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2010/08'에 해당되는 글 13건

  1. 2010/08/30 하루, 여덟 시간의 노동 by 스윙보이
  2. 2010/08/29 '싸이'보다 '사이'! by 스윙보이
  3. 2010/08/25 선물, 안경과 옷 by 스윙보이
  4. 2010/08/23 고맙습니다, 윤구병 선생님! by 스윙보이 (2)
  5. 2010/08/22 어찌 울지 않을 수 있겠니, 석류 안녕 by 스윙보이
  6. 2010/08/21 법치주의 강권시대, 캐발랄하게 사시는 정철 아저씨! by 스윙보이
  7. 2010/08/11 열하일기를 따라나선 초원여행 by 스윙보이 (2)
  8. 2010/08/10 [책하나객담] 인간 수컷이 쪽팔려, 남자 사람이고 싶어라! by 스윙보이
  9. 2010/08/10 뚜껑 대신 마음을 여는 공감 글쓰기 by 스윙보이
  10. 2010/08/06 정은임, 다시 불러본 그 이름 by 스윙보이 (2)

One of the saddest things is that the only thing that a man can do for eight hours a day, day after day, is work.
You can’t eat eight hours a day,
nor drink for eight hours a day,
nor make love for eight hours a day
— all you can do for eight hours is work.

식빵! 지독하고 슬픈 진실.
인간이 하루에 여덟 시간, 매일 여덟 시간씩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먹는 것도, 술 마시는 것도, 섹스도 아닌 오로지 노동 뿐이라니.

정말 그렇구나.
매일 같이 여덟 시간,
주야장천 섹스한 적도, 먹은 적도, 술을 퍼마신 적이 없구나.

단 이틀이라도 그렇게 한 적이 없구나.

김연수를 통해 알았다. 윌리엄 포크너의 꾹꾹 눌러담은 말.
이런 말, 아무나 쉽게 뱉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는, 돈을 벌기 위해 악착 같이 글을 썼다고 한다.
작가가 되기 위해 글을 쓴 것이 아닌 소설노동자. 

윌리엄 포크너는 어떤 작가였냐고? 
나, 이런 사람이야~ (알아서 기어, 아니면 쉬어, 알았으면 뛰어) 

노벨문학상을 받았고, 퓰리처상을 2번 수상한,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미국 작가 중 한 사람. 

Anyway, the only thing a man can do for eight hours is work!

부록으로, 소설가 김훈. 대책 없는 당신과 나의 노동에 대하여. 

그러므로 이 세상의 근로감독관들아,
제발 인간을 향해서 열심히 일하라고 조져대지 말아 달라.
제발 이제는 좀 쉬라고 말해 달라. 이미 곤죽이 되도록 열심히 했다.
나는 밥벌이를 지겨워하는 모든 사람들의 친구가 되고 싶다.
친구들아, 밥벌이에는 아무 대책이 없다.
그러나 이걸 잊지 말고 또다시 각자 핸드폰을 차고 거리로 나가서,
꾸역꾸역 밥을 벌자.
무슨 도리 있겠는가. 아무 도리 없다.

-《밥벌이의 지겨움》 중에서 -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스윙보이

아파서 사경(?)을 헤매면서 초점 잃었던 나의 눈이 반짝 띄였다.
유기농 펑크포크의 창시자이자 유랑 뮤지션, 사이.
감성다큐 미지수의 한 꼭지였다.


우쿨렐레가 먼저였다.
조만간 배우고자 맘 먹고 있는 악기인데,
시골에서 우쿨렐레를 들고 구수한 노래를 부르는 한 사내라니.


고저, 호기심이 반짝반짝.
뭔가 싶어서 사경속에서도 정신줄을 놓지 않았다.

그렇게 보고 있자니, 아뿔싸! '뿅~' 갔다.
노떼 자얀츠의 극적인 역전 끝내기도 살리지 못한 환자를,
발딱 일어나도록 만든 사이의 이야기와 노래.

사이의 힘이다. 

사이, '귀농통문'
 
그는 내 또래였다.
같은 고향을 두고 자랐으며,
어쩌면 비슷한 시기에 홍대에서 스쳤을지도 모른단 생각을 했다.

뭣보다 그는 나보다 건강하고 좋은 생각을 지니고,
그 생각을 온전히 실천에 옮기면서 자연에서 뒹굴고 있음이 부러웠다.

그의 아들, 느티의 발가벗은 자연은 무척 귀엽고 예뻤고,
해운대 리베라호텔, 그 익숙한 이름에서 청소를 담당하고 계신다는, 
육숙희 여사는 그를, 그의 음악을 부끄러워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육 여사는 그의 어머니라고 했다!) 
   
언젠가 또 얘기할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는데,
이제 나도, 사이의 팬이다!!!
 
아, 사이가 부자가 되면 안 되는데... ㅎㅎ
(방송을 본 사람만 알 수 있는...) 

아울러,
이사할 집을 찾고 있는 그에게, 그의 가족에게, 
집이 얼릉 다가왔으면 좋겠습니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스윙보이

8월25일.
1609년,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망원경을 처음 제작했다.

그러니까,
그는 401년 전 망원경으로 밤하늘을 관찰한 최초의 인류, 되시겠다.

갈릴레이 같은 르네상스형 천재가 망원경을 통해 우주의 문을 열었다면, 
나 같은 가장 보통의 인간은 안경으로 내 작은 우주를 연다.

약간 시간이 흘렀지만,
그동안 고생한 나를 위해 안경을 마련해서 선물했다. 토닥토닥. :)
안경 하나, 선글라스 하나. (돈 쫌 들었다. 그래도 날 위한 선물인데! ^^;;)


단골안경점에 가서 시력을 측정했는데, 
아니, 이전 검사치보다 눈(시력)이 훨~ 좋아졌단다. 우째, 이런 일이!!!

눈이 좋아졌다는 것. 뭘까.
먼 곳을 바라보고, 시야를 멀리 하면 눈이 좋아진다는데.

늘 좁은 세계에서만 맴돌던 나의 시선이,
세계를 좀 더 멀리 바라보고 인식할 수 있게 된 것일까.  

자위한 것이겠지만,
눈이 좋아졌다는 그 말에,
세계를 향한 나의 시계가 초큼이라도 넓어진 것이리라 해석했다.
다행이다. =:)

그리고, 뒤늦은 감사 인사.
옷 선물을 받았다.
두 명의 내 좋은 친구로부터.
나의 빠숑까지 신경 써 주는 좋은 친구들.


그렇구나.
고냥 헛 산 것도 아니구나. 내 삶도 마냥 나쁘진 않구나.

고마워, 친구들.
사랑해~~~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스윙보이
윤구병 선생님.
꼬옥 뵙고 싶었던 내 마음 속 선생님.

지난 3월, 선생님께서 책을 펴 내신 덕에 감격의 알현(!)을 했다지요.
뵙자마자, 큰 절 한 번 넙죽 드리고, 
선생님 말씀 하나하나 곱씹었습니다. 


그래서 아래에 옮긴 기록은 지독히 편협한,
선생님을 향한 제가 가진 애정의 기록이 되겠지요.
물론, 그렇다고 선생님이 지닌, 선생님 책이 지닌 가치를 간과하진 않으려고,
최대한 노력했어요.

선생님은,
제게 변산 한 번 내려오라고 하셨는데, 
(제가 일은 좀 하게 생겨먹어서일까요~^^)
아직 발길을 옮기진 못하고 있어요. 흙. ㅠ.ㅠ

이후 좋은 사람들과 함께 '문턱 없는 밥집'을 찾았는데, 
선생님이 계셨어요. 다른 분들과 도란도란 말씀을 나누고 계셨죠. 
기회 봐서 인사 드려야지, 호시탐탐 엿보고 있었는데, 
아뿔싸, 소변 누러 간 사이, 선생님이 자리를 뜨셨다는... ㅠ.ㅠ
 
아, 저랑 '문턱 없는 밥집' 가실래요? 
정말 맛 있는 막걸리 한 사발, 쏩니다. ^^ 
어쩌면 선생님을 알현할 수 있는 기쁨(!)까지도! 


==============   
 

“함께 낮엔 일하고 밤엔 막걸리를 마실 분, 작업복 챙겨서 변산으로 오세요”
농부철학자,
윤구병 선생님


농부. 누구보다 땅님의 힘을 믿고, 바람님, 해님, 물님, 별님 등 자연이라는 큰 선생님의 뜻을 받들고 합일점을 찾는 분, 이라고 단정한다면, 과장일까요. 물론 그 임들에 의해, 자연재해라는 이름 앞에 직접적으로 상처를 입는 것도 대개 그들입니다. 사람이 가진 결함과 연약함, 미욱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분들. 그래서 누구보다 더 자연의 위대함을 잘 알고 자연에게서 배움을 얻는 사람들이기도 하고요. 

도시(인)가 망쳐 놓은, 혹은 도시내기들의 거지발싸개 가치관에 물든 이가 아니라면, 나는 많은 농부가 그러할 것이라는 생각, 굳히기에 들어가고 있습니다. 농촌이 도시보다, 농부가 도시내기보다 못하다는 인식은, 근대이후 상품경제사회를 지배적인 가치로 받아들인 도시내기들의 협잡(?)에 의한 것입니다. 농촌/도시의 피착취/착취 관계가 불러온.


더구나 도시내기들은 개발과 발전을 명목으로 자연까지 착취합니다. 농촌(농부)을 희생해서라도 성장해야 한다는 삽질경제관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같은 형태로 드러나기도 했지요. 권력을 쥔 도시내기들이 내놓은 명분이, 고작 ‘대를 위해 소는 희생해야 한다’는 것이었죠.

차라리 깨놓고 말하지 그랬어요. 내 주머니로 들어오는 돈이 많은 산업이 장땡이라고. 진짜 대(大)와 소(小)를 구분 못하는 아둔함. 똥오줌 못 가리는 철부지. 돈 보다 중요한 게 있고, 돈 따위로 환산할 수 없는 소중함이 있다고 입놀림 하더니, 뭡니까, 이게.

과문한 탓에, 인간 중심으로만 사고했었습니다. 다른 생명체, 자연의 고마움까지는 생각 못하고 살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인간만 유독 자생 못하는 존재였어요. 육식이든 초식이든 다른 생명을 섭취해야만 살아갈 수 있고, 다른 생명의 유지를 위해선 뭐 하나 주는 것 없는 존재. 이산화탄소만 꾸역꾸역 내뱉으며 다른 생명체와 공존하는 것에는 무심한 채 자신만을 위해 ‘더 빨리, 더 높이, 더 멀리’라는 구호만 외쳐댄 인간. 거참, 인간으로서 다른 생명체에 면목이 없습니다.

