였다. 그러면서 꿈도 잊고 회사에 짓눌려 있었다. 더구나 기러기 아빠.
유일하게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길은 주말마다 가는 산이었다. MTB를 타고 오르내렸다. 힘들어서 찾기 시작한 그곳에서 생명력을 느끼고 문제의식을 가지기 시작했다. ‘이 나무는 왜 이렇게 휘었을까’ ‘이 나무는 어떻게 바위틈에서 자라는 걸까’ 신기했다. 그렇게 숲의 생명들이 주변과 관계를 맺고 자기를 실현하는 모습에 점점 빠져들었다. 식물이름과 같은 분류학보다 생명 그 자체가 주는 신비와 생태에 매혹됐다.
그러면서 마음의 소리를 듣고 느꼈다. 산에 있으면 행복하고, 좋았다. 숲의 생명도 보게 됐고 산의 몸짓과 바람결 등이 뭔가를 말하고 있음을 감지했다. ‘그래 나 아닌 옷을 입고 살고 있었구나. 가야겠다, 도시를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꿈이 절로 생겼다.
여느 도시의 우리들처럼 그에게도 도시는 이랬다. “도시는 도무지 휴식을 모르게 하는 공간이었습니다. 빈한하면 빈한한 대로 고달프고, 풍요로우면 풍요로운 대로 고달프기 쉬운 곳이 그곳이었습니다. 오늘날 도시에서 우리의 삶은 쉼표를 만들기가 참 어렵습니다.”(p.180)
문제는, 아내를 설득해야 했다. 구본형 선생은 이런 말을 건넸다. “아내를 설득할 수 없는 꿈은 꿈이 아니다.” 설득과 회유. 협박 아닌 협박(?)까지 섞어가면서 그야말로 강온양면정책. ‘사오정’과 같은 직장 정년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따져보면 나름의 ‘카드’였다.
“요즘은 45세에 떠나는 사람이 많아졌어. 나도 얼마 남지 않았잖아. 이건 무능이 아닌 사회구조야. 그러니까 지금 숲에 가면, 나중에 나랑 손잡고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숲도 보고 근시안적 행복이 아닌 롱런의 행복을 누릴 수 있어.”
쉽지 않았지만, 도시형 여성이었던 아내도 차츰 생각을 바꾸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내는 나름 위험을 분산할 수 있는 방안으로 양평을 제안했다. 집 지을 땅을 사서 조직에서 좇아내면 그때는 거기에서 살아보자고. 양평이 일종의 중간거점이 됐다. 땅을 놀리느니 농사를 짓자고 했다. 고추와 고구마 등 농사를 지었다. 희한하게도 아내가 일을 더 잘했다.
친구들도 일부 규합했으나, 그들은 이내 포기했다. 기름값이 많이 든다며. 그때 알았다. 기름 값은 농사와 치환되지 않는구나. 그러면서 확실히 알았다. ‘자기가 땀 흘린 만큼 생명과 애정이 싹트는구나. 이건 돈으로 치환되는 것이 아니구나.’
“학교나 학원, 혹은 유명하다는 전략 강좌 따위에서는 ‘나’답게 살 수 있는 어떠한 지혜도 가르쳐주지 않았습니다. 그곳에는 삶을 조금 더 편하게 다룰 수 있는 도구만이 있을 뿐, 나답게 나를 꽃피우며 사는 데 필요한 가르침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예상치 못한 폭풍우나 가뭄, 혹은 혹한이 우리 삶을 가로지르며 끼어들 때 그동안 배웠던 도구와 기술과 지식은 무용했고, 더러 짐이기까지 했습니다.”(p.27)
즐거운 나의 오두막, ‘백오산방’
그의 숲 하루를 잠깐 들여다보자. 그는 이렇게 묘사한다.
“이곳 오두막에서 지내는 나의 하루는 철저히 해의 길이를 따릅니다. 해가 뜨면 하루의 삶이 열리고 해가 지면 하루의 삶이 닫힙니다. 그것은 마치 나무들의 하루와 같습니다. 낮은 노동과 창조의 시간이고 밤은 휴식의 시간입니다.
날이 밝으면 깨어나 숲과 들을 들러보고 끼니를 먹는 것으로 하루를 엽니다. 낮이면 곡식을 돌보거나 집을 고치거나 정리할 곳에 손길을 줍니다. 숲 속을 거닐며 수많은 생명들을 만나고 살피고 생각하고 기록하는 일도 중요한 일과입니다. 때로 땔감을 줍고 장작을 패는 일도 중요합니다. 이는, 궂은 날과 추운 날에 대한 대비이기도 하고 운동이기도 합니다. 약간의 시간을 떼어 읽고 쓰는 작업도 지속합니다.”(pp.177~179)
백오산방. 오두막 이름이다. 살 곳을 결정하기 전, 구본형 선생에게 요청했다. 가죽나무가 말을 걸어온 충북 괴산의 산에 함께 가서 봐달라고. 그런데 막상 가니, 표정이 좋지 않았다. 산세가 험한 까닭이었다. 바깥에서 보면 막혀있고 험한 산이었다. 내부에 들어가 바깥을 봤건만, 무엇보다 나무가 말을 걸어준 곳이건만, 그 내부의 속살을 엿보지 못한 사람에겐 당연한 반응이었다. 구 선생은 차라리 괴산댐 어귀의 다른 곳을 권하기도 했다.
며칠 뒤, 전화가 왔다. 하늘에 물어보자는 구 선생의 전화. 약속을 잡고 갔더니 역술인이신 초아 서대원 선생(『주역강의』의 저자)이 나와 계셨다. 술 한 잔 걸치고 지어준 호가 백오(白烏). 흰 까마귀. 왜 하필 까마귀, 그것도 흰 까마귀인가 했다. 고구려의 시조새가 까마귀, 즉 삼족오였고, 그 중에서 흰 까마귀는 상서로운 길조란다. 그리고 돌연변이. 상서롭긴 하나 무리에 섞이지 못하는 돌연변이. 자신을 대변하는 것 같았다. “상서롭고 사람 시각으로 보면 외롭지만 원래 무엇이나 홀로 사는 건데, 자기 길을 뚜벅뚜벅 걸으며 하늘을 나는 자유로운 새”가 바로 백오 아니겠나.
그리고 초아 선생을 모시고 애초 눈여겨 본 그곳을 보여드렸다. 말을 건 나무를 짚으시고는 예견을 하셨다. 이곳에 둥지를 틀면 변화가 많을 것이라고. 백오산방은 그렇게 탄생했다. 마을에서도 1km 떨어져 있지만, 이 또한 좋지 아니한가. 고라니가 일주일에 한 번씩 보이는 즐거운 나의 집.
집을 찾아 돌아다닐 때도 좋았지만, 백오산방에서 잠들고 깨어나고 일하면서 정말 살아있구나를 느낀다. 과거에 대한 회상은 있으나 회한은 없고, 미래에 대한 두려움은 거의 없어 걱정으로 불변하는 밤도 없다. 나무 심는 일을 꾸준히 하면서 죽은 나뭇가지를 주워 구들방을 데우는데 그때마다 역시나 느낀다. ‘아 온전히 나는 살아있구나. 이 순간을 살아가는구나.’
소망과 교감이 있는 ‘공동체’
숲에서 새로운 희망과 빛을 찾고 싶은 사람들, 지혜를 찾고 싶은 사람들 6명이 모인 공동체가 있다. 이름 하여 ‘행복숲 공동체’. 말하자면 모험공동체다.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생각하고 있다. 도시 등에서 상처받은 마음을 심리적 툴을 통해 진단하고 어루만지는 ‘포레스트 테라피’가 이뤄지는 행복학교 설계부터 가족대상의 캠프, 창작공간 마련, 유기농 재배 등 다양하다. 무엇보다 도시와 농촌 간에 놓인 다리를 놓는 일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곳은 그러니까, 교육, 창작, 도농교류 배양․확대 등이 이뤄지는 공동체다.
그리하여 진정으로 연대와 관계를 통해 공동체를 다시 복원하는 일. “생명은 오직 연대와 관계 속에서만 생명일 수 있습니다. 그것이 자연의 법칙입니다.”(p.108) 도시에서는 공생과 연대가 허물어지거나, 이를 지키기가 쉽지 않다. 자본의 방해공작이랄까.
“사회적으로 중심에 있지 못한 사람들이 가난을 죄처럼 끌어안고 살아야 하는 구조가 강화되고 확산되는 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살아있다는 것은 성장하는 것이며, 재생산하는 것이며, 그리고 우리의 이웃과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공생에 대해 연구하는 톰 웨이크퍼드의 이 말은 틀림없는 진리입니다.”(p.110)
그렇게 만들어가는 지점. 수많은 사람의 꿈과 소망이 담겨 있는, 함께 만들어 놓는 정원. 그것이 또한 꿈이요, 소망이다. 아는 사람들이 이미 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책을 읽고 따뜻하고 좋았다며 작은 성의를 보이고 싶다는 기부금을 내겠다는 독자도 있었다. 그러나 불편하고 부담스러워서 차라리 나무를 심는 게 어떠시냐고 권유했다. 이번 일요일에 나무를 심기 위해 백오산방을 찾아오시기로 했다.
그렇다. 그렇게 소망을 담은 나무들이 모여, 소망을 품은 숲이 될 터. 이야기가 흐르는 숲이 될 것이다. 자연성과 생명력을 회복하면서 건강한 농산물이 도농 간에 교류되는 우리들의 공동체. 그냥 무작정 숲으로 들어간 것만은 아니다.