너 혹시 자연환원주의, 농촌로망을 늘어놓고자 함이냐, 고 되묻는다면, 에이~ 그럴 리가요. 농부철학자 윤구병 선생님의 ‘생명에세이’ 연작, 『가난하지만 행복하게』 『꿈이 있는 공동체 학교』 『자연의 밥상에 둘러앉다』 『흙을 밟으며 살다』(윤구병 지음|휴머니스트 펴냄)을 읽고 든 도시내기의 생각입니다. 삶터로서 공동체를 이룬 것이 아닌, 삶의 도구로 전락시킨 자연 앞에서 나는 얼마나 많은 죄를 저지르고 있나, 눈이 번뜩 뜨였습니다. 윤 선생님도 말씀하셨습니다. “도시 사람들이라고 자연과 동떨어져 살지는 않는다.”(『흙을 밟으며 살다』, p.32)

저라는 도시내기는 자연과 맺은 관계를 제대로 생각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도시 사람들은 거개가 시골 사람들에게 아무 일품도 되돌려주지 않고 일방으로 시골 사람들을 부려서 밥상을 차린다. 하다못해 똥오줌마저 되돌려주는 일이 없다. 우리는 이런 일방관계를 착취라고 한다. 한마디로 도/농 사이의 관계는 착취/피착취의 관계다. 그런데 이 착취는 도시 사람들이 시골 사람들의 뼛골을 빼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도시 사람들은 시골 사람들을 징검다리 삼아 자연을 일방으로 착취한다.”(『흙을 밟으며 살다』, p.28)

함께 살아야 한다는 말, 곳곳에서 배회하지만, 정작 도시의 삶에선 그 말이 제대로 녹아들지 못합니다. 65억 인류가 자연과 함께 발붙이고 사는 이 푸른 지구. 시속 11만km로 우주를 여행하고 있는 행성, 지구. 그 지구엔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는 다른 생명의 도움으로 살아갑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자주 잊고 살아갑니다. 다른 생명의 고마움을.

특히, 많은 사람들이 ‘부자 되세요’라는 말을 일상적으로 건네고, 투기가 투자이며, 노후를 위한 방편이라는 그럴싸한 변명을 해대는 이 사회. 불로소득과 일확천금, 로또나 대박을 노래로 흥얼거리며 꿈꾸게 만드는 시대. 더 높은 아파트와 마천루가 세워지는 것을 잘 사는 것으로 착각하면서, 개발국가의 가장 타락한 형태인 토건국가의 정체성이, 시민의 세금을 탕진하고 자연을 파괴하는 것임을 모르는 사회구조. 이런 구조에서 우리는 얼마나 지속가능할까요.

다른 삶도 있다

저는 지금-여기의 우리에게 가장 강력하면서 무서운 이데올로기가 ‘먹고사니즘’이라고 생각해요. 먹고 사는 문제, 물론 가장 중요하고 모름지기 잘 사는 사회는, 누구의 배도 곪지 않는 것에서 시작하는 거라고 생각하지만, 때로 ‘먹고사니즘’은 모든 것을 무화시키며 죄 짓는 자신을 정당화하는 기제로 사용되곤 합니다. 먹고 살기에 바쁘단 핑계로 서로를 다독거리지도 않고, 남이야 어쨌든 제 살길만 찾겠다고 눈 부릅뜬 시절. 화폐를 희망으로 치환하고, 화폐에 모든 것을 걸고 배팅하는 무모함까지.


다른 삶. 세상엔 하나의 삶만 있진 않습니다. 특히 ‘슬플 때 생각을 다잡고, 기쁠 때 마음을 가다듬고, 승승장구할 때 성찰케 하고, 어려울 때 용기를 북돋는 시대의 어른들이 쓴 산문’을 보자면, 화폐나 상품에 삶 전체를 목매달고, 아이들 영혼을 거세시켜 신자유주의 잔혹극에 편입시키는 따위의 삶이 아니어도 좋을 다른 삶이 있습니다.

가령 이런 것이겠지요. “오늘도 참 행복한 날이다. 오전에는 산에 올라가 커다란 마대로 솔잎을 네 마대나 꾹꾹 눌러 담을 수 있을 만큼 손에 땀나게 갈퀴질해서 군불 때는 아궁이 네 개에 하나씩 부려놓고, 막걸리 한 잔, 밥 먹고 낮잠 한숨. 그리고 날씨가 쌀쌀한 저녁 무렵을 타서 장작 패다 또 막걸리 한 잔. 저녁 먹으면서 서너 살짜리 우리 공동체 애들인 미로, 가을이, 진희, 마루랑 시시덕거리다 환한 반달이 비추어주는 고샅길 따라 내 방으로 와서 이 글을 쓰고 있다.”(『자연의 밥상에 둘러앉다』, p.123)

그래서 행복한 삶, 다른 삶을 살고 계신 윤구병 선생님이 궁금했습니다. 어떤 세상이 살기 좋은 세상이냐고 묻는 질문에, ‘마음 놓고 살 수 있는 세상’이라고 하신. 짠했습니다. 그 말. 마음 놓고 살 수 있는 세상이라... 마음과 영혼을 저당 잡힌 채, 혹은 그것을 놓고 다듬을 틈도 없이 부대껴야만 하는 도시적 삶의 팍팍함 때문에 그랬나봅니다. 영혼을 채우는 일, 마음을 놓는 일을 묻고 싶었습니다. 지난 3일이었죠. 휴머니스트 출판사에서 윤 선생님을 만나뵀습니다.

도시의 ‘만드는 문화’가 아닌, 기르는 문화로 문명사적인 대전환을 이루지 않으면 인류에게 미래는 없다고 단언한 윤 선생님은, 외람된 말이지만, 영혼의 충만함으로 가득한 영성이셨습니다. 책 이야기부터, 변산 공동체, 농촌 사회, 먹을거리 등과 함께 좀비를 길러내는 제도권 교육(이라고 쓰고, 사육이라고 읽는다)에 대해서도 말씀을 나눴습니다.

목숨 지닌 것들이 한데 어우러져 삶을 잔치로 바꾸는 놀음을 거드는 교육을 실천하는 변산 공동체. 그런 곳에서 자연을 벗 삼아 놀이로 생과 영혼을 가꾸는 아이들의 모습을 떠올리자니, 절로 흐뭇한 웃음이 나왔습니다. 부족하지만, 큰절 한번 올리고, 감사한 마음 전하며 시작된 이야기, 한번 들어보시렵니까? 

생명 에세이 선집으로 다시 태어난 40여년 문제의식

40여년 쌓인 문제의식을, 이번에 세권의 책으로 묶었습니다. 앞서 2년 전 내셨던 『가난하지만 행복하게』와 어우러져 저는 ‘생명 에세이’라고 부르고 싶은데요, 우선 책으로 엮은 소회가 어떠신지요.

선완규 선생(휴머니스트 편집인)이 (과거에 써 놓은) 6000매 원고를 보면서 선집을 냈으면 하는 생각을 전했어요. 워낙 오래 전 써놓은 거라 요즘 도움이 되겠느냐 했는데, 우리 상황이 과거보다 더 좋아져서 그것들이 쓸모없는 글이 되는 것이 바란 바이지만, 상황이나 교육, 생태 문제가 더 악화된 측면이 있잖아요. 그때 쓸 땐, 크게 귀담아 들을 얘기가 없었을지 몰라도 지금은 더러 귀담아 들을 얘기가 있어요.

그래서 골라서 묶어보라고 얘기를 했습니다. (책 나온 뒤) 저도 깜짝 놀랐어요. 제 기억에서 잊힌 글도 많고. 책으로 묶여 나온 것을 읽어보니 새삼스러운 측면도 있고. 참, 고맙습니다.

제목이, 참 맛깔스럽습니다. 확 와 닿고 끌리는데, 제목 어떻게 만드셨어요.

제목은 해명을 해야겠습니다. (웃음) 『가난하지만 행복하게』는, 그 제목이 어떠냐고 물어서 나는 한 번도 가난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실제 가난하지도 않고. 그래도 제목은 출판사 권리니까 그렇게 해도 좋다고 했고요. 마찬가지로, 『흙을 밟으며 살다』나 『자연의 밥상에 둘러앉다』는, 사실 우리말 질서에 맞진 않아요. 서양말과 달리 동사 원형을 쓰지 않거든요. ‘자연의 밥상에 둘러앉는다’든지 ‘둘러앉았다’고 하지, ‘둘러앉다’라고는 안 해요. 또 ‘살았다’나 ‘산다’라든지, ‘살다보니’라고 쓰지만, ‘살다’라고는 쓰지 않습니다.

역시 제목은 출판사 고유 권한이니까, 굳이 그렇게 하겠다고 하면 말리지는 않지만, 누가 여기에 대해 묻는다면 변명을 할 거다, 라고 했어요. (웃음)


‘변산 공동체’, 많이 궁금해 할 것 같습니다. 책을 읽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알려주신다면.

변산 공동체는 뭣보다 사람들만 사는 세상은 아닙니다. 지금은 사람 중심의 세계라서, 공동체라고 하면 사람들이 한데 어우러져 사는 곳이라 생각을 많이 해요. 우리가 말하는 공동체는 늘 다른 생명체들과 더불어 사는 것을 전제로, 밑바탕으로 깝니다.

아침․점심․저녁 생명을 유지시켜주는 음식은 자연에서 온 선물이라고 볼 수 있고, 땅 속에 사는 지렁이부터 땅 위의 나무, 풀 모두를 공동체 일원이라 생각하죠. 그뿐 아니라 물, 바람, 불(해), 흙 모두 우리보다 훨씬 더 큰 존재이고 우리 삶을 지탱해주는 큰 공동체 일원이라 생각합니다. 요즘 물질과학을 하는 분들에겐, 정령숭배 같은 느낌이 들지 몰라도, 저는 해, 달, 불, 물, 바람, 흙 모두 생명공동체 일원이라고 봅니다. 즉, 우리가 말하는 공동체는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인간의 삶터라는 의미를 넘어선 것이죠.

공동체나 책의 핵심은, ‘여러 생명체가 더불어 살자’ ‘다른 삶도 있다’가 아닐까 싶습니다. 상품경제 사회에 대한 맹신과 그릇된 가치관이 바이러스처럼 퍼진 지금, 사람뿐 아니라 생명체에 대한 경시는 도를 넘어섰는데요, 지금 우리 사회를 진단해주신다면.

지금 도시 사회가 굉장히 활성화되어 있고 진보하고 있는 것처럼 여겨지지만, 역사상 모든 도시문명은 몰락했어요. 시간차가 있을 뿐이지. 다른 생명체에 대한 경시, 즉 다른 생명공동체 일원을 무시하고 오로지 사람만 다른 생명체보다 도드라진 위치에 있다는 생각 때문에 자연과 조화를 못 이뤄 언젠가는 멸망한다고 봅니다.

현재 도시사회 구조는 옛날보다 훨씬 취약해요. 옛날에는 약탈의 형태일망정 생명 에너지를 이용해서 도시 사회도 함께 살아나갔어요. 도시 인구가 전체의 10%를 넘어서지 않았고요.

그런데 지금은 위성도시 비율이 80%를 넘어서고 물질에너지를 이용해서 사는데, 이것은 생체에너지가 아니라는 점에서 공급이 제한되고 교란될 소지가 있습니다. 전쟁이나 자원고갈 등 물질에너지 공급에 결함이 생긴다면 도시는 사흘도 견디지 못할 겁니다. 그 사람들이 어디에서 살 길을 찾겠느냐. 생명공동체로 가는 수밖에 없어요. 외딴 섬이나 깊은 산 속, 사람이 없는 곳으로 가는 게 아니라 사람이 사는 공동체를 매개로 자연에 어떻게든 다시 귀의하게 되는데 그 형태가 굉장히 폭력적일 것 같아서 우려는 됩니다.

“역사적으로 모든 도시 문화는 멸망했다. … 도시의 삶 자체에 자기 파괴의 원리가 들어 있기 때문에 도시의 몰락은 불가피하다. 도시는 자급자족의 공동체가 아니다. 다시 말하면 도시에서는 참된 의미에서 자율적인 삶이 이루어질 수 없다. 그 이유는 아주 명백하다. 우선 도시는 자신의 힘으로 우리의 의식주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이런 말을 하면 어떤 사람은 현대 도시는 다르지 않느냐, 비록 아직까지 먹이 문제는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 하더라도 옷과 집 문제는 자체적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지 않느냐 하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도시에서 사는 사람들은 기본적인 생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어떤 방법으로든지 주변의 마을 공동체에 빨판을 대지 않을 수 없다. 도시가 커지면 커질수록 도시 밖으로 뻗는 문어발은 더 길고 억세야만 한다.”(『흙을 밟으며 살다』, pp.81~82)

변산에서 공동체 꾸려 살아가기


지금 여기의 많은 우리에겐, 무한한 생산력의 발전에 따라 무한히 분화되고 증가되는 욕망을 무한히 충족시킬 수 있다는 신화(?)가 지배합니다. 그런 신화를 거부한 선생님의 결단을 자극한 계기가 있었을 것 같아요.

저는 워낙 촌놈이고 생김새를 보면 적나라하게 드러나지만 시골에서 나고 자랐어요. (웃음) 제가 구형제의 막내인데, 위로 여섯 형이 6․25때 죽자, 아버지가 남은 아들 셋을 농사꾼으로 만들어야 전란이나 전쟁판에서 지킬 수 있겠다 생각하셔서 귀농을 하셨어요. 이런 과정을 통해 도시문명에 대한 환상을 어렸을 때부터 깨트린 측면이 있고, 10여 년 이상 시골에 살면서, 무한하게 생산력이 늘고, 생산력이 늘면 무한히 증가되는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다는 도시에서의 믿음이 깨졌습니다. 

시골에서 농사를 짓다보니 알게 됐는데, 농사꾼이 하는 일이 대단히 적어요. 무슨 말이냐면, 농사꾼이 씨 뿌리고 김매고 거두어주는 것을 끝내면, 나머지는 사람보다 훨씬 큰 존재인 물, 불, 흙 등이 24시간 일을 해서 곡식을 생산해요. 농민들은 자연을 상대로 잉여노동을 할 수는 없거든요. 또 씨 한 알을 심으면 수천 알, 수만 알이 나오는데, 이걸 내 거라고 할 수가 없어요. 더 큰 존재들이 마련해 준건데.

그리고 유기물은 도시에서 주고받는 화폐나 유가증권과 달리 그대로 축적해놓으면 썩어버려요. 내가 씨를 뿌린 것보다 수 천 수 만 배 수확을 안겨주니, 이걸 내가 전부 했다고 할 수도 없고 이걸 쌓게 되면 썩게 되는데, 썩히지 않으려면 나눌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나눔이죠.

나무밥상에 채소와 곡식을 올리는 건 자연스러운 농사꾼의 마음입니다. 그래서 도시에서 각박하게 얼마나 일해서 얼마를 챙겨야하는 것을 더 이상 할 순 없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도시사회를 지배하는 도식이 마음에서 무너져 버렸고, 자연이 저를 무장해제를 시킨 거죠.

세계를 바꾸는 실천의 무기로서 진짜 삶과 자연에 손을 잡으신 것 같아요. 자연과 함께 농사지으면서 살아가고 철학하기, 어떠세요.  

저는 아직도 풋내기 농사꾼이에요. (웃음) 저희 마을만 해도 팔구십 되신 노인네들이 농사를 지으시는데 그분들이 말씀하세요. 일생동안 농사를 지어왔지만 아직 모르는 게 더 많다고. 그분들이야말로 숨은 철학자시죠. 끊임없이 평생 동안 공부하고 배워왔는데도, 아직도 모르는 게 더 많다고 자신을 낮추는 분들이고, 저는 아직 못 미쳐요.

변산 공동체 15년. 쉽지 않은 세월입니다. 그 15년을 중간 정리해 주신다면요. 또 많은 이들이 들고났지만, 지금까지 공동체가 잘 버틸 수 있는 원동력은 뭘까요.

결국 공동체는 자율적인 인간들이 도시에서 소외된 노동을 견딜 수가 없어서, 노동을 통해 자기실현을 할 수 있는 삶의 장을 찾아서 자연스럽게 모인 곳이에요. 저는 처음부터 한 공동체가 최소한 완성된 틀을 갖추기 위해서는 삼십년이 걸릴 거라고 생각했어요. 모든 생명공동체는 할아버지로 대표되는 과거와, 부모세대로 대표되는 현재, 아이들로 대표되는 미래가 한데 연대를 하고 긴밀하게 유기적으로 결합해서 형성되거든요.

그런 점에서 반환점에 있다고 봅니다. 어떤 것은 생각보다 조금 빨리 이뤄졌고, 또 어떤 것은 욕심보다 더디거나 아직 이뤄지지 않은 측면도 있지만, 큰 틀로 봐서는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조금 빨리 이뤄지거나 더디게 되고 있는 것은 뭐죠?

조금 빨리 이뤄진 부분은, 교육입니다. 공동체를 이룬 젊은이들이 서로 눈이 맞아 짝을 이루고 태어난 아이들을 기르는 과정에서 교육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은 했어요. 느긋하게 생각했는데, 교육에 대한 요구가 커서 공동체에서 태어난 아이 말고도 주변 아이들을 맞아서 교육시킬 수밖에 없던 부분이 있어요. 생각보다 빨리 이뤄졌죠. 그만큼 준비가 소홀해 시행착오도 있었지만, 공동체에서 태어난 아이들을 합해서 초등학교 과정이 15명, 중고등학교 과정이 7명 정도가 있습니다.

생각보다 더딘 것은, 공동체에 살면서 기반을 마련할 수 있는 대장간, 목공실, 약초 텃밭 등이에요. 지금까지 계속 마련하고 있지만 생각보다 더디게 진행되고 있어요.

공동체에서 자란 맏이가 중학교 1학년입니다. 한 세대가 지나봐야 공동체 실험의 성패를 얘기할 수 있다고 하셨는데, 앞으로 15년 어떻게 확신하고 계신지요.

도시사회가 현재의 교육 체계와 경제 제도를 갖고, 물질자원에 100% 의존하는 상황이 계속 된다면 오래 버티기 힘들 것 같아요. 이런 비관적인 전망에서 비롯된 건데, 앞으로 점점 더 많은 이들이 위기에서 벗어나려고, 자각이나 재난 등을 통해 도시에서 탈출할 거예요. 이 사람들을 맞이하기 위한 여러 삶터들이 여기저기 빨리 마련돼야 할 거에요. 그런 곳의 하나로 변산 공동체가 앞으로 꽤 소중한 몫을 할 텐데, 어떤 면에서는 힘에 겨운 몫을 감당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최근에 한 제안을 받았어요. 도시에서 다른 건 팔게 없어서 자기 몸을 파는 사람들이 있고, 여자나 남자나 자기 몸을 파는 형태는 비슷한데 여자는 더 어려운 위치에 있잖아요. 그러다가 아버지가 누군지 모르고 태어나는 아이들이 있는데, 도시에서 아이들이 잘 자랄 가능성이 없다고 해서 그 아이들을 데리고 변산 공동체로 들어와 함께 살길이 없겠느냐는. 변산 공동체 같은 곳이 가장 아이들이 행복하게 자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은 들어요. 변산 공동체 품성이 좋고 너그러워서가 아니고 자연이 그 아이들을 감싸줄 수 있고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이라.

앞으로는 장애가 있거나 연로하신 어르신들도 아이들과 함께 하면서 공동체가 이뤄졌으면 좋겠어요. 한두 군데가 아니라 많이 생겨나길 바라는데, 어느 한 곳이라도 ‘이렇게 사는 것도 행복한 삶일 수 있구나’ 하는 본보기가 돼야 (공동체가) 확산될 수 있다고 생각돼요. 앞으로 조금 더 공동체가 활성화되고 활성화돼야죠. (제안은 받아들이셨어요?) 부모와 아이들 들어와서 함께 살자고 얘기한 상태입니다.

변산 공동체의 ‘옛 세상 만들기 작업’은 현재 어떻게 진행이 되고 있는지요.

저는 인류의 희망이, 생산 공동체, 농어촌 같은 기초생산공동체에 있다고 봅니다. ‘옛 세상 만들기’라면 고대 노예제 사회로 돌아가자, 봉건제로 돌아가자, 하루 종일 뛰어다녀도 사냥감 없는 원시공동체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닙니다. 인류가 오늘날까지 현 세상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피와 땀을 흘렸어요. 그러면서 노예제나 신분제 사회도 폐지했고, 지금은 임금노예제 사회에서 벗어나야할 즈음이에요. 우리는 모든 족쇄를 피나는 투쟁을 통해, 올곧게 살려는 사람들이 민주․자유․평등의 재단에 흘린 피로 이만큼 평등한 인간관계를 유지하게 됐어요.

(‘옛 세상 만들기’는) 과거의 족쇄를 벗어던지고 생명 공동체로 돌아가자는 거예요. 옛날 신분제 같은 게 아니고요. 미래 세상이 과거 세상을 딛고 가기는 하되, 지옥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평등한 세상으로 가자는 거니까, 이 길만이 지속가능한 미래를 열어가는 길이라고 봅니다. 

함께 살아가는 것, 다른 삶이 있다는 것

글을 보자면, 행복이 뚝뚝 묻어납니다.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행복은 어떤 것인가요.