또한 숲 강의와 사람과 자연과의 교감 등을 통해 가능성도 엿보고 있다. 숲 학교를 사회적기업 형태로 모색하는 것. 지금 이 시대에 소망 하나 품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너, 나가’ ‘너, 해고야’ 하면 쫓겨나고 방황해야 하는 공포와 불안이 지배하는 시대. 숲을 통해 배우고 기록하고 돕는 일을 통해 각자가 소망을 품는다면 사회적 문제가 조금이라도 줄고, 이 사회도 조금이라도 나아지지 않을까. 행여 소망에 참여할 수 없거나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나무를 심도록 할 수 있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심은 나무 한 그루가 다른 사람에게 소망을 심어줄 수 있다면, 숲이 건네 준 선물.
잃고 모색하면서 찾는, ‘길’
나답게 산다는 것. 숲에서 사는 것이 나다운 것임을 알 수 있었던 것은 결국 길을 잃어봤기 때문이다. “‘나로서 살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길을 잃을까 두려워 할 이유가 없습니다. 생명 모두는 언제나 길을 잃음으로써 자신의 진정한 길을 찾기 때문입니다. 헬리 데이빗 소로우의 말처럼 “길을 잃어 보기 전에는, 다시 말해서 세상을 잃어버리기 전에는 자기 자신을 찾아내지도, 자신이 지금 서 있는 위치와 자신이 맺고 있는 무한한 관계를 깨닫지도 못하는 것”이 삶이기 때문입니다.”(p.29)
수많은 모색이 필요하다. 길을 잃어봐야 내 길이라고 느낄 수 있는 것. 징표는 그것이다. 그 일로 기쁘고 행복하고 창조로 연결될 수 있는 것, 사회에 아름답게 기여할 수 있는 것.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뚜벅뚜벅 걸어봐야 한다. 이 책은 그래서 나온 것이다. “길 위에 서 있다고 믿지만 사실은 길을 잃은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책의 서문)
그래서 택했던 것이다. “그 길 위에서 더 이상 희망일 수 없는 지점에 다다랐을 때 나는 그 길을 버리고 새로운 길 위에 서기로 결심했습니다. 기업이라는 조직을 떠나기로 했고, 도시를 버리기로 했습니다. 삶의 굽이를 따라 흐르다가 까맣게 잊었던 꿈, 버려야 했던 꿈을 되살려 불러내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로 했습니다.”(pp.11~12)
죽을 때가 되면 누구나 삶이 별게 아니라고 생각하게 된다. 죽음에 대해 장기기증을 서약하면서 정리를 해 보기도 했지만, 책이 ‘나고 살고 이루고 죽는 것’을 은유처럼 제시한 것은 생명의 큰 흐름을 다루고 싶었던 까닭이기도 하다. 얼마나 큰 아파트에 살고, 어느 학교를 나오고, 어느 직장에 있는 것이 죽음 앞에 얼마나 의미가 있을까. 그것보다 살면서 나를 모색하면서 아름다운 변화에 기여했는지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가시 있지만 향기와 바람을 담은, ‘음나무’
도시생활, 음나무처럼 가시가 많았다. 그렇지만 가시를 많이 뺀 지금도, 음나무와 스스로가 닮았다고 생각한다. 성목이 된 음나무도 큰 줄기에서는 가시가 떨어지지만, 새 가지에는 가시가 있다. 음나무는 무엇보다 향이 좋다. 그 고유의 향기가 깃들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렇게 과하지 않은 꿈을 품고 말이다. “우리의 꿈이 빛을 탐하는 식물을 닮았으면 좋겠습니다. 식물들에게는 과한 꿈이 없습니다. 나무와 들풀은 오로지 자신을 꽃피우려는 꿈, 그래서 어떻게든 열매를 맺는 것으로 자신이 이 세상에 존재하게 된 이유를 증명하려 합니다. 나무는 숲을 모두 지배하려는 욕심을 품지 않습니다. 들풀은 제 자리가 아닌 곳을 탐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갖는 꿈도 그렇게 나무를 닮아서, 들풀을 닮아서 과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p.68)
숲을, 세계를 형성하는, ‘관계’
숲에 오기까지, 아니 와서도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고 받고 있다. 서대원 선생과 구본형 선생은 물론이요, 많은 사람들이 관계 속에서 숲 생활과 일상을 짓고 있다. 책을 내고 나서도 마찬가지다. 책이 나오자, 과거 같이 일했던 동료들도 홍보를 해 주고 있다. 참 고마운 사람들이다.
과거 그들과 같이 일하고 있을 때, 그런 말을 듣곤 했다. “조직에 맞지 않는 사람 같다. 왜 학교를 안 갔느냐”고. 모험기업을 하면서 어려움을 함께 넘나들던 이들이었다. 사업상 어려움에 부딪혔을 때, 자신을 해고시켜달라고 말했던 사람도 있었다. 무엇보다 그들이 숲을 보러 다닐 때, 눈치 보지 않게끔 적극 밀어줬다. 그리고 여러 사람을 만났다.
다른 곳에 돈 투자한 것을 빼서 도와 준 사람. 오두막을 지을 때 밑의 마을에서 건축 프로젝트를 담당하던 흙건축연구사무소 ‘아키떼르(www.architerre.org)’의 생태건축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혼자 짓기에 가장 유용하고 집 방향, 창문, 지붕 등을 생태적으로 짓도록 설계를 거의 헐값에 해주기도 했다. 대신 품앗이 개념으로 대학 강의 때 생태특강을 해주는 그런 조건으로.
그렇다. 사람이 사는 도시도 하나의 숲이다. “사람의 숲에서도 이따금 질경이나 생강나무를 닮은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주류보다는 비주류의 길을 기꺼워하고, 타성을 쫓기보다는 차라리 창조적인 진화를 선택하는 사람. 타인이 닦아놓은 길을 따르기보다는 스스로 길을 내는 사람. 그 대가인 외로움과 고난과 위험을 삶의 안주로 삼을 줄 아는 사람. 육신의 고달픔을 택할지언정 영혼은 결코 꺾이지 않는 사람…… 나는 늘 그들의 삶 앞에 머리를 숙이게 됩니다.”(p.129)
자립할 수 있는, ‘농부’
농사, 농업, 농부. 세상에서 이미 저 멀리 한 켠으로 밀려난 이름들. 분명한 것은, 그럼에도 지금 이 엄혹한 시대에 다시 그 이름을 불러야 할 이유가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 자립할 수 있으며 비굴해지지 않아도 되고, 착취당하거나 하지 않아도 되는 직업이 바로 농부다. 귀농운동본부에서 알았다. 나로 살면서 더불어 살려면 자립, 생태가 필요하고 발자국을 덜 남기는 것이 이로운 것임을. 도시가 아닌 자연에서 이루는 것이 맞다는 것을 확인했다.
조직과 도시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이유? 스스로 설 용기와 스스로 설 수 없다는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직도 비어 있는 농촌이지만 개인들이 많이 들어와야 한다. 기업이 들어오는 것은, 반대다. 농촌이라는 영역은 빠른 것보다는 느린 것, 자주 변하는 것보다 자주 변하지 않는 것이 어울리는 법이다.
“내 내면의 깊은 곳에 닿아 있는 나다운 꿈은 사라지고 사회를 지배하는 자본적 가치에 대한 열망만이 나를 깊숙이 좀먹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정말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것, 빠른 것보다는 느린 것, 쉽게 변하는 것보다는 잘 변하지 않는 것, 크고 화려한 것보다는 작고 소박한 것, 나 하나만을 살찌우는 것보다는 모두를 살찌게 하는 것이 무엇일까 사색하고 연구하기 시작하고부터 몇 년 지나지 않아 나는 새로운 꿈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p.68)
고마운, ‘가족’
열 두 살 난 딸이 한번은 물었다. 아빠 직업을 뭘로 해야 돼? 당시 김매고 있을 때라, ‘농부’라고 알려줬더니, 잠시 답이 없다. 어린 그 딸에게도 ‘농부’는 뭔가 망설이게 하는 직업군이었던 것이다. 사회가 그렇게 만들었다. ‘숲생태전문가’라는 말이 어떠냐고 했더니, 작가라고 쓰고 싶었나보다. 탈고를 하지 않은 상태라 그건 좀 그렇다고 했더니, 숲생태전문가가 좋겠단다.
딸에게 아빠랑 농사짓자고 하니까, “아빠와 나는 꿈이 다르”단다. 농촌 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다. 나중에 영국을 가고 싶어하는 딸은 ‘해리 포터’의 창조주, ‘조앤 K. 롤링’이 자주 갔다는 커피하우스를 꼭 가보고 싶단다.
무엇보다 책이 좀 팔리면 일본을 가고 싶다. 아내를 위로하고 싶은 것도 있다. 마침 오늘이 결혼기념일이다. 이 책이 그렇게, 지금 거닐고 있는 길이 사막의 길이 아닌 생명의 길이라는 첫 번째 증명이길 희망한다. 일본의 숲도 거닐어 보고 싶다. 일본 숲은 자연치유에 대한 이야기도 많고 유기농이 발달해 있다.
물론 여전히 숲과 더 많은 이야기와 교감을 해야 한다. 이미 8년 전에 전원으로 돌아간 큰 형님은 아직 농부가 덜 됐다며 종종 나무라신다. 서울에 오기 전에도 형님 집에서 품앗이를 하고 왔다. 휴대폰도 통하지 않는 형님 집을 보면 아직 멀었다는 생각도 들지만 숲사람이 어차피 하루 아침에 되는 것은 아니지 않겠나.