그전에 상품경제사회가 아니더라도, 시골 사람들이 화폐라는 것을 모르고, 물물교환 형태로 부족한 것을 바꿔서 살아도 행복한 나날이 많았습니다. 외부에서 총칼 들고 오는 사람들이 쑥대밭으로 만들기까지 나름 안정되고 행복했었죠. 이런 삶이 가능한 세계가 와야 해요. 화폐 없이도 살 수 있는 사회가 와야 하고 올 수 있습니다.

화폐는 국제든 국가든, 늘 소수 손에 집중해서 돌 수밖에 없어요. 돈이 행복을 가늠하는 세상에서는 돈이 가장 많은 사람이 행복한 사람으로 여겨지고, 돈으로 만일 행복을 살 수 있다면 재벌들은 자손 수만 대에 걸쳐 살 수 있는 행복을 쌓아놨다고 볼 수 있겠으나, 칠순 가까운 한 재벌 회장이 사는 모습을 보세요. 걸핏하면 법정에 끌려가고, 참인지 거짓인지 몰라도, 범법행위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 이런 행위를 하면서 국민 앞에 부끄러움을 당하는 게 이분들의 행복한 삶의 대가인가. 뭔가 쓰인 거죠. 화폐가 그 사람들을 불행의 구렁텅이에 몰아넣고 있는데, 이분들은 모를 거예요.

“돈을 많이 쌓아놓으면 마음이 놓이지 않겠느냐는 터무니없는 미신에 사로잡힌 사람들을 보는데, 나는 여태껏 돈 많은 사람 치고 발 뻗고 편히 잠드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이 세상이 아무도 마음 놓고 살 수 없는 세상으로 바뀐 것은 돈에 대한 집착 때문이다. 돈과 범죄는 한 배에서 태어난 쌍둥이라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니다. 누구도 돈 때문에 설움 받지 않는 세상-이것도 마음 놓고 살 수 있는 세상의 한 조건이다.”(pp.118~119)

며칠 전 만난 택시기사 아저씨는 서울이 전쟁터라고 하시더군요. 그 말 백배 공감했고요. 지금-여기는 타인의 고통에 무덤덤합니다. 먹고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서로 다독이기를 포기하고 제 앞가림만 하겠다고 발버둥 치고요. 지금 교육이 진짜 교육이 아니라서 생긴 문제 아닐까요.

사람은 다른 생명체와 달리 살 길을 유전정보를 통해 대물려 받는 게 아닙니다. 교육을 받지 않으면 살 길이 없습니다. 거미, 개미, 벌 등은 누가 집 짓는 법을 알려주지 않아도 태어나면서 집 짓는 능력을 타고 나지만, 사람은 그렇지 않지요. 교육은 인간으로 태어난 살아남기 위해 꼭 필요한데, 지금 교육의 이름으로 행하는 것은 교육이 아닙니다. 스스로 앞가림하고 오순도순 사는 게 사람인데, 지금 교육은 궁극 목표가 빠져 있어요. 집단자살이나 학살로 몰아넣는 끔찍한 범죄행위입니다.

그런데 부모는 사랑의 이름으로, 교육 관료나 교사는 교육의 이름으로, 아이들 집단학살의 하수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부모나 교사의 잘못이 아니라, 교육제도에 잘못이 있어요.

교육혁명이 일어나야 합니다. 아이들을 지금처럼 12시간 좀비처럼 책상에서 붙들어 앉아 손발 꼼짝 못하고 머리만 굴리게 하는 건 아이들을 살아있는 채로 처형하는 것과 똑같아요. 사람은 몸을 놀려야 입안에 들어오는 음식을 마련할 수 있어요. 머리를 굴려서 마련되는 건 아닙니다. 아이들을 손발이나 몸을 놀리지 못하게 꽁꽁 묶어 놓는다면 인류가 살아날 길이 없습니다. 아이들을 놀려야 나라가, 인류가 삽니다. 그건 아이들이 뛰어놀아야 한다는 뜻이에요. 교육제도가 완전히 혁명적으로 뒤바뀌지 않으면 삶은 없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도시사회는 결국 죽음의 사회”라고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도시인 모두가 도시적 삶을 내던질 수는 없습니다. 당장 귀농은 아니더라도 선생님 뜻에 동참하는 사람들이 도시에서는 어떤 것을 하면 좋을까요.

얼마 전 ‘좋은 교사 모임’에 가서 비슷한 질문을 받았습니다. 대안교육만 살길은 아니고, 제도교육도 교사와 학부모가 연대를 하면 현재의 교육제도를 바꿀 수 있고 실제 아이들을 살릴 수 있다고 얘기했어요. 이를 테면 아이들을 책상머리에 묶어두지 마라, 아이들이 도서관에서 읽고 싶은 책을 읽고 진짜 공부하고 싶은 것을 공부하는 시간을 최대한 확충해라. 어떤 책을 보다가 재미없으면 내던지고, 어떤 책을 붙들고 몰두하면 자신도 모르게 자율성을 보장하는 정보의 접근을 하게 돼요. 그게 아이를 살리는 길이기도 합니다. 수업시간을 단축하고 자율적으로 선택해서 공부할 수 있는 도서관 운동은 도시에서 벌릴 만한 일이기도 합니다.

이것은 교사와 학부모가 연대해야 가능합니다. 교육 관료나 정권 담당자가 무서워하는 사람은 학부모에요. 교사는 그런 학부모와 끊임없이 연대해서 아이를 살리는 길을 찾고, 학교에서 아이들의 몸과 손발을 놀릴 수 있는 길도 찾아야 합니다. 풍물이나 탈춤, 밴드부를 조직해서 아이들이 경쟁보다 도와가면서 조화롭게 살 수 있는 길을 마련해주고, 학교 운동장엔 체육시설만 있는데 절반을 갈라서, 그게 안 되면 화단이라도, 텃밭을 마련해서 김매고 씨 뿌리는 것을 함께 할 수 있으면 좋습니다.

주말이나 휴일에는 한 마을에서 스무 가구만 연대하면 아이들이 자연 속으로 나갈 수 있어요. 우리나라는 도시에서 30분만 나가면 자연을 만날 수 있는 복 받은 땅이에요. 스무 가구 중에 주말에 한 가구의 부모만 놀아주면 3~4달에 한 번이지만, 아이들은 주말마다 자연과 접할 수 있어요. 그렇게 자연에서 자연공동체를 만날 수 있는 길을 마련해주자는 거죠.

우리나라는 70%가 산지라 물질자원으로 보면 세계 10위권 나라에요. 산에 교육공간을 마련할 수도 있어요. 아이들을 산에 풀어놓을 수도 있고, 3면이 바다니 바다에 풀어놓을 수도 있고. 조금 나이가 더 들고 힘이 넘치는 아이가 되면 시골에 가서 한달 동안 일손을 돕도록 할 수도 있어요. 과로한 노동이 아니면 아이들도 즐거워합니다. 끊임없이 자연과 가까이 할 수 있는 징검다리 놓아주는 길이 열릴 수 있습니다. 억지로 귀농하거나 자연과 가까워질 것을 강요 않아도 아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노는 것을 좋아해서 자연스럽게 문만 열어주면 됩니다. 의식을 일깨운 부모와 교사들이 할 수 있는 일이고 반드시 해야 할 일이에요.

개인이 지배세력이 강요하는 획일적인 삶 외에 다른 삶의 이야기에 자신을 밀어 넣는 일도 중요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한 예로 삼척에 주순영 선생님이라고 계세요.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www.kulssugi.or.kr) 사무총장이신데, 이 분이 아이들과 교사가 함께 하는 삶을 가꾸는 글쓰기를 진행하세요. 이걸 확장해서 학부모도 같이 쓰는 작업도 하셨어요.(『부모와 함께 쓴 모둠 일기』). 부모처럼 아이를 아끼는 교사가 아이 부모와 소식을 주고받고, 부모도 자발적으로 모둠 일기를 쓰면서 학교에서 아이가 뭘 배우는지 잘 알고, 교사는 부모가 집에서 아이들과 어떻게 놀고 아이들 소망이 무엇인지 알고, 그렇게 신뢰관계가 굳어지고 참교육이 가능해집니다.

아이들과 선생뿐 아니라 부모도 참여하는 가운데, 교육혁명이 조그만 부분에서부터 이어나는 것을 봅니다. 이런 운동이 확산돼야 합니다. 아이들을 죽음의 길로 몰아넣으려는 교육 관료들이 아무리 우리 아이들을 학대해도, 교사와 학부모가 연대해서 막아내면 그 사람들도 무리한 일을 할 수 없을 겁니다. 이런 길도 반드시 열려야 하고요.

속도를 늦춰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사실 삶이 올림픽도 아닌데, 삶 자체를 올림픽으로, 경쟁으로 몰아넣는 미친 속도가 아닌가 싶어요. (웃음) 자연의 속도로 변속하면 어떤 즐거움과 행복이 있는지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공동체에서 살면서 느끼는 게 있어요. 사람은 대개 타율적인 통제에서 벗어나기 힘들어요. 특히 도시에선 타율적인 통제에서 삶이 이뤄지고 거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입니다. 9시 출근, 6시 퇴근하고, 시간 단위로 타율적으로 강제되고. 이런 삶 속에서 살던 사람들이 귀농하는데, 한 일 년 농사짓고 살면 다시는 도시로 돌아가지 않아요. 변산 공동체에서도, 따로 독립적으로 농사짓거나 자율적으로 농사지을지언정 도시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타율에 의해 강제되는 임금노동, 노예노동에서 벗어나 자기가치실현노동으로 바뀌면, 한 여름에도 시원할 때 일해야 하니까 5시에 일을 시작해서 해 질 때까지 일하면 피로한 줄 몰라요. 그런데 강제노동이 되면 짧은 시간을 노동해도 자기실현을 위한 노동이 아니니까 굉장히 불행한 의식을 심어주게 돼요. 인간은 노동을 통해 사람 모습을 갖추게 되고, 노동이 자신의 가치를 실현하는 일이 돼야 하니까 노동의 개념이 바뀌어야 하고요. 전체로서는 이 세상이 바뀌어야 합니다. 그것도 빨리, 그러지 않고 내일이면 늦을지 모릅니다.

“속도를 늦추어야 한다. 두 발로 걷고 작은 손으로 일해서 사는 것이 사람의 본디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만일 빨리 달려야 살아남을 수 있었다면 사람은 두 발로 걷지 않고 네 굽으로 뛰는 모습으로 태어났을 것이다. 멀리 훨훨 날아다녀야 더 잘 살 수 있었다면 날개를 달고 알에서 깨어났을 것이다. 사람의 몸이 왜 이렇게 빚어졌는지, 왜 스스로를 이렇게 가꾸어왔는지 곰곰 생각해볼 때가 되었다.”(『자연의 밥상에 둘러앉다』, p.126)

고마움 느끼고 살아가기

저는 현재 커피를 만드는 사람입니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커피를 하고 나서야 한 끼 밥상을 위해 동원된 우주에 대해 고마움을 절감하고 있습니다. 땅부터 햇빛과 바람, 비, 그리고 농부의 수고까지. 직접 수고로움을 행해주시는 입장이신데...

저는 그런 생각이 들어요. 뭔가 더 큰 기운들이 있어서 우릴 살리고 있는 거지, 우리가 마음대로 선택해서 사는 것은 아닙니다. 우선 제가 목숨 붙이고 사는데, 목으로 드나드는 들숨날숨이, 곧 목숨이고 바람입니다. 이런 대자연의 큰 기운들이 내게 갖는 의미가 무엇이냐, 자주 생각해요. 내가 삶을 선택한다고 오랫동안 생각해왔지만, 이젠 그렇지 않아요.

바람이 없으면 나는 5분도 안돼서 목숨을 잃을 겁니다. 그런 점에선 자율성이나 자유가 얼마나 자연 의존적인지 생각하게 됩니다. 저를 둘러싼 생명공동체의 일원들이 저라는 도구를 빌어 행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자발적 가난의 즐거움 같은 게 있는 것 같습니다. 강요된 가난이 아닌, 기성 사회나 권력이 주입한 가치가 아닌 존재의 주인으로서 선택한 가치라서 느끼는 그런. 그것이 진짜 자유인이 아닐까 싶고요. 내 삶의 주인이 되는, 자발적 가난을 선택하고 살아가는 얘기도 좀 더 들려주신다면.

제가 즐겨하는 얘기인데, 변산 공동체의 앞뒷산에는 도토리가 나는 상수리나무가 많아요. 이게 굵어 몇 십 년이 자라면 수많은 도토리를 떨어트리는데, 상수리나무 소망은 단순합니다. 자기가 죽을 즈음, 한 그루의 상수리나무가 자라 대를 잇기를 바라죠. 온산을 덮기 위해서가 아니고. 하나의 도토리가 상수리나무로 자라는 대신, 수많은 도토리알은 땅 속에 있다가 지렁이나 다람쥐 밥이 되기도 합니다.

그렇듯 모든 생명공동체 일원이 볍씨 한 알을 떨어트리면 수 천 수 억 알이 생기고 낳지만, 그 소망은 단순해요. 자기 대를 이은 튼튼한 후손 부부가 나오길. 그들이 수많은 열매와 알을 떨어트리는 건 나눔을 위해서입니다. 진정한 만남이 어디서 이뤄지냐면, 먹고 먹히는 밥통에서 이뤄져요.

불교식으로 말하자면 생체보시를 해서. 사람은 먹여 살림으로써 생명공동체가 살 수 있다고 봅니다. 인간이 다른 생명체들의 생체보시를 받으면서 생명계 전체를 위해 뭘 하고 있느냐, 자기를 어떤 방식으로 내놓을 수 있느냐, 현재 도시사회는 받기만 하고 되돌릴 줄 모르는 삶이라, 문제가 큽니다.

가난은 목숨을 유지할 만큼만 자기 것으로 남기고 나눌 수밖에 없는 생명공동체의 원리랄 까요. 우리는 이런 기본질서를 어기지 않고 살아가야겠죠. 생명공동체의 일원이 돼서 다 같이 살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소비를 해야 합니다. 강제된 노동이 아니고 자기실현을 위한 노동이 되고 낭비 없이 실제로 우리 삶에 필요한 것만 누려야 하고요. 그것을 가난이든 검약이라 칭하든, 낭비를 하지 않는 것, 낭비하지 않는 삶이 가난한 삶이라고 볼 수도 있겠네요.

“가난을 기리자는 뜻은 아니다. 그동안 있는 사람들 덕에 없이나마 살아남았으니 모름지기 가난한 사람은 모두 잘사는 사람 앞에 머리를 조아리자는 뜻은 더더구나 아니다. 실제로 꼼꼼히 따져본다면, 부자가 베푸는 생색이 듬뿍 실린 시혜보다 가난한 사람이 자기도 몰래 베푸는 생색 안 나는 이웃 사랑이 더 크다. 부자들의 식탁에 오르는 산해진미는 다 어디에서 온 것인가? 가난한 어부가 한겨울에 풍랑을 무릅쓰거나 깊은 물속으로 자맥질하지 않으면 생길 수 없는 것도 있고, 오뉴월 땡볕에 벽돌처럼 살이 익는 걸 참아가며 허리가 부러지도록 가꾸어내지 않으면 생길 수 없는 것도 있다.”(『흙을 밟으며 살다』, p.80)


밥상 공동체라는 말이 참 듣기 좋았습니다. 자연의 밥상에 둘러앉아 도란도란 서로를 느끼고 감응하는 공동체.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얘기해주고 싶으세요?

밥상공동체의 즐거움은, ‘민족의학연구원’이 꾸리고 있는 ‘문턱 없는 밥집’의 점심을 예로 들면 좋겠네요. 도시에서 가장 건강을 해치기 쉬운 일을 맡고 있는 분들이 가난한 분들입니다. 가장 허드렛일을 하시니, 영양실조에 걸리기 쉽고 건강한 음식을 제일 먼저 먹어야할 필요가 있죠. 그분들이 도시에서 유일하게 몸을 놀려 일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의식주를 대주고 있는 분들입니다. 이분들을 살려야 나라가 건강해져요.

그러나 그분들이 실제로는 유기농음식을 먹을 형편이 안 되고, 그렇다면 유기농 음식은 부자들만 누려야 하느냐 이거죠. 밥상공동체는 너나없이, 가난한 사람이나 넉넉한 사람이나 함께 즐길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합니다. 우리의 위는 평등하거든요. 누구나 그것을 느낄 수 있는 길이 없을까 생각하다가 문턱 없는 밥집을 떠올렸어요. 처음에는 낯설었을 거예요. 우리나라에서 처음 있는 일이고, 고춧가루 하나 남기지 말라고 해서. (웃음) 그것 때문에 망설이는 사람도 봤어요. 처음엔 그렇게 저항감이 있었던 사람도 지금은 100명 이상이 모여 즐겁게 먹고 깨끗하게 밥그릇을 비워요. 그게 새 밥그릇인줄 알고 들고 가는 모습도 봤으니까. (웃음)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말이 있죠. 나쁜 물 들기가 더 쉽다는 말인데, 이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진 않아요. 좋은 것도 나쁜 것 못지않게 크고 넓은 영향을 미칠 수가 있습니다. 누구나 평등하게 즐길 수 있는, 이런 밥상공동체가 널리 확산되길 바라고요. 밥상에서 누리는 민주주의가 가장 직접적이고 소중합니다.

농산물, 즉 우리가 먹는 먹을거리는 농사짓는 사람의 마음가짐이나 성품이 가장 중요하지 않나 싶습니다. 나쁜 마음으로 기른 농산물은 질기고 맛도 없고요.

농심은 천심이라고 했습니다. 농사꾼은 기본적으로, 모든 농산물은 그대로 두면 썩으니까 다 나눠야 한다는 생각을 지니고 있어요. 우리 공동체 식구들은 스스로 행복할 길을 찾아 온 사람들인데, 어떤 면에선 잘못하면 폐쇄적이고 선민의식을 가질 수도 있어요. 사실 이 세상이 우리 공동체보다 너그럽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은 사기꾼, 강도 등 모든 사람을 끌어안고 살고 있잖아요.

반면 우리 공동체는 자기가 선택한 사람들하고만 살잖아요. 우리는 대단히 행복한 집단이고 그만큼 갈등과 모순이 적지만, 세상은 훨씬 더 큰 갈등과 모순을 안고 굴러가고 있어요. 그런 만큼 세상에서 배워야지, 우리가 세상을 가르치려는 생각은 안 되는 거죠. 동시에 세상의 슬픔과 아픔, 불의에 대해서 같이 아파하고 분노해야지, 등 돌리려고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지난해부터 보리출판사 대표를 겸임하시면서 월화수 서울에서 생활하시잖아요. 어떠세요?

많이 혼란스러워요. 시골에선 똥오줌을 자연에 되돌릴 수 있는데, 도시에 오니까 그게 안 되고, 물에 씻어서 버려야 하잖아요. 그래서 똥은 별 수 없이 물로 씻어 내릴 수밖에 없는데, 오줌은 오래 묵힌 뒤 내려요. 그러면 도시 사람들이 눈을 찡그려요. 냄새 난다고. (웃음) 아, 도시사회에서 죄를 짓지 않겠다고 필사적으로 노력해도, 그 구조 때문에 죄를 더 짓고 살 수 밖에 없구나 하는 것을 느껴요.

보리출판사 대표라는 공식적인 직위를 받아들인 건, 그 나름의 뜻이 있습니다. 교육을 통해 우리 아이들을 살리자. 자연으로 가는 징검다리를 놓기 위해서도. 가장 밑바닥에서 살아남고자 하는 사람들을 테러리스트로 몰아서 죽이는 끔찍한 일이 다시는 벌어져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그런 세상은 바뀌어야 하고요. 그러기 위해선 도움이 되는 책들을 꾸준히 내야 합니다.

평화라는 것이, 웃음을 짓고, 너 좋고 나 좋다고 해서 오는 게 아니에요. 정말 전쟁광과 온몸으로 맞설 때만이 평화가 옵니다. 실재 싸울 생각이고요. 자신들이 어떤 범죄를 저지르는지 모르는 평범한 악의 얼굴을 한 사람들, 그것을 부추기는 사람들을 상대로 힘이 되는 한 싸우려고 합니다.

곧, 『역사는 한 번도 나를 빗겨가지 않았다』는 자서전을 내신 비전향 장기수 허영철 선생님의 만화책이 나오고, 현재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이 불편해할 책들도 낼 예정입니다. 그런 점에서 김용철 변호사가 쓴 『삼성을 생각한다』가 귀감이 됩니다.

민족의학연구원, 문턱 없는 밥집, 기분 좋은 가게 등 공동체의 가치를 전파하는 일에도 소홀함이 없으신 듯한데, 각각 소개를 해주신다면.