다음 책? 겨울 농사하는 셈치고 책을 짓고 싶다. 겨울에 산속 생활을 하다보면 게을러 질 수 있는데 스스로를 정리하는 개념으로 조금 가볍게 읽을 수 있는 그런 책. 이곳 생활을 통해 생명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움직이고 모색하는지를 벤치마킹하면서 탐색하는. 가제는 ‘숲에서 듣는 희망의 노래’. 물론 언제 나올 수 있을지는 모른다. 우리 삶이 왜 생태적으로 살아야 하는지, 좀더 자연스럽게 살아야 하는 이유를 담을 것이다.
그리고 아동용 책도 짓고 싶다. 딸을 위해서, 딸과 함께 짓고 싶다. 딸이 글 쓰고 읽는 일을 좋아한다. 딸과 이메일을 주고받는데, 책도 그렇게 딸과 함께 공유하는 방식으로 쓰고 싶다. 딸 또래의 아이들에게 자연과 숲에 대해 친근감과 호기심을 갖게 하고 꿈을 자극하는 그런 책. 숲은 그렇게 가족과 함께 꾸는 꿈이다.
책은, 독자가 어느 순간,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가에 따라서도 빛깔을 달리한다. 책의 가치가 한 독자에게 고정불변이 아닌 까닭이다.
죽도록 자기개발을 명분으로 한 삽질만 하다가 뒤지라고 권유(!)하는, 혹은 지 잘난 맛에 똥오줌 못가리고 무책임하게 싸질러 쓰레기 같은, (물론 누군가에겐 고민 해답, 삶에 대한 지침이 될 수도 있겠으나,)
대부분 자기개발서를 혐오하는 나로선 보기 드물게 만난 책이, 2009년 봄, 일 덕분에 읽은,《사막을 건너는 여섯 가지 방법》.
사실 이 책, 딱히 자기개발서로 규정짓지 않아도 되지 싶었다.
흥미롭고 매혹적인 여행기가 섞여서 어떤 여행인문학으로 볼 수도.
이말, 아마 나를 훅~ 끌어당겼을 말. “인생의 대부분은 산이 아니라 사막을 닮았다.”(p27)
그러니, 방황은 자연스러운 것. 효율성 절대주의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용납못해도.
“효율성을 중시하는 사회에서는 방황에 불명예스러운 꼬리표가 붙는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가 산의 가치관을 변화의 사막에 적용하기 때문이다.…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의 문화에서는 방황이 일종의 성년 의례로, 젊은이는 혼자서 사막을 헤매고 다미며 자기 자신의 고유한 성격과 장점을 깨닫는 과정을 거친다.”(p.51)
물어봤다. 자신에게. “나는 지금 산을 오르고 있는가? 아니면 사막을 건너고 있는가? 동시에 이 두 가지를 다 하고 있는 중일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이것이었다. “사막을 건널 때와 산을 탈 때는 걷는 방법이 달라야 한다. 딱딱한 등산화를 신고 끝없이 모래가 쌓이는 뜨거운 사막을 건너면 발에 물집만 생길 뿐이다.”(p.29)
덕분에 나는,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의 일부를 교정할 수 있었다.
나의 사막이여, 나의 나침반이여. 인생이라는 사막을 여행하는데 알아야 할 것은,
내가 지금 어디에 있고, 어디로 가려고 하는지 아는 것이다. 제 아무리 나이 먹어도 이걸 모르는, 알려고 하지 않는 사람은 사막에 빠져 허우적 거릴 뿐, 사막을 건너지 못한다.
물론 명심해야 할 것. 나침반이 항상 ‘옳은’ 길만 가리키는 것은 아님! 마음의 소리라고 언제나 맞는 것이 아니듯. “지구 자기장의 편차에 따라 수정을 해주어야 하는 나침반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우리 내부의 나침반이 항상 진실된 방향만을 가리키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p.52)
역시, 그해 봄에 만난 사막 종단자 '스티브 도나휴'의 말을 기록했다.
내겐 아주 색달랐던, 자기개발서에 대한 편견을 일부 불식시켜줬던 만남.
"현재 경제적으로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일단 채무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이 일차적인 목표가될 것이다. 하지만 그 목적을 달성할 때까지는 몇 년의 세월이 걸릴 것이고, 그 와중에 많은 여행을 놓치게 될지도 모른다. 일단 목적지를 접어두고 나면, 매일 수입의 범위 내에서 적당히 지출하고, 버는 것 이상 쓰지 않으려고 노력하게 된다. 사실 바로 그것이 나침반 바늘이 될 수 있다. 또는 눈높이를 낮추어 수준에 맞는 생활을 하면 인생을 사는 데 있어서 돈이 아닌 다른 종류의 풍요로움을 맛볼 수 있는 새롭고 더 심오한 나침반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한 나침반 바늘을 따르면 어떻게 될까? 비금전적인 풍요함을 맛보면, 가장 중요한 관계를 가꾸고 자기 주변을 둘러싼 세상의 아름다움을 보며 창의성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게 된다." 《사막을 건너는 여섯 가지 방법》(p.48)
이렇게 가정해보자. 당신은 갓 스무 살이 된 청년이다. 아니, 굳이 나이는 상관없겠다. 그냥 지금, 당신의 나이다. 어느 겨울, 파리에 머물고 있는데 그 매서운 추위에 갑자기 질렸다. 따사로운 햇살이 막막 당긴다. 이 겨울만은 뜨거운 태양이 작열하는 서아프리카 해변에서 보내리라 다짐한다. 친구와 함께 떠난다. 돈이 없어 약간의 돈을 주고 다른 사람의 차를 빌려 탄다. 따뜻한 남쪽 해변으로 간다는 목표 외에는 없다. 계획? 일정? 그런 건 다른 나라 얘기다. 그리고 남쪽으로 남쪽으로 향하다보니, 지구에서 가장 큰, 면적은 미국과 맞먹는 사하라 사막을 관통하고 있다. 중간 정도나 왔을까.
진짜 얘기는 좋아, 이제부터. 그 사하라. 차량도 없다. 둘만 덩그러니 사막에 있다. 있는 건, 오직 짐과 잠을 청할 수 있는 캠프. 태양이 잦아들고 밤은 뱀처럼 다가온다. 그런데 뭔가가 다가온다. 주의 깊게 볼 수밖에 없다. 아니, 이 사막 한가운데, 인적이라니. 옷과 움직임을 보니 유목민 같다. 어느 책에선가, 여기 유목민들은 10인치 가량의 단검을 들고 다닌다는 것을 읽은 기억이 난다. 그 검이 사람의 배를 족히 뚫을 수 있다는 사실도.
그런 얘기가 떠오르는 마당에, 그 유목민이 오더니, 소금을 달란다. 있는 대로 다준다. 그랬더니, 간다. 안도하는 한편으로 또 오지 않을까, 걱정된다. 친구에게도 얘기한다. 아니나 다를까, 10분 후,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헉. 다시 등장한 그 유목민. 이번에도 손을 내밀더니 후추를 원한다. 굉장히 공손하지만, 그 와중에 탐색하듯 우리를 훑는다. 그 시선에 온몸이 오그라든다. 아마 우리가 또 무엇을 갖고 있는지 살펴본 건 아녔을까. 세 번째로 온다면, 그때는 아마도…
다시 재깍재깍. 30분이 흐른다.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데, 기분이 여전히 찝찝하다. 눈을 들었는데, 헉. 다시 그 사람이다. 캠프사이트 바깥에서 우리를 주시하고 있다. 언제 왔는지도 모르겠다. 이번에는 아무 말이 없다. 손가락으로 우리를 가리키더니, 따라오란다. 뭐냐. 이 시추에이션. 겁난다. 따라갔더니 그 원주민들 모두 칼을 품고 있으면 어떡하나, 걱정이 첩첩산중이다. 당신, 어떻게 하겠는가. 따라갈 것이냐, 도망갈 것이냐, 아니면 이런 상황에서 어떤 확률이 있는지 검색을 해보겠는가. 아, 햄릿의 고민이 이랬을까.
북치는 강연자, 스티브 도나휴의 등장
스티브 도나휴는 스무 살 때, 실제로 이런 상황을 맞닥뜨렸다. 그는 어떻게 이 상황을 모면했을까. 아니, 아직 위험이 닥친 건 아니니까, 어떤 발걸음을 옮겼을까. 어디선가 익숙한 상황이라고? 맞다. 그렇다면, 당신은 『사막을 건너는 여섯가지 방법』(스티브 도나휴 지음|고상숙 옮김/김영사 펴냄)을 읽은 사람이다.
저자 도나휴가 한국을 찾았다. 그리고 지난 3일 서울 과학기술회관에서 YES24 독자들과 만났다. 다음 작품 준비를 위해 다큐 감독 피터 캠벨과 동행했고 그는 이날의 강연을 캠코더에 담았다.
느닷없이, 예정에 없던 아프리카 드럼을 치면서 강연장의 시선을 모은 그는, “고맙습니다. 저는 한국말을 배우고 있는 중이에요. 한국말 좋아요”라고 인사를 건네며 우리들의 사막으로 들어왔다.
그가 한국에 온 이유는 3가지. 첫째, 한국에서 책이 성공한데 대한 감사하고자. 둘째, 한국에서 책이 성공하기 전까지 알지 못했던 한국의 문화 등을 배우기 위해. 셋째, 사람들과 만나서 많은 것을 배우고 상호 어떤 변화를 주고받을 수 있는지 알고 싶어서.