보리를 아끼는 많은 마음씨 좋은 사마리아인들이 있습니다. 변산 공동체도 그들의 도움을 받고 있는데, 공동체에서 이뤄지는 모든 교육은 무상입니다. 사실 우리 교육의 옛 전통이 그랬어요. 특수한 집단, 국가행정을 맡는 관료 양성이나 장사속으로 머리를 굴리는 사람을 위한 특수교육기관은 돈 받고 운영됐지만, 인간을 살리고 인류 생명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는데 필요한 교육은 수십만 년 동안 무상이었어요. 무상교육 전통은 그대로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해서 변산에서는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다만 자본주의 세상 한 가운데서 이뤄지는 일이라 기본적으로 재원이 필요한데, 그 재원을 마련해주는 애독자들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또 지금 우리에겐 병원 문턱이 참 높지요. 첨단의료장비랍시고 없는 사람들을 소외시키기도 하고. 면소재지의 보건소에도 잘 못 가시는 시골 어르신들이 계세요. 이분들을 치료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첨단 장비나 설비가 아니고, 손발을 주물러 드리고 뜸․침으로 치료를 해 드리는 거에요.

그런데 그런 분들을 위한 기본책자가 없습니다. 그래서 민족의학연구원에서 낸 책이 『손 주물러 병 고치기』 『발 주물러 병 고치기』 『약 안 쓰고 병 고치기』와 같은 것이었고, 앞으로 ‘몸 주물러 병 고치기’라든지 자가 치료를 할 수 있는 책을 낼 겁니다. 곁들여서 ‘동의본처도감’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4년 후면 동의보감이 나온 지 400주년이 되는데, 국가 단위에서 의료에 관련된 책을 집대성 한 적이 없는데, 이걸 한 번 해보려고 해요. 민족의학연구원은 그래서 설립됐습니다.

‘문턱 없는 밥집’이나 ‘기본 좋은 가게’는 도시 사람들이 나누고 모자라는 것을 보충할 수 있는 것을 찾아보자고 해서 설립됐어요. 나라에서 해야 할 일인데, 나라가 안 하니까, 소수가 모여서 하는 것뿐이에요.


변산 공동체와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계신 분들도 있을 듯합니다. 그분들께 어떤 말씀을 해주고 싶으세요.

아, 언제든지 최소한 3박4일로 낮엔 일하고 밤에는 막걸리를 마실 각오가 돼 있는 분은 작업복 한 벌 챙겨서 그냥 오시면 됩니다. 같이 일하고 농사지은 것을 나눠먹으면서 자기 몸이, 마음가짐이 농사일에 맞는지를 사흘이든, 일주일이든, 한 달이든 지내면서, 맞으면 같이 있고, 그렇지 않으면 홀가분하게 돌아갈 수 있는 것이 우리 변산 공동체입니다. 그러니까, 몸만 오시면 됩니다. 다만 떠날 때 돌아갈 교통비만 갖고 오시면 되고요.

P.S... 서툰 질문과 대응에도, 지긋이 말씀 들어주시면서 너른 노장의 품으로 조곤조곤 답변해주시는 윤구병 선생님이 참 고마웠습니다. 어떻게든 버티고 견디는 오늘 하루.

생각합니다. 사는 게 고맙고 경이로운 일이구나. 오늘 하루 먹을거리를 비롯해 햇살님과 바람님, 비님이 감싸준 나의 우주. 뭣보다 커피를 만드는 아직 철부지 커피지망생이 품고 있는,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이 말씀도 함께 되씹습니다.

“우리는 아침에 일어나면 탁자에 앉아 남아메리카 사람들이 수확하는 커피를 마시거나 중국 사람들이 재배한 차를 마시거나 또는 서아프리카 사람들이 재배한 코코아를 마신다. 우리는 일터로 나가기 전에 벌써 세계의 절반이 넘는 사람들에게 신세를 지고 있다.”

고맙습니다. 나를, 우주를 지탱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제야 조금씩 깨닫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이 말씀. “도시에 남아 있기 바라는 젊은이들에게 다시 한 번 묻고 싶다. ‘왜 젊은 당신들이 몸 놀려 나이 든 우리를 먹여 살리지 않고, 나이 든 우리가 힘겹게 농사지어 당신들을 먹여 살려야 하는가?’”(『흙을 밟으며 살다』, p.39)

도시내기인 제겐 참으로 뜨끔한 얘기지만, 내가 만드는 커피 한 잔, 내가 먹는 먹을거리 하나 같이 잇닿아 있는 우리의 세계를 생각하자면, 최소한 죄를 덜 짓는 방향으로 살아야겠구나, 다짐도 합니다. 그래, 실천해야지.

모든 것은 모든 것에 잇닿아있으며, 나는 사람뿐 아니라 다른 생명체로부터 받은 것이 더 많은 존재임을. “사람이 사람으로, 풍뎅이가 풍뎅이로 살 수 있는 건 전체의 생명체를 이어주는 그물망 속에서란다. 수십억 인구 가운데 생김이나 느낌이나 마음씀씀이가 판에 박은 듯 똑같은 사람이 하나도 없는 건 그렇게 해야 서로 주고받는 것이 있기 때문이야. 똑같다면 줄 것도 받을 것도 없어서 상호 교류는 일어나지 않아.”(『자연의 밥상에 둘러앉다』, p.51)

이글을 마무리할 즈음, 안타깝게도 『무소유』의 법정스님이 입적하셨습니다. 애도를 표하면서 깜짝 놀랐어요. 법정스님과 윤구병 선생님, 두 분이 건넨 말씀이나 철학이 아주 흡사했기 때문입니다. 법정스님은 지난 2008년 길상사에 이런 법문 구절을 남기셨습니다. “돌이켜 보니 한 일에 비해 받은 것이 너무 많습니다. 내가 ‘중 도둑질’을 하면서 너무 빚을 많이 졌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또 무소유에 대한 이 말씀.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 우리가 선택한 맑은 가난은 부보다 훨씬 값지고 고귀한 것이다.”

윤 선생님은 이런 말씀 남기셨죠. “사회가 총체적으로 연관되어 있다는 것,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의 도움이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것, 대부분의 사람은 평생을 사는 동안 준 것보다 받은 것이 늘 더 많다는 것 …… 이 소박하면서도 근본적인 깨우침이 바로 가난의 선물이라고 할 수 있다.”(『흙을 밟으며 살다』, p.80)

맑은 가난, 자발적 가난. 어떤 식으로든 탐욕을 부추길 수밖에 없는 도시사회에서 부자가 되겠다는 욕심, 그야말로 탐욕의 결정체가 아닐까요. 부자보다 ‘잘 사는’, 무엇이 행복한 삶인지 성찰할 수 있는 가르침을 주신 윤구병 선생님과 입적하신 법정스님께 다시 감사를 드립니다. 속도를 한참 더 늦춰야겠어요.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도시의 미친 속도에 어차피 맞추지 못하는 발걸음이었지만, 내 고유의 템포를 찾아봐야겠습니다.

아 템포(a tempo). ‘본래의 빠르기로’라는 뜻의 이탈리아어입니다. 인간 본디의 본래 속도와 생명 공동체가 지닌 각자의 속도로 아 템포.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스윙보이
알라븅 BB(아이러브 베이스볼)를 보고 있는데, 
이제는 여신의 지위에서 내려선 석류 눈탱이가 퉁퉁 부어있다. 
다크서클도 아닌 것이 눈두덩이가 장난 아니다. 엄청 울었나보다.

그래, 오늘이 막방(마지막 방송)이라더니,
울었구나. 어찌 울지 않을 수 있겠니.

그 모습에 짠했고,
그동안 야큐팬들에게 여신 군림하느라 고생 많았다.
그래 안녕, 석류... 태균이는 석류를 좋아해~

근데 그것보다, 심장이 터질 것 같은 진짜 이유는?
노떼가 유견승을 했다. 6연승!!! 
그 6연승 가운데,
나도 한게임 직관(직접관람)하면서 일조했다.

열하에서 돌아오는 길,
가장 큰 충격은 성흔이의 부상에 따른 부재 소식이었다.
그것은 곧 노떼의 가을야큐가 증발될지 모른다는 슬픔을 안겨줬으니...

그래서, 
기대 않고 노심초사 했건만, 스크랑 뚱산을 연이어 스윕하다니. 꺄오~
기적이다. 어찌 울지 않을 수 있겠니. 3년 연속 가을야큐가 보인다.
올해 3수째, 우승 함 가자. 92년부터 무려 18년. 너무 길었잖아!

미리, 고맙다, 노떼! 가을이 두렵지 않다. 이젠.  
특히 듣보잡이었으나 이제는 '와니(김수완)와 고니(이재곤)'로 재탄생한, 
우리 귀염둥이들.
아니, 뭣보다 뒤에서 묵묵히 노떼를 지탱하는 2할대 선수들을 위하여. 

띠바, 따랑한다, 노떼!!!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스윙보이
정철.
정철영어? 아니올시다.
직업은 공식적으로, 카피라이터. 정철카피의 대표.

그는 나를 고맙게도, '인간수컷'이 아닌 '남자사람'으로 지칭해 주셨다. ^^

그를 본 순간, '아저씨'라고 부르고 싶었는데, 
우리 (원)빈이가 '아저씨'의 기준을 심히 높여버린 탓에, (영화 <아저씨>)
굳이 말하자면, 정철 아저씨가 '그냥' 아저씨라면, 빈은 'TOP'아저씨라고나 할까.ㅋ


이너뷰를 하면서,
아저씨의 수염이 언밸런스하면서도 은근히 어울린다고 생각했는데.

그럼에도!
법치주의 강권하는 쥐쉐이(최근엔 무슨 '공정'까지 들먹인)의 임기 2년 반이 지나고,
아저씨의 삭털식이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을 가졌다. 추가 5년은 아, 재앙이지 않을까.

어쨌든,
가장 인상적인 것은 아무래도 3할. (이너뷰 마지막에 있다!)
야큐인으로서 나는 3할이 얼매나 어려운 것인지 안다.
(그런 면에서 우리 (이)돼호는 곧 '신'의 자리에 오를 것이다. 돼신!
더불어, 노떼의 우승기원을 해주시는 넉넉함에,
 좆선일보를 갈갈이 찢은 공로, 인정해주심에 캄솨~^^)

비루하고 지리멸렬한 생애를 버티고 견디고 있지만,
나는 2할 중반대 타자만 돼도 좋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렇게 나를 응원하고 있다. 부디.
 
아, 나도 아저씨처럼 캐발랄하게 나이 묵고 싶다,
라는 생각을 했다.

에라잇, 이왕 이리된 거, 매일 '불법'을 행하고 살테다.
걍, 삐뚤어질테닷. (으응? 이미 삐뚤어진 거 아녔어? ^^;)
 
지금, 너에게도 불법을 권한다!
불법을 상상하는 즐거움~

아참 조낸 사소한 건데,
아저씨가 연재하고 계신 매경의 칼럼에 쓰신 인터뷰 후기.
아마 나와 한 인터뷰 후기로 추정되는데,
혹 그렇다면, 팩트가 하나 잘못 됐다! 
( [세상 사는 이야기] 너 누구냐?)