그리고선 다시 드럼을 치면서 박수를 유도한다. 앞서 언급한 사하라 사막의 이야기를 통해 지금 우리 앞에 놓인 사막을 어떻게 건너는 것이 좋을지 얘기하고 싶단다. ‘아니, 한국에 무슨 사막이 있다고 그래? 미친 것 아냐?’라고 갸우뚱하진 마시라. 그가 말하는 사막을 건너는 건 이런 거다. “목표가 애매모호하거나 또는 최종적인 결과라기보다는 일종의 과정처럼 느껴진다면, 그것은 바로 사막을 건너고 있는 것이다.”(p.17)
더 구체적으로는 이런 것. “인생과 변화의 사막에는 항상 넘어야 할 산이 있다. 이 산들은 그때 그때 우리가 해내야 하는 과제나 프로젝트, 그리고 구체적인 목표가 있는 꿈, 우리가 열망하고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최종 결과물들이다. 직장을 옮기는 것은 산이지만 직업을 완전히 바꾸는 것은 사막이다. 아이를 낳는 것은 산이다. 특히 여성의 입장에서는. 하지만 아이를 키우는 것은 사막이다. 꿈에 그러던 집을 짓는 것은 사막이다. 암을 이겨내는 것은 에베레스트 산의 정상을 오르는 것과 같다. 하지만 만성 질환이나 불치병을 안고 살아가는 것은 사하라 사막을 건너는 것과 같다.”(p.29)
그러니까 인생은 앞서 언급한 상황과 같다 이거다. 정답도 없고, 도망가든 따라가든, 어떻게 해야 할지 당최 알 수 없는 상황. 인생에 미리 짜놓은 계획도 없고, 지도도 없을 때, 아니 짜놓고 지도가 있다손, 그대로 간다는 보장도 없는 상황. 자, 준비됐나요? 사막을 건널 준비! 자, 함께 발을 뗍시다.
나침반, 우리가 의존할 수 있는 것
도나휴는 묻는다. “아까 그 상황에서 지도에 의존하면 알 수 있을까요? 지도가 있어도 도움이 안 돼요. (사막은) 지형 자체도 계속 움직이고요. 누군가가, “323 모래둔덕에서 돌아가세요”라고 알려준들 그걸 따라 갈 수 있을까요? 인생이 바로 이런 상황과 비슷해요. 끊임없이 움직이고 변하죠. 지금만 봐도 경제위기가 전세계를 강타하면서 많은 변화가 있어요. 그러나 어느 누구도 경제위기라는 사막을 건널 수 있는 해법을 가지고 있지 않아요.”
그렇다. ‘인생은 사막’이라는 비유, 살다보니 충분히 동의할 만하지 않는가. 그리고 인생의 지도가 있다손, 그 지도대로 따라갈 수 있을 거라고 누가 장담하나. 얼마 전, 프랑스 배우이자 아마도 세상 모든 감독의 뮤즈인 줄리엣 비노쉬의 인터뷰가 떠오른다. “뭐가 일어날지 모른다. 촬영에 들어가면 그 장면은 짧을 수도 있고 길 수도 있다. 아무 것도 알 수 없다. 그게 바로 인생 아닌가. 삶의 순간들이 바로 그러하다.”
도나휴는 그래서 지도 아닌, ‘나침반’을 권한다. 우리가 의지해야 하고, 각자의 내부에 존재하고 있다는 나침반. “중요한 것은 방향감각이다. 먼저 자신을 안내해 줄 내부의 나침반부터 찾아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나아가야 할 방향이 분명하게 보일 때까지 목표나 도착지는 염두에 두지 않아야 할 것이다.”(p.44)
도나휴가 전하는 나침반을 따라가야 하는 세 가지 이유.
첫째. 길을 잃었을 때 방향을 알려준다. 둘째. 나침반을 따르면 어떤 기회가 있을 때, 이를 놓치지 않고 볼 수 있다. 셋째. 나침반은 길만 따르는 게 아니라 방향을 크게 보면서 위험․기회를 다 볼 수 있다.
그리고 경제위기가 때론 더 많은 기회를 만들어낼 수 있음을 자신의 경험으로 설명했다. “북미에서 나의 생업은 강의다. 2001~2002년 북미지역의 경기가 크게 후퇴했다. 한국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때 내 할 일도 팍 줄었다. 그냥 손놓고 놀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럴 때 내 안의 나침반을 따라 가보니, 그동안은 청중과 내 얘기를 공유했는데 책을 통해서도 공유하면 되겠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책을 냈다. 여기 온 여러분들도 책을 읽게 된 셈이고. 아마 지도만 따라갔다면, 강의, 강의, 강의였을 것이다. 그러면 책도 쓰지 못했을 것이고.”
그렇다면 나침반은 만사형통일까. “나침반을 따라가면 목적지를 모른다. 그런데 그렇게 가다보면 지도상의 목적지보다 나은 경우가 많다. 사실 나침반을 따르는 건 굉장히 어렵다. 감도 잡기 어렵고.” 그는 책에서도 이렇게 설명한다. “지도보다 나침반을 따라가는 것이 훨씬 의미 있는 일이다. 하지만 올바른 방향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단순히 목표나 목적지가 아니라, 살아가는 방법 또는 존재하는 방법을 담고 있어야 한다. 우리가 인생의 사막을 건너서 따라가는 방향은 깊은 의미가 있고 명료해야 한다.”(p.40)
내 안의 나침반을 찾는 방법
내 안에 나침반이 있다는데, 어디서 찾을 것인가. 도나휴는 태어날 때부터 각자가 갖고 태어났단다. 존재 자체를 정의하는 나침반이 있단다. 그러면서 자신 안에 있는 나침반 하나를 끄집어낸다.
“내 안의 나침반 하나는 (남과) 달라야 한다는 나침반이다. 오늘 보여준 드럼이 바로 그런 것인데, 어느 누구도 강의를 하면서 드럼을 연주하지 않는다.(웃음) 나는 항상 독특하고 별다른 존재였다. 어머니한테 어릴 때를 물었더니 이런 사진을 보여줬다. (우스꽝스럽기까지 한 그의 어릴 적 포즈와 표정이 담긴 사진을 보여주며) 4살 때인데, 나는 절대 평범한 사진을 못 찍는다. (운전면허증과 같은 공식적인 사진 등에서도 그는 별의별 표정을 지닌 사진으로 승부하고 있다.) 이것이 내가 따르고 있는 나침반이다. 물론 이것을 따라하라는 것은 아니다. (웃음) 모든 사람은 각자의 나침반이 있음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그것은 자신을 먼저 아는 일부터 시작하는 것 아니겠나. 내 마음의 움직임, 혹은 소리를 따르는 것. 나침반은 내가 나를 아는 일에서 제대로 작동을 시작하지 않을까. “사람은 각자 살아가는 방식이 있고, 그것은 스타일이라고 부를 수도 있다. 이것이 나침반을 찾는 첫 번째 방법이다.”
두 번째는, 살면서 조그마한 것이라도 성공한 일이 있으면 심사숙고를 하고 파악해 보란다. 그 성공의 원인을 분석하면 자신의 특징․재능이나 성공요소를 파악할 수 있다. “모든 사람이 재능을 타고 난다. 작은 성공이라도 그것을 생각하면 또 다른 성공으로 갈 수 있다.”
세 번째는, 길을 잃어라. 자신이 처한 상황이 어렵고 아무 것도 몰라서 지도가 도움이 안 될 때가 바로 나침반을 찾을 수 있는 상황이란다. 가령, 아이를 낳고 나면, 지도를 따라갈 수 없는 상황인데, 나침반을 보면서 아이를 키우는 것이 낫단다. 자신의 경험으로는, 어릴 때는 아이들 옆에 있는 것이 나침반이라면, 크면 아이들과 최대한 접촉을 피하라는 쪽으로 나침반(이 가리키는 방향)이 바뀐단다.
그리고선, 2년 전, 나침반을 찾았던 경험담을 얘기한다. 스무 살이 된 자신의 딸이 여행을 떠났다. 그의 생일 즈음, 호주를 여행 중인 딸에게서 전화가 왔다. 생일 축하까지는 좋았는데, 갑자기 남자친구와 호주에서 결혼을 하겠다는 선전포고(!)가 날아 들어왔다. 두 사람이 사귄 기간은 고작(?) 5개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란다. 호주로 가서 딸을 당장 데려오는 것도 생각했지만, 당장 대책이 안 섰다. “딸의 남자친구인 댄은 좋은 녀석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서핑하는 녀석이었다. (웃음) 그때 든 생각이 ‘나침반이 필요해’였다.”
결국 그는 찬찬히 나침반이 가리키는 방향을 좇은 결과, 그들이 결혼하는 그곳에 가기로 했다. 동화처럼 아름다운 결혼식이 있었고, 한국에 오기 2주 전, 호주를 들렀는데, 손주를 안아보기까지 했다.
“결혼식을 가야겠다고 결정하고 갔더니, 예상하지 못한 일이 많이 벌어졌다. 결혼식 직후 온 가족이 식사를 하게 됐다. 그것은 11년 만이었다. 딸 애 결혼식을 통해 전 가족이 모이게 된 것이다. 예상하지 못한 좋은 결과들과 맞이하게 된 거다.”