오후 4시를 불법사전처럼 해석해달라고 한 것이 아니라,
월드컵 축구 였다. 월드컵 시즌이었거든. ^^
 
어쨌든,
지난 5월 캐발랄한 아저씨와 만났던 기록이다.

=======================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아는 사람. 그것을 구체적으로 얘기할 수 있는 사람. 나는 그런 사람, 일단 믿고 본다. 나중에야 어찌됐든. 그건 자신을 알고 있다는 얘기다. 생겨먹은 대로 자신을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혹은 자신을 향한 질문과 성찰을 끊임없이 하고 있을 가능성, 크다. 세상을 향한 더듬이가 곧추 서 있다는 얘기도 된다.

많은 사람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고 있다고 착각한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 생각보다 많지 않다.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무엇이 자신을 기쁘고 슬프게 하는지, 어떤 것에 감동받고 추하다고 생각하는지, 모르는 사람, 철철 넘친다. 테스트 해 봐라. 점심이든 저녁이든 어떤 식사가 좋겠느냐고 물어봐라. 물론 귀찮아서 그런 경우도 있지만, ‘아무거나’라는 답이 둥둥 떠다닌다.

취향. 그것은 꽤나 사소하지만, 중요한 문제다. 박상미는 『취향』에서 이렇게 말했다. “삶의 미세한 결들 속에 숨은 매력적이고 거추장스러운 문제.” 취향을 취미나 안목으로 여길 수도 있지만, 한 발 더 나아가자면 취향은, 사물을 차별적으로 보는 능력이다. 그래야 나에게 이로운 것임을 알 수 있고, 좋아하게 된다. 그건 자기 연마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안 된다. 

‘아름다운 별’이라고 한다. 의심해본 적 없는가. 별이 진짜 아름다운가. 왜 아름답지. 별이 아름답지 않은 사람도 있다. 아름다운 별은 당신의 진짜 생각이 아닐 수 있다. 세상이 주입한 것일 수 있다.

낙타가 그렇단다. 낙타는 주인이 주입해준 생각, 가리키는 방향에 따라 짐을 지고 걸어갈 뿐이란다. 주입된 생각, 세뇌된 생각을 자신의 것으로 믿는 것, 무지하기 때문이다. 사물을 차별적으로 바라볼 수도, 창의성을 가질 수도 없다. 상상이 막힌 뇌. 과격하게 말해서, 그냥 노예다.

그러니, 차라리 ‘불법을 찬양하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꽉 막힌 생각을 썩어문드러지게 놔두지 말고, 날개를 달아주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정철. 『불법 사전』(정철 지음|리더스북 펴냄)의 저자다.

그런데, 불법이라니, 이런 도발이 있나 싶다. ‘법치주의’, 이 나라의 가장 근엄하고 엄정한 국시 아니던가. 더구나 ‘법 지키지 않으면 엄단하겠다’고 엄포 놓는 이 경찰국가에서! 법치주의 표방하고선 민간인 사찰을 자행하는 만행(?)을 저지르긴 해도, 이 나라 대통령은 합법에 목매단 사람이 아니었던가 말이다.

이현령비현령식 법치주의인 건 세상이 다 알지만, 대놓고 ‘불법’을 이야기할 정도면, 혹시 힘 꽤나 있는 사람? 이루지 못할 천황제와 군국주의를 외치다 할복한 탐미주의의 대가, 미시마 유키오 정도?

미시마는 『부도덕 교육 강좌』를 통해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도덕을 배반하는 것의 즐거움에 대해 말했다. “남에게 폐를 끼치고 죽어라” “친구를 배신하라” “약자를 괴롭혀라” “수프는 소리 내서 먹어라” “여자에게 밥을 사라” 등등. 물론 그 도발적인 발언의 속내에는 이유가 있고, 위트와 역설이 있지만, 엄중한 도덕주의에 짓눌린 사람들에게 숨을 쉬게 해 준다.

어쨌든 소심한 대세는, ‘불법’이요, ‘부도덕’인가 보다. 대통령이 주야장천 부르짖는 합법이 더 이상 합법처럼 여겨지지 않는 지금 이 시절. 이왕이면 불법생각하면서 이 엄혹한 시절을 건너보자. 요즘 대세인 애플사의 모토는 ‘다르게 생각하라(Think Different)’이며, 역시 대세인 트위터의 모토는 ‘내일은 더 좋은 실수를 하자(Let’s make better mistakes tomorrow)’란다. 그게 다 불법을 조장하자는 말이다.


지난달 29일 서울 홍대부근의 한 카페, 26년차 ‘불법’ 카피라이터 정철을 만났다. 수염부터 불법이다. 월드컵 16강에 오르자 삭털식이 있었는데, 그는 왜 아직도! 그 불법 수염은 빠르면 963일(7월6일 기준, 누군가의 임기다.) 이후 없어질 수도 있고, 늦으면 글쎄, 거기에 5년을 더해야 하겠다. 헌법 개정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말이다. 혹시 그보다 더 길어지면, 그야말로 초대재앙이고. 아, 이러다 잡혀가면 어쩌지. 초라니 방정, 깨 방정은 여기까지.


저자 소개에 좋아하는 것을 나열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스스로 좋아하는 것을 아는 것, 당연한데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른다.

대개의 저가 소개는 이력이나 학력 위주로 돼 있는데, 재미도 없고, 그게 중요한 것도 아니잖나. (웃음) 사람을 아는 방법은 아닌 것 같다. 이력이나 학력 등을 통해 포장을 하는 거지. 내 일상이나 생각을 좀 더 들여다보게끔 좋아하는 것을 나열해보자고 그렇게 썼다. 사람들이 좀 다르다 해서 느낌은 괜찮다.

『불법사전』, 왜 ‘불법’인가.

좀 튈라고. (웃음) 앞선 책이 『내 머리 사용법』이었는데, 책 뒤에 ‘인생사전’이라는 짧은 사전이 있었다. 그걸 좀 더 구체화시켜서 재미있고 색다른 사전을 만들어 보자는 생각이 있었다. 또 책을 보면 알겠지만 평범한 발상을 전환시켜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해석과 파생어 등 여러 개념이 따라붙는다. 그 모든 합법적이고 질서정연한 것을 깨뜨리는 게 불법 아니겠나. 불법이란 단어가 나는 참 괜찮더라. 이게 무슨 사전이야 하다가, 이런 걸 불법이라 해도 괜찮겠다 싶었다. 

또 블로그(http://blog.yes24.com/cwjccwjc)에 내 생각을 적으면서 그런 불법 시리즈를 연재한 적이 있었다. 그것의 영향도 있었다. 이젠 불법이란 단어가 내 것이 된 것 같다. 다른 사람이 쓰면 ‘불법’이다. (웃음)

“불법이란 평범하고 일상적인 생각을 거부한다는 뜻입니다. 규격화된 반듯한 질서를 사양한다는 뜻입니다. 물론 저의 불법해석에 모든 사람이 공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불법생각들을 통해 당신이 세상을 다르게 보는 불법시각을 갖게 된다면, 저의 이번 작업은 나름대로 의미 있는 일로 기억될 것입니다.”(p.5)

한 인터넷 매체에 연재한 ‘불법생각’과 다른 건가.

다른 거다. 이번 것은 책을 위해서 쓴 것이 대부분이고, 중간 중간에 블로그에 올린 글도 있다. 책을 위해 큰 틀을 만들고 쓰기 시작한 거다.

불법단어가 120개, 정확하게는 119개다. 어떻게 추려졌고, 쓰는데 얼마나 걸렸나.

맨 먼저 추린 것은 인생에서 중요한, 울림이 있는 단어들이었다. 가족, 행복, 사랑 등을 한 번 정리하고 모기처럼 재밌게 풀 수 있는 단어를 정리했다. 그때그때 떠오는 것들도 넣었다. 재밌겠다 싶은 것을 풀어보고 단어 하나로만 해석되는 것이 아닌 것들.

그렇게 틀이 잡히면 써 나갔는데, 한 6개월 정도 걸린 것 같다. 처음에는 200개 정도였다. 하나씩 정리가 될 때마다 지우기도 하고, 쓰고 싶은 단어도 세트로 엮이지 않으면 포기하고.

그러면 책에 실리지 못한 단어들로 패자부활전이라도? (웃음)

같은 형식의 책을 내진 않을 거고 새로운 것을 찾아봐야지. 그것들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을 찾아서. 이 책은 뭐랄까. 세상에 이런 책은 없었을 것이다, 하는 자신감이 조금 있었다. 다음 책도 그래야 할 것 같다. 


‘네모’를 읽으면서, 이 책도 네모의 틀이 아닌 다른 형태로 만들고 싶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책도 ‘불법’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나.

그건 정말로 어려운 문제 같다. 일단 내 소관이 아니고, 책을 만드는 분이 있으니까. 나는 원고까지만 하는 거고. 만드는 분 영역은 다른 영역이고, 진열, 인쇄 등 여러 가지 걸리는 게 많았을 것이다. 

“그런데 사람이 태어나고, 이 세상에서 힘 좀 쓰면서 새로 만드는 모든 것들을 볼품없는 네모로 만들기 시작했다. 책도 네모, 달력도 네모, 담뱃갑도 네모, 영화도 네모, 집도 대문도 다 네모. 이른바 규격화라는 이름으로 자행되고 있는 이 네모 만들기를 그치지 않는 한, 사람들의 개성은 네모의 틀에 짓눌려 압사당하고 말 것이다.”(p.215)

책을 관통하는 테마가 ‘사랑’이라고 봤다. 기발함 뒤에 자리한 따뜻함은 사랑이었고, 120개 중에 유일하게 사랑만 2개다. 하느님의 질문은 단 하나, ‘사랑하며 살았는가?’라고도 했다. 우문이다. 사랑이 세계를 구원할 수 있을까. 

큰 틀에서 이 책을 관통하고 있는 것이 사랑일 수도 있겠지만, 내가 생각한 건 사람이다. 사람을 주제로 글을 쓴다는 생각하고 있고. 사람에게 중요한 것이 사랑이어서 사랑이 보였을 수도 있겠다. 나는 앞으로도 사람을 향해 글을 쓸 거고, 그 생각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 사랑도 크게 틀리진 않는데, 어쨌든 내가 주장하는 건 사람이다. (웃음)

(구체적으로 사람이라면 어떤?) 글을 읽으면 따뜻해지고, 행동 하나, 생각 하나도,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데 도움이 되는 생각을 던져주는 글을 쓰고 싶다. 사람 사는 세상. 맞다. 노무현 대통령의... 존경하는 분이고. 영향을 많이 받았을 것이다. 사람 사는 세상을 향한.