또 하나. 책에는 없는 내용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사하라 사막을 함께 건넌 친구 탤리스는 배 안에서 만난 친구다. 당시 도나휴의 애초 계획(지도)은 유럽에 가서 1년 동안 배낭여행을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배 안에서 탤리스와 친해졌고, 1주일을 지낸 어느 날, 잠에서 깼더니 배 안에 아무도 없었단다. 탤리스도 없고. 배는 프랑스 파리에 도착한 상태. 원래는 그리스나 이탈리아를 가는 것이 목표였는데, 어쩌다 프랑스에 머물게 됐다. 일주일을 파리에서 보내고 다른 곳으로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타고 기차역으로 향했다.
그런데, 중간에 약간 시간이 남아 한 관광지를 둘러볼 수 있는 지하철역에서 내릴까 말까 망설였단다. 나갔다 다시 오면 지하철 요금이 더 들어간다는 생각과 구경하고 가자는 생각 사이에서 망설이던 즈음, 해당 역에서 문이 열리는데, 갑자기 그냥 박차고 나갔다. 그때 아무도 아는 사람 없는 그곳에서 그의 이름이 불렸다. 탤리스였다.
“지하철 문을 박차고 나가지 않았다면 사하라 사막을 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 순간이 내 인생을 바꾼 것이다. 책에는 이 얘기를 넣지 않았지만, 아주 작은 사건 하나가 우리 인생을 바꾸기도 한다. 그 순간이 얼마나 큰 위력이 있는지 알려주기 위한 것이다.”
아마도, 그것은 준비되지 않은, 예고 없이 닥치는 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마음가짐과도 통할 수도 있겠다. “캠프파이어 곁을 떠나려는 우리에게 필요한 신조는 ‘Semper Non Paratus(항상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지내기)’이다.… 항상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있는다는 것이 무사안일주의에 빠져 무책임하거나, 알면서도 위험한 상황으로 치닫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우리를 책임감에서 완전히 해방시켜 줄 새 시대 슬로건이 아니다. 그것은 익숙한 캠프파이어에서 벗어나서 인생이라고 하는 사막의 불확실성을 좀더 쉽게, 덜 두려운 마음으로 그리고 대담하게 맞는 마음가짐이다.”(pp.162~163)
안정된 캠프에서 벗어나 세상과 만나기
아까 언급된 사막으로 돌아가자. 원주민의 따라오라는 수신호에 도나휴는 따라가고 싶지 않았다. 그나마 불 옆(캠프파이어)에 있으면 안전하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탤리스가 따라가고 어쩔 수 없이 따라나섰다. 모래언덕에는 엄청나게 많은 별들이 쏟아지고 있었고, 앞서 가던 유목민이 어느 한 곳에서 미끄러져 내려갔다. 따라 갔더니, 그곳엔 8명의 유목민이 더 있었고 1명은 큰 칼까지 차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제 끝이구나’ 생각했다. 두려워서 온 몸은 딱딱 굳어졌다. 어찌해야 할지 짱구를 굴리는데 단서는 후각을 통해 찾아왔단다. 요리 냄새가 아주 끝내줬단다. “큰 칼을 든 사람은 바비큐를 먹기 좋게 자르고 있었다. 알고 보니, 소금과 후추를 줘서 우리를 초대한 것이었다. 같이 먹자고. 결국 그렇게 따라가서 수많은 별들 밑에서 유목민들과 함께 축제와 같은 밤을 보낼 수 있었다.”
그는 당시 그의 결정에 흡족해하고 있었다. 원주민을 따라 캠프를 벗어난 것을.
“모든 사람들에겐 이런 캠프가 있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런 캠프에서 떨어져 봐야 한다. 내 본거지는 북미다. 한국에 온 것은 캠프에서 떨어진 것이다. 오늘 밤 지나면 이곳도 캠프파이어의 한 곳으로 목록에 오르겠지만, 안락한 일상에서 한 걸음 떨어져 나갈 때 예기치 못한 상황이 올 것이다. 당시 그 유목민들은 (축제를 함께 보낸 뒤) 길까지 안내해줬다. 그러면서 트럭을 얻어 타고 사하라를 건넜다. 여러분이 가고자 하는 곳의 운송수단이 상상과 다를 수 있지만 방향이 같다면 타고 가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엔 해변에 도착했다. 나침반을 따르면 목적지를 모른다고 했지만, 멋진 곳에 도착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이런 것. “우리의 머리 위에서부터 저쪽 하늘 끝까지 수없이 많은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습기나 공해, 또는 도심의 불빛에 오염되지 않은 별 하늘이 도시 생활의 안락함과 캠프파이어를 뒤로 할 용기가 있는 사람을 위해 눈부시게 반짝이고 있었다.”(p.149)
묻고 답하기
Q. 여행하고 나서의 마음가짐과 태도가 전과 어떻게 달라졌나. A. “사하라를 건널 때 나는 젊은이였고, 그때 의식적으로 깨닫지는 못했지만, 새로운 시작을 가져다주는 여행길이 됐다고 생각한다. 사하라 사막을 건넌 뒤, 나는 진짜 성인이 된 것이다. 물론 또 다시 건널 필요는 없는 것이, 인생 자체가 사막이다. 그 인생의 사막을 건너면서 더 성숙해지는 것이고.”
Q. 차가 모래에 갇히면 타이어 바람을 빼라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타이어 바람을 뺀 사례를 알려 달라. A. “살면서 사막에 갇히면 빠져나가기 위해서, 사막에서 무데뽀로 차를 밀듯 한다. 그러나 그런 상황에서 차를 미는 것은 멈춰야 한다. 방법을 찾지 못했음을 깨달을 때, 상황이 보이면서 해결책을 찾을 수 있게 되기도 한다. 아까 얘기했듯, 딸이 5개월 전에 만난 남자친구와 결혼한다고 했을 때가 그런 상황이었다. 처음에 말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것이 내 자의식임을 깨달았다.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정답을 알지 못하겠다. 정답이라고 알아도 바꿀 수 없는 상황이 닥칠 수도 있다.”
Q. 많은 사람들이 산에 올라가길 강요받는다. 젊은이들에게 사막을 건널 수 있도록 도움 줄 말이 있다면. A. “책에 산에 오르고, 사막을 건넌다고 한 것은 은유다. 나도 산을 오르는 것처럼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달성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어릴수록 산에 오르도록 요구받는다. 그러나 나이들수록 인생이 산이 아닌 사막을 건너는 것과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나도 목표가 있다. 여러분도 목표를 갖고 노력해라. 그러나 산 올라가듯 목표를 향하면, 인생 자체가 사막으로 보인다. 젊은이들은 목표를 두고 나아가되 남이 아닌 나를 목적으로 두고 나아가라고 말하고 싶다. 그런데 살다보면 목표가 자신이 처한 문제의 해결도 아니고 행복하지도 않고 사막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럴 때는 사막 안으로 더 깊이 들어가야 한다.”
Q. 한국에서는 많은 경우, 산에 오르도록 교육한다. 경험적으로 이럴 때, 어떻게 나침반을 찾을 수 있을까. A. “한국에 오기 전, 한국을 알아봤더니 산이 많더라. 산에 오르도록 교육 받는 것은 당연한 것 같다. (웃음) 그동안 한국이 이만큼 성공한 이유에는 산에 오로도록, 목표를 향해 나아가도록 교육을 받은 것도 있다. 그러나 상황이 변하면서 목표 외 삶의 의미를 찾기 시작했다. 목표를 마음속에 지우는 것도 좋다. 나침반을 찾는 방법 중 하나는, 지금은 보수를 받고 일을 하는데, 보수를 받지 않고서라도 할 수 있는 일이 뭔가 생각해보라. 그것이 나침반을 찾는 방법이 될 수 있다.”
Q. 다른 책을 쓰고 싶다고도 했는데, 어떤 내용인가? A. “현재 나는 나침반을 찾는 방법에 관심이 있다. 첫 책은 사막을 건너는 여섯 가지 방법을 얘기했는데, 책을 읽은 많은 사람들이 나침반에 대해 질문하더라. 그래서 두 번째는 나침반을 찾는 방법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내 인생의 방향을 찾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내 인생의 나침반을 찾는 방법 등이다. 나침반은 선택이 아닌 타고 나는 것이고, 자신에 대해 파악한다면 충분히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새 책이 나오면 살 건가? (웃음)”
그리고, 후기
대체로 산을 올라가는 마음은 ‘정상’에 꽂혀 있다. 그리고 다그친다. 어떻게든 그곳을 정복하라고. 우리 사는 이곳은, 대체로 그렇다. ‘무한경쟁의 장’이며 ‘정글’이라고들 한다. 사람들은 윽박지르듯 강변한다. 그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목표로 둔 정상까지 쉼 없이 일하고 자신을 불태우라고. 그러나 그것은 이미 용도폐기돼야 할 전근대적인 산업화시대의 구린내 나는 유산이 아닐까, 나는 생각한다.
도나휴의 강연을 듣고 책을 읽으면서, 나는 이것이 가장 인상 깊었다. 사하라 사막에서 꼭 오아시스에 멈추어 쉬어야 하는 세 가지 이유.
첫째. 쉬면서 기력을 회복해야 한다. 둘째. 여정을 되돌아보고 정정해야 할 것은 정정한다. 셋째. 오아시스에서는 같은 여행길에 오른 다른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잘 아는 거라고? 어? 그렇게 잘 알면서도 왜 멈춰서 쉬어가질 않지? 도나휴는 이런 말을 건넨다. “문제는 우리가 산을 오르는 사람처럼 생각하며 산다는 데 있다. 우리는 정상을 다다르기 위해 안달하는 열병을 앓고 있다.”(p.65)
그리하여, 카르페디엠(carpe diem). “이렇게 현재에 집중하는 것이 사막을 여행하는 마음 자세이며 그 덕분에 우리의 여행이 더 풍요로워 진다.”(p.49)
덧붙여, “사막에서 휴식을 취하면 사막 자체가 더 큰 의미로 다가올 수 있다. 휴식을 취하는 오아시스건, 사색을 하는 오아시스건, 또는 다른 사람과 교류하는 오아시스건 모든 오아시스는 매순간에 충실하게 사는 연습을 할 수 있는 공간이다.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의미 깊고, 즐거운 순간은 종종 이 오아시스에서 일어난다.… 오아시스는 온전히 현재에 사는 연습을 할 수 있게 해 준다”(pp.90~91)
그리고 이른바 ‘디지털시대’라는 세례명(?)을 받은 지금-여기의 우리는 어떤가. 컴퓨터, 인터넷 덕분에 진짜 일이 줄었는지, 내게 더 여유가 생겼는지, 과거를 돌이켜보라. 과연 그럴까. 편리함을 내세우고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을걸. 오아시스는 멀리 있지 않다. “하루종일 컴퓨터 스크린을 쳐다보고 있는 것은 디지털 사막이다. 이럴 때는 화단의 비옥한 토양에 손을 담그고 꽃의 화려함에 취해 보는 것이 바로 오아시스가 될 수 있다.”(p.79) 우리, 이 봄을 그냥 넘겨선 안된다.
도나휴는 이런 마음가짐을 권한다. “인생을 산이 아니라 사막으로 보게 되면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뿐 아니라 중요한 관계까지도 근본적으로 변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p.66)
부디, 산보다는 사막을 닮은 우리네 사람살이. 사막을 건너는 당신의 건투를, 빈다!
더불어 나의 건투 또한, 빌어주오.
그러니까, 나 좀, 봐 달라.
나, 이런 사람이야. (알아서 기어~♪/ 아니면 쉬어 알았으면 뛰어/ 그래 내가 원래 그래~♪/ 그래서 뭐 어떨래/ 나 이런 사람이야 뛰어~♪)
스스로 인식하건 그렇지 않건, 인정 받기 위한 욕망의 발로가 '글쓰기'다.
이십대의 한때, 내 안의 것을 배설하기 위해서라고 씨불렁댄 적도 있었다.
구라였다. 배설은 얼어죽을. 배설은 똥이나 퍼지르면 충분한 일이다.
아아 물론, 오해는 마라.
인정 투쟁, 나쁜 것도 아니요, 해선 안 될 일도 아니다. 가령, 노숙인 잡지 <빅이슈>는 인정 투쟁의 좋은 예다.
노숙인은 게으르고 위험하며 낙오자라는 인민들의 인식에,
성실하고 친절하게 일하는 노숙인을 눈앞에서 보여주는 것. 좋은 예다.
아, 글고 보니, 내가 한때 기자라는 직업을 택했던 이유는,
그때 내 사랑, 그녀에게 잘 보이기 위한 인정 투쟁이었다.
오래 전, 생애 첫 칼럼을 연재하기로 했던 이유도,
당시의 그녀에게 인정 받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지금 글을 쓰는 이유도, 크게 다르지 않구나!
김연수 였던가, 분명하진 않지만,
한 작가는 여자에게 잘 보이려고 글을 썼다고 했다.
나도 그렇다. 현재 어디에 어떻게 있는지는 모르지만,
알흠답고 개념 있는 그녀(들)에게 잘 보이기 위함. 인정 받기 위한 몸부림.
기사는, 왜 쓰는가, 이에 씨불렁대지 못한다면,
작가도 아니요, 기자도 아니요, 라고 했지만,
나야 뭐, 더 이상 기자도 아니요, 작가는 언감생심인,
흔해 빠진 날품팔이 블로거에 불과하지만,
왜 쓰는가, 왜 '아직도' 쓰는가, 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맞다. (블로그엔) 안 써도 그만이다.
생계 지탱을 위한 최소한의 글쓰기 외에 이곳을 글을 쓸 이유 따윈 없다.
글쓰기 연습? 그건 블록이 아니라도 된다. 공간은 쎄고 쎘다.
소통? 에이, 나는 대면과 직관을 더 중요시하는 사람이다.
블로고스피어에선 소통의 본질을 들추진 않는다.
물론 소통의 한 도구라는 것, 부인하진 않는다.
블로그, 트위터 등에 글을 쓰는 것이 온전하게 개인의 것에 머물 순 없다.
개인적·사변적인 것이 오가지만, 누군가에게 자신을 드러내는 일이다.
글을 보고 읽는 사람에게 내 마음을, 내 심정을 알아달라고 외친다.
성정이 못돼서 그런 것이겠으나,
아주 간혹, 행간의 내 마음을 왜 몰라주냐고 징징대는 인간을 보면 역겹다.
타인의 마음에 대해선 알고자 하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서.
물론 나 역시도 그러면서도 말이다. 모순덩어리! ㅠ.ㅠ
첫째, 순전한 이기심. 똑똑해 보이고 싶은, 사람들의 얘깃거리가 되고 싶은, 사후에 기억되고 싶은, 어린 시절 나를 푸대접한 어른들에게 앙갚음 하고 싶은, 그런 따위 욕구란다.
맞아, 맞아. 오웰은 "이기심이 동기가 아닌 척하는 건 허위"라고 했다.
인정 투쟁과도 맥이 닿는다. 이기심이 글을 나아가게 한다.
그러니 이기심이라는 말에 거부감을 느낄 필요는 없겠다.
둘째, 미학적 열정. 외부 세계의 아름다움에 대한 인식.
낱말과 그의 적절한 배열이 주는 묘미, 훌륭한 이야기의 리듬에서 찾는 기쁨.
셋째, 역사적 충동.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고 진실을 후세에 보존하려는 욕구. 기록 욕망이다.
마지막으로, 정치적 목적. 세상을 특정 방향으로 밀고 가려는, 어떤 사회를 지향하고 분투해야 하는지에 대한 남들의 생각을 바꾸려는 욕구.
이 네 가지 지점에서 '나는 왜 쓰는가', 를 생각한다.
둘째와 셋째는, 작가도 기자도 아닌 나로선, 다소 먼 지점이다.
물론 '이때 나의 감정이나 상태가 이랬구나', 하는 걸 기록으로 남기고픈,
개인사의 지점을 넓은 의미의 '역사적 충동'으로 해석할 수는 있겠구나 싶다.
그리하여, 첫째와 넷째가 내겐 더 깊이 와 닿는데,
이기심이야 앞에서 어설프게 언급한 바 있고,
그래, 내게도 분명 '정치적 목적'이 있다.
곧, 나와 지향점이 같거나 비슷한 동지를 한 명이라도 더 찾고 싶은 욕망.
슬쩍슬쩍 언급했지만, 나는 내가 살고 싶은 세상이 있다.
이 깽판에 휩쓸려 더 이상 부유하듯 살고 싶진 않다.
나는 비록 소심하게 툴툴거리는 보통의 인간이지만,
함께 만들고 싶은 사회를 위해 분투하는 누군가를 동지로 삼는 것.
그것이 설혹 좌절로 그치는 한이 있어도 힘을 모아 노력해 보는 것.
나는 그렇게 정치적인 목적이 있다.
오호, '너, 정치적인 동물이구나'하고 말하면, 맞다!
이른바 '정치판'이라는 협소한 의미의 현실정치에 뛰어들 일은 없겠지만.
얼마 전에도 툴툴거린 바 있지만,
조지 오웰을 통해서 나는 거듭 확인한다. ^.^
문화·예술에 대한 글을 쓴다고 정치적이지 않아야 할 까닭은 없다.
오웰은 이리 말했다. "어떤 책이든 정치적 편향으로부터 진정 자유로울 수는 없다. 예술은 정치와 무관해야 한다는 의견 자체가 정치적 태도인 것이다."
냐하하, 그래. 오웰을 통해 내 글쓰기의 한 이유를 확인했다.
여섯살 무렵부터 작가가 되리라 믿고, 문학소년이었던 오웰은,
마흔 셋에 "기발하게 쓰기보다 정확하게 쓰려고 노력하는" 작가가 됐단다.
비록, 작가적 욕망은 그닥 없지만,
잡문날품팔이로, 때론 매문도 하면서 글쓰기를 해야 할 나는,
오웰의 이 말을 꾹꾹 눌러 담는다. "돌이켜 보건대 내가 현란한 구절이나 의미 없는 문장, 장식적인 형용사로 허튼소리에 현혹되었을 때는 어김없이 '정치적' 목적이 결여돼 있던 때였다."
나나 당신에게 지금 필요한 건 뭐? 이 책을 사서 읽는 것. 오웰을 만나는 것. 그러니까, 당신은 왜 쓰는가.