“(사랑1) 닫혀있는 성문을 여는 게임이 아니라
성문 앞에 서서 평생 보초를 서는 게임.
함락이나 정복이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사랑의 성분
사랑은 4%의 뇌와 96%의 가슴.
(사람이 평생 뇌의 4%만 사용하는 이유는 가슴으로 사랑하기 때문이다.”)(p.89)

이 책을 “서점을 꽉 채운 합법생각과 엄숙주의에 똥침을 놓는 책”으로 규정했다. 재밌고 다른 책을 쓰고 싶었던 것 같다.

재밌는 책으로 하고 싶었다. 그건, 웃기는 얘기가 아니라 다르니까 재밌다, 그렇게. 재밌는 책으로 가져가기 위해서는 고만고만한 내용이나 형식으로 고만고만한 얘기를 해선 안 되고, 책이란 이래야 된다는 고정관념을 던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즉, 엄숙주의에 반하는. 재미를 주는 요소를 고민했다. 말이나 글을 갖고 장난치거나 누구나 생각하는 것을 뒤집어서 생각하는 게 재미겠다 싶더라. 기존 책이나 작가와도 다른 것 같고. 

따뜻한 얘기를 해도 재밌게 할 수 있는 부분이 있으면 그렇게 했다. 꼬리를 무는 파생이 들어가는 작업 자체가 재밌었다. 내가 생각해도 신기하다. 이렇게 엮어지다니.


“‘아니오’는 부정이 아니라 새로운 생각”이라고 했다. 정철에게 상상력은 무엇인가.

상상력은 노는 것이다. 아이디어를 내고 새로운 생각을 골 싸매고 한답시고, 상상력이 나오는 것도 아니잖나. 뭔가 새로운 생각을 꺼내려면 즐거워야지, 숙제가 돼선 안 된다. 어떤 단어든 머리에서 노는 거다. 뭔가 떠오르는 거지. 아이디어, 상상력, 새로운 발상이 숙제하듯 스트레스를 받아선 곤란하다. 아주 작은 것부터 내가 뭔가 하나를 해 내면 자신감 같은 게 붙고, 이런 걸 상상하면 즐거워지는 토대가 마련된다. 쉽고 재밌는 것부터 접근해서 머리와 생각을 갖고 논다. 그런 개념으로 해야, 하나라도 이끌어 낼 수 있다.

“(고정관념) 고장관념.
즉 관념이 고장 난 상태,
관념이 고장 나 움직일 수 없는 상태,
관념을 고쳐줄 정비소마저
문을 닫은 상태를 말한다.
스스로 정비기술을 익히지 않으면 탈출할 수 없다.“(p.220)

누군가는 이 책을 통해 ‘생각의 힘을 키우는 방법을 얻었다’고 하더라. 최고의 상찬이 아닌가 싶던데...

생각하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이론 같은 건 없다. ‘발상법’과 같은 건 없다. 논리적으로 접근하고 공식으로 접근하면 누구나 할 수 있겠지. 그렇게 얘기한 건, 생각을 가지고 놀다가 만들어낸 결과를 모아낸 책을 보니까, 이런 생각을 했구나 하는 걸 보면서 새로운 것을 발견한 느낌을 받았을 것 같다. 거기서 생각의 힘을 발견했을 수도 잇겠다. 다양한 접근 방법을 알려줬다고 할까. 그런 것들이 어떤 이론서보다 머리를 더 말랑말랑 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다) ‘말하다’의 전치사 또는 접두사.
따라서 생각 없이 말하는 것은
인생문법에 어긋난다.
머리, 입, 손 중에 머리가 맨 위에
달려있는 건 먼저 생각하고 난 후에
말하고 행동하라는 뜻이다.”(p.63)

생각 없는 사람들이 많다. 1950년대의 반공정신과 1970년대의 개발․성공 개념으로 21세기를 살아가는 이들처럼... 평소 생각하는 힘을 어떻게 단련하나.

그런 질문을 많이 받는다. 발상의 전환을 위해 어떤 것을 하느냐. 두 가지 정도가 있다. 노하우 같은 건 아니고. (웃음)

첫 번째는 약간의 부지런함이 중요하다. 말인즉슨, 머리를 감다가 갑자기 무슨 생각이 난다고 치자. 머리를 감으면 머리카락만 깨끗해지는 게 아니고 손톱도 깨끗해지네. 아, 재밌겠다. 무슨 이야기든 할 수 있겠다. 이건 누구나 들 수 있는 생각인데, 수건으로 닦으면서 그 좋은 생각을 잊어버린다. 그래서 머리를 닦으면서 그걸 적어 놓거나 메모하는 그런 부지런함이 필요하다. 놔 버리느냐, 갖고 있느냐의 차이인데, 갖고 있으면 얘기하게 된다. 떠오르는 순간에 놔버리지 마라. 5년 후에 멋진 글이 될 수도 있다. (웃음)

또 하나는 약간의 끈기다. 예를 들면, 담배에 대한 아이디어가 100만 가지 있다면, 인류가 발견한 것은 만 가지일 것이다. 99만 가지에 얽힌 나머지 스토리가 있을 거고. 그래서 한두 개 발견은 어렵지 않은데, 발견 직전에 포기를 하는 거다. 안 떠올라, 이러면서. 그 시간에 조금만 더 끈기를 가지면 뭔가 하나라도 떠오른다. 그때까지 못 가는 거지. 이런 것들이 필요한 것 같다. 약간의 부지런함과 약간의 끈기.

『불법사전』은 다른 삶 혹은 다른 세계에 대한 가능성, 정답 없음도 말하고 있었다. 어떤 삶, 어떤 세계에 대해 꿈꾸고 있는가.

나이가 오십이 됐다. 그동안은 광고쟁이로 정신없이 살았다. 많이 바빴다. 뭣보다 내 생각과 내 얘기를 못하고 살았다. 남의 이야기만 만들어주면서 살았던 거다. 최근에 와서 인터넷 소통의 장이 열리고 블로그나 트위터 등 내 얘기의 장이 열리면서, 내 얘길 많이 해야겠다, 싶었다. 다른 사람과 똑같은 그릇이 아닌 나만의 경험과 생각을 넣어서. 카피를 하다 보니, 짧고 뒤집는 이런 그릇일 텐데, 그릇에 담긴 내용은 사람 사는 세상에 조금이라도 공감을 일으키고 싶다. 앞으로도 당분간은 그러고 싶다.

“세상에 정답이 하나뿐인 문제는 없다.
정답은 하나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을 뿐.”(p.35)

블로그나 트위터에 재미 들인 것 같다.

블로그(http://blog.yes24.com/cwjccwjc)는 좀 됐는데, 트위터(http://twitter.com/cwjccwjc)는 초보다. 트위터는 아직 잘 모르겠다. 경험하는 중이다. 블로그는 방문자 수에 상관없이 연재하면 되는데, 누가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 얘기하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 댓글이 달리면 가능하면 답글을 달려고 노력한다.

블로그에 시리즈를 연재하면서 매일 하나 꼴로 포스팅 하려고 노력하니까, 그게 역이면 책이 되기도 하고. 블로그는 2년 정도 됐다. 머리 회전이 잘 될 때는 몇 개씩 써놓기도 하고, 안 떠오를 때 있으니까, 하루에 하나 꼴이지. 좀 일찍 출근하는 편인데, 6시부터 9시까지 조용하고, 팀원들도 출근 안 할 때라, 글 쓰는 시간으로 주로 활용한다. 그 시간이 능률적이다. 세 시간에 할 일 다 하고 나머지는 놀기도 하고. (웃음)

지금, 행복한가.

행복하다. 욕심과 미련을 절반으로 덜어내면 행복해지는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욕심과 미련에 치여서 실제로 갖고 있는 것을 못 본다. 책에도 썼지만, 자기의 욕심과 미련을 덜어내는 습관이 행복인 것 같다. 뭔가 지금보다 나아서가 아니라, 지금 그 자리에서 행복해지는 법. 물론 쉬운 건 아니지. (웃음) 
내가 법정스님처럼 무소유는 아니지만, (웃음)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것 정도는 알고 실천하려고 한다. 뭣보다 책에 쓴 대로 실천하려고 노력한다. 스스로 족쇄를 만든 거지. 내 자신을 다독거리고 그런 길을 만들어 버리는 효과가 있다.  

“(행복) 위를 한 번 볼 때 아래를 두 번 보는 것.
즉 욕심을 절반으로 덜어내는 것.
뒤를 한 번 볼 때 앞을 두 번 보는 것.
즉 미련을 절반으로 덜어내는 것.”(p.235)

학창시절에 두 개 중 하나였을 것 같다. (모)범생이었나, (양)아치였나.
굉장히 모범생이었다.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아니 대학 1학년 1학기까지. 전공을 잘못 선택했다. 경제학과에 갔는데, 실은 국어국문학과에 가고 싶었다. 형이 국문과였는데, 아들 둘이 있는데, 선비 집안도 아니고 왜 둘 다 국문과냐 그래서, 경제학을 택했다. 헌데 경제학이 수학이 그렇게 많은 줄 몰랐다. 그래서 1학년 2학기부터 놔 버렸다. (웃음) 딴 짓을 많이 했다. 모범생에서 벗어나는. 국문학과, 사학과, 신방과 등의 수업을 주로 듣고, 소설 쓴다고 처박혀 있고, 학교 내에서 문학상도 받고.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하다가 우연히 카피라이터 됐다. 카피는 모르겠는데, 라이터는 글 쓰는 거라서. 운 좋게 합격해서 첫 직업이 됐고, 지금까지 하게 된 거다. 

요즘 미쳐있는 건 뭔가.

대부분 그렇듯이 월드컵. 정확하게는 월드컵보다 박주영. 그 친구가 좋다. 그래서 축구가 좋고. 스포츠를 좋아한다. 야구는 타이거즈를 좋아하고. 그게 아니면 인터넷 서핑하고 글 보는 시간을 많이 갖는다. 계속 글을 쓰면서 책을 쓰기 위해서 공상이나 상상도 많이 하고. 퇴근 시간 되면 술 마시고. (웃음) 

“(미치다) 정신이 머리 밖으로 나가다.
정신이 나간 그 빈자리에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힘이 들어오다.

즉 제 정신으로는 생각할 수 없는 일을
해내고 마는 초인간적인 상태.
…내 머리가 돌처럼 굳었다면 좀 더 미쳐야 한다.
일에 미치든 사랑에 미치든.”(pp.18~19)

단문을 좋아하는 것 같다.

카피라이터는 문장을 요약압축하고 짧은 공간에 의미를 담는 훈련을 많이 한다. 내 생각을 전하는 것도 짧고 재밌으면서 울림 잇는 글을 좋아한다. 당분간은 짧은 글, 단문 위주로 글을 계속 쓸 것 같다. 하다 보면 다른 기회도 생기겠지. 요즘 한 경제지에 칼럼을 연재하면서, 약간 긴 수필도 쓸