참, 글쓰기의 어려움을 하소연하는 당신에겐, 거듭 이 말부터. "글쓰기의 첫 번째 열쇠는 쓰는 것이지,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파인딩 포레스터> 중에서)
요즘 '칠레', 하면 무사귀환부터 바라게 된다. 알다시피, 지하 700m 갱도에 갇힌 33인의 광부 때문이다. 8월5일에 갇혔으니 한 달도 넘었다. 구출작업도 늦어졌다. 지난달 30일부터 시작됐는데, 3~4개월이 걸린단다. 다행이랄지, 8.8cm의 초큼한 구멍을 통해 외부와 소통하고 있다. 그들이 부디 무사히 돌아오길 바라면서도, 8.8cm의 구멍을 통해서만 바라보는 세상은 어떨까, 엉뚱하고 미안한 호기심도 든다.-.-;;
아울러, 그보다 더 험한(혹은 악랄한) 갱도에 빠진 우리를 생각한다. 칠레의 33인 광부는 구조된다는 기대라도 있지만, 현재의 내 심정은, 이땅의 갱도에선 아니다. 도리도리. 우리가 갇힌 갱도에는 8.8cm의 지름만큼도 안 되는 구멍이 있을 뿐이다. 하긴, 그거라도 어딘가 싶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꽉꽉 막힌 화폐갱도에 갇혀 있다는 인식도 못하고 있으니까. 심약한 나는 궁시렁 대면서도 그 갱도에서 꾸역꾸역 지탱하고 있고. ㅠ.ㅠ
어쨌든 칠레를 와인으로 떠올리는 사람도 있겠다.
대한민국 자유무역협정(FTA) 최초 체결국인 칠레. 덕분에 싼값의 칠레 와인은 한국의 마트를, 한국의 식탁을 장악했다. 아니면, 세계에서 가장 긴 나라? 하지만, 칠레는 와인으로만, 길이로만 떠올리는 건, 뭔가 부족하다. 한국의 지난 현대사와도 겹쳐지는 어떤 핏자국 때문이다. 인민들의 피, 말이다.
2010년 9월11일. 대한민국 국민인 내가 칠레를 떠올리는 건, 37년 전 그날 때문이다. 혁명적 사건이 좌절되고 말았던 그날. 세계 최초로 선거에 의해 들어선 사회주의 정권이 총칼에 의해 피눈물 흘리고 말았던 그날. 이 한 맺힌 혈서적 유서를 보자.
이번이 제가 여러분에게 말하는 마지막이 될 것입니다.
곧 마가야네스 라디오도 침묵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에게 용기를 주고자 했던 나의 목소리도 닿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나는 민중의 충실한 마음에 대해 내 생명으로 보답할 것입니다.
칠레 만세! 인민 만세! 노동자 만세!
이것이 나의 마지막 말입니다.
내 희생이 헛되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역사는 우리의 것이며, 인민이 이루어 내는 것입니다.
언젠가는 자유롭게 걷고 더 나은 사회를 건설할 역사의 큰 길을 인민의 손으로 열게 될 것입니다.
1973년 9월11일 살바도르 아옌데
최근 칠레에선 아옌데 정권 탄생 40주년 기념식이 열렸다.
1970년, 세계사에서 유래없는 일이었다. 소아과 의사 출신으로 뿔테안경을 낀 샌님적 외모를 지닌 살바도르 아옌데 씨는 칠레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무엇보다 그는 사회주의자였다. 세계 최초로 선거를 통해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섰다. 남아메리카 최초의 합법적 사회주의 정권의 실현이었다. 덩실덩실~
사회주의 정권은 33인의 광부가 갇힌 탄광과도 관련을 맺는다.
칠레의 노동운동은 광산촌 광부들에 의해 출발했다. 이들의 노동운동을 기반으로, 1917년 루이스 에밀리오 레카바렌이 주도해 칠레 최초의 노동자 정당인 사회주의노동자당이 창당됐다. 이는 아옌데까지 명맥을 잇게 된다. 칠레는 와인이 아닌 구리가 왕이다. 세계에서 구리 생산이 가장 많다. 광업은 칠레에서 가장 큰 산업이다. 파블로 네루다도 가난한 광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쨌든, 아옌데는 사회주의 경제개혁을 시행했다.
아옌데 대통령은 미국(인)이 선점하고 있던 구리광산을 전면 국유화했다. 구리광산의 수익은 사회적 자산으로 배당됐다. 은행도 예외는 아니었다. 토지 및 농업개혁이 실시됐고, 어린이에 대한 무료 우유배급 등도 시행됐다. 사회주의는 함께 잘 사는 방법을 고민했고, 당연히 있는 자가 아닌 없는 자를 위한 정책에 적극 앞장섰다.
문제는 미국식 자본주의의 열폭(열등감 폭발)이었다. 사회주의 정권의 항해는 쉽지 않았다. 물가는 상상도 못할만큼 뛰었고, 생필품은 동이 났다. 1972~1973년 2년 연속 경제성장률은 마이너스였다. 하지만 이것을 사회주의 경제개혁의 실패로 치부할 수는 없었다. 미국의 농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칠레경제의 핵인 구리의 국제가격을 떨어트리고, 아우구스트 피노체트를 앞장 세워 군부 쿠데타라는 비열한 수를 뒀다. 1970년 9월11일, 미국의 하수인 피노체트는 산티아고 대통령궁을 포위하고 명박, 아니 겁박했다. 투항하라고.
하지만, 아옌데는 진짜 '리더'였다.
속된 말로, 과장하자면, '식빵, 쪽 팔리느니 확 산화할란다!'. 그는 투항하지도 않았다. 망명을 택하지도 않았다. 그가 택한 것은 죽음. 피델 카스트로가 선물한 총으로 그는 스스로 쾅! "칠레 만세, 인민 만세, 노동자 만세." 모든 것이 압축된 그 말. 그는 칠레 속으로, 인민 속으로, 노동자 속으로 온전하게 스며들었다. 많이 다르긴 하지만, 이 땅에서 지난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그와 살짝 겹치기도 한다.
그 이후의 참혹함도 아주 살짝 겹친다. 범죄자 피노체트가 1990년까지 17년 동안 독재적 대통령질을 해대는 동안, 3000여 명이 살해되거나 실종됐다. 역시 범죄자 출신의 통치자가 대통령질을 하는 대한민국, 선량한 시민들은 범죄자로 내몰리고, 힘과 돈 듬뿍 가진 범죄자들은 총리나 장관(후보)으로 임명되며, 똥돼지는 왜 그렇게도 꿀꿀대는지. 토 나와!
올해 초, 아주 좋은 기회를 놓쳤다. 그래서, 아직 마음에 남아 있다. <칠레 전투:비무장 민중의 투쟁> 상영 얘기다. 지난 1998년 제3회 인권영화제를 통해 비로소 정식 소개된 이 영화는, 3부작으로 아옌데 대통령의 사회주의 개혁과 최후, 노동자들의 투쟁 등을 다루고 있다. 지난 1월에 인권운동사랑방이 함께 보자고 했는데, 아 시간이 맞질 않아 좌절.
지난 2005년도 따지고 보면 마찬가지다.
제6회 전주국제영화제. <칠레전투>의 감독, 파트리시오 구스만이 역시나 연출한 <살바도르 아옌데>를 보지 못했다. 구스만 감독은 이렇게 말했단다. "바로 그 시기에 살바도르 아옌데가 더 좋은, 더 자유로운 유토피아를 나의 조국에 실현시키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내 인생을 결정지은 인물이고, 나는 그 시절의 기억을 결코 잊을 수 없다."
뭣보다, 인민의 마음속에 살아있는 아옌데. 또 다큐에는 이런 장면이 나온다고 한다. 자식들 저녁상을 준비하는 노인의 입을 통해 "그것은 정말 위대한 유토피아를 위한 꿈이었다." 인민의 입에서 자연스레 나오는 저런 말은, 아마 직접 듣는다면 먹먹~할 거다.
아옌데의 꿈은 아직 살아있으라. 칠레 인민의 피 같은 칠레 와인을 마신, 33인 광부의 무사귀환을 바라는 대한민국의 한 찌질한 청년이 바라는 바다. 사회주의정권 탄생 40주년 기념식에서 아옌데 대통령의 딸인 이자벨 아옌데 상원의원 왈. "아버지의 이상은 여전히 살아있다." 그렇게, 나는 믿고 싶다. 아울러, <칠레전투>의 2부 끝장면, 이런 내레이션(자막)이 나온다. "아옌데는 죽었지만 칠레전투는 끝나지 않았다." 아무렴, 그렇지, 그렇고말고. 글 머리에서 이 땅의 흉악한 갱도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기대? 희망? 그 따윈 없다고 도리질을 쳤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까진 감출 수가 없구료. 혹시나. 정말로 혹시나. 지름 8.8cm도 되지 않을 구멍이라도.
다른 9.11 이야기
덧붙여, 대개의 사람들 뇌리에 박힌 9월11일의 사건은, 그렇지, 2001년 9월11일. '9.11'이라는 이름의 아마도, 21세기 최초의 전인류적 트라우마. 어느덧 9주기가 됐다. 명복을 빈다.
아울러, 1906년의 9월11일. 올해로 104주년이 된 셈인데, 무하트마 간디가 '비폭력 불복종운동(사티아그라하)'를 본격 펼친 날이다. 남아공의 요하네스버그에서 사람이 사람을 차별하지 말자며 평화운동을 펼쳤다.
그리고, 오늘 2010년의 9월11일. 예스24의 파워문화블로그 간담회에 갔다. 뭐, 오로지 떡밥(!)에만 관심이 있어서 간 속물적 인간인 나는, 늘 그러하듯 존재감 없이 떡밥만 먹고 돌아오긴 했는데, 한 분이 던진 한 마디가 영 불편해서 오늘 글을 이렇게 길게 늘여놨다.
역시나 졸렬하고 편협한 포스팅인 셈인데, (내 승질이 못돼서 그렇다!) 물론 그 분의 생각과 다를 뿐, 그 분을 비난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비판은 해야겠다. 오해는 마시라. 그 분이 나쁘다는 뜻도 아니요, 그 분의 (정치적) 성향이 어떠한지는 모른 채 하는 얘기다.
자기 소개를 하는 과정에서, "문화(를 다루는) 블로그는 정치색을 띠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씀하셨다. 듣기 나름일텐데, 나는 그 뉘앙스가 더 정치적으로 느껴졌다. 정녕, "정치적이지 않다"는 말에 숨은 뜻을 모르고 하시는 말씀인 걸까, 궁금했다.
지금 이 엄혹한 시대, 문화·예술이 어떻게 정치에 휘둘리며, 정치적으로 억압 당하는지 몰라서 하시는 말씀인 걸까. 인류사에서 문화·예술이 어떻게 정권과 기득권의 통치 도구로 이용됐으며, 문화·예술이 어떻게 기득권에 저항했는지를 몰라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걸까.
'문화'라는 말이 붙었다는 이유로, 정치색을 띠지 말라? 아주 협소한 의미의 정치를 갖다붙이셨는지는 모르겠으나, 그 말은 자신의 글을 부정하라는 말 같아서 영 마뜩찮았다. 더구나, 물론 나는 잡문날품팔에 불과하니 '파워'니 '리더'니 하는 레떼르와는 동떨어진 블로거이나, 예스24에서 강조한 파워와 리더로서의 오피니언 블로거라면, 그런 말씀은 완전 의외다. 문화나 예술은 한 시대의 산물이요, 시대나 정치와 외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나는 생각한다). 어느 문화나 예술이든, 어떻게든 일정 부분 정치색을 담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어떤 방식으로 드러내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
위대한 작곡가 윤이상 선생님 말씀으로 그것에 대한 언급은 맺겠다. "작곡가는 단순한 예술가가 아니라 그 세상을 살고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는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에 무심할 수 없다. 인간적인 고뇌, 압제, 부당함이 이 세상에 여전히 존재한다. (…) 고통이 존재하고, 오류가 존재하는 그곳에 나는 내 음악을 가지고 나아갈 것이다.”(『음악과 권력』 중에서)
결론은 이렇다.
여름은 위태롭고, 커피향이 서서히 깔릴 즈음의 계절인 9월. 그 어느해 9월에, 나는 칠레 사람들을 만나고, 칠레의 공기를 흡수할 테다.
그때 나는,
아옌데의 사회주의적 이상을 만나고, (11일)
빅토르 하라를 노래(Venceremos·벤세레모스:우리 승리하리라)하며, (16일)
파블로 네루다의 시(詩)를 읊는다. (23일)
칠레 와인, 그리고 칠레 커피를 곁들여서.
내 어느해 9월은, 칠레가 익어가는 계절.
떠나요~ 둘이서~ ^.~
그리고 외쳐요. 벤세레모스!!!
누구든 취향이 있겠지만, 그것을 스스로 알고 있거나 알려고 하는 노력은 부족하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것에 기뻐하고 슬퍼하는지, 많은 이들이 자신을 아는 일에 생각만큼 충실하지 않다. 아마도, 지금 사회가 강요하는 '스펙'과 '사이클'에 자신을 맞추다보니 그런 '사태'가 벌어지지 않나 싶다. 삶의 미세한 결을 내동댕이치고 마는.
어쩌다, 혹은 운좋게도 공동 저자로 참여하게 된 책에 대해 씨불거리는 것은 다소 남세스로운 일이겠다. 그냥 하나객담(실없고 하찮은 이야기)으로 여겨주면 되겠다.
제목하여, ≪100인의 책마을≫ 되시겠다.
졸지에 마을 주민이 됐다. 이장님께도 인사드려야 하는데...ㅋ
1. 우선, 글을 싣게 된 과정. 한때, '원튀'(원고 먹고 튀는 사람)이 아닐까, 의심도 했다. 자주 일어나는 일은 아니지만, 그런 일을 당해본 입장에선, 트라우마인 게지. 아무리 허섭한 글일망정, 거기엔 내 마음과 시간과 내가 있으니까. 그런 일을 당할 경우, 절로 입에서 튀어나온다. "식빵(신발), 꽃 같다. 된장."
거의 1년여 전에 청탁을 받았다. 낑낑대며 긁적이다가 글을 넘겼다. 오래 걸리지 않을 것처럼 말하기에, 그리 믿었다. 잘 아는 사람은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못 믿을 사람도 아니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러나 깜깜 무소식이었다. 청탁자의 블로그에도 비밀글로도 물어봤으나, 답도 없다.
'신발, 당했나...'하는 생각이 들고, 걍 포기하고 있을 무렵, 연락이 왔다. 처음 내는 책이다보니, 이런저런 사정 때문에 늦어졌단다. 그리고 진도가 빨라지더니 뚝딱뚝딱. 뭐, 우여곡절 끝에 나왔다.
따져보면, 공저자로 이름을 올렸지만, 첫 책이다. 이전에 역시 공저로 나온 책들은 뭐랄까, 대회 수상작들 모음집이니 이벤트성이랄까. 허허, 내가 박힌 책이 나오는구나. 별 일이 다 있구나. 근데, 책으로 나온 나를 읽어보니, 아 신발, 쪽 팔려. 이런 졸필을 책으로 내놓다니. 끙. 괜히 다른 저자들에게도 초큼 미안시럽더라.
2. 뭐, 쪽 팔리고 미안한 건 그렇고. 23명의 공저자. 꽤 많은 사람들이다. '책세이(책+에세이)와 책수다로 만난 439권의 책'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러프하게 말해, '이 책(들)은 내 삶에 어떻게 삼투압했나'이다.
각 저자의 글을 읽다보면, 그 사람이 나온다. 물론, 완전하지는 않으나, 취향이 나온다. 삶이 묻어난다. 괴테가 그랬다지. "지금 네 곁에 있는 사람, 네가 자주 가는 곳, 네가 읽는 책들이 너를 말해준다."
저자들이 읽은 책들이 곧 저자를 말해주고 있는 셈이다. 누군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다면, 그 사람의 책을 보면 된다. 모든 것은 아니지만, 일정부분 그 사람이다. 취향이다. 곧, 그 사람의 삶의 결과 매력을 엿볼 수 있다.
그래서일까. 책은 편차가 심하다. 저자가 스물셋이나 되다보니, 어쩔 수 없었겠지만, 균질하지 못한 데서 나오는 거부감이 있다. 읽고 나서, 글에 묻은 결이 영 아니어서, 왜 실었을까, 의문도 생기는 글도 있다. 물론 불균질함이 장점이 될 수도 있다. 롤러코스터 타듯 재미있을 수도 있다.
나의 글도 그런 면에서 숙청의 대상이겠다. 글에 언급한 선생님들, 내 인생의 F4에게 참으로 민망하고 죄송스럽다. 일부 그런 글이 보여서, 다른 좋은 저자들의 글을 갉아먹지 않았나 싶다.
오해는 말자. 당연히 좋은 글도 풍성하다. 혹, 책을 읽게 된다면, 별로 믿을만하진 않은 권유지만, 은이후니님의 <나는 천천히 가기로 했다>, 김원국님의 <환경 활동가, 그 열정의 이름으로> 등은 책과 삶이 맺는, 책보다 중요한 삶이 알차게 담겼다. 강추다.
나도 마찬가지지만, 다들 힘들게 나를 담아서 썼을 거다. 좋은 결과물을 내놓은 저자도 있는 반면, 그렇지 못한 저자도 있을 것이다. 힘들게 책 낸 과정을 대충이나마 알고 있으니, 편집자나 출판사에 대고 뭐라고 할 공저자의 입장은 아니다. 그럼에도 나는 인정해야 한다고 믿는다. (글 쓰고 책 만드는) 노동의 가치와 결과물로 나온 책의 가치는 별개의 것이라고.
3. 이 책이 단순히 책수다로 끝나지 않기를 나는 바란다. 책에 대한 이야기는, 곧 공저자들이 언급한 책에 대한 호기심과 읽기로 이어지면서 삶과 세상에까지 삼투압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최성각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책보다 더 놀랍고 대단한 것이 바로 이 세상"이라고. 그리고 이 책에 추천사를 써주신 장석주 시인도 이런 말씀을. "독서인은 단순히 책을 읽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
가끔 언급했지만, 책 많이 읽는다고 자랑질하는 인간이 나는 영 미덥지 않다. 그래, 니가 그렇게 많은 책을 읽어댔는데, 뭘 어쩌라고. 책읽기를 통해, 진짜 세상과 만나야 하고, 삶과 융화돼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최성각 선생님도 역시 이 말씀도 빠지지 않고 하셨다. "책에만 빠져 있는 삶이 매우 한심하고 불쌍하다."
날림글을 끼워넣어서 미안하긴 하지만, ≪100인의 책마을≫은 책이 세상에서 어떯게 존재하고 존재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더불어 각 저자의 삶이 묻은 책을 통해 어떤 세계를 위해 살아가고 노동해야 할 것인지도 고민하게 한다. 뭣보다 각 저자의 취향을 엿보는 재미도 있다. 아, 이 사람은 이런 결을 가지고 있구나. 내 옆의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나? 그 사람이 무슨 책을 읽고 있는지 물어보라.
나의 허섭한 글은 곧 블로그를 통해 공개하겠다.
* 표지의 캘리그래피. 좀 마음에 안 든다. 힘이 느껴지질 않는다. 100인이나 되는 책마을인데도. 책마을을 드러내는데도 미흡하다.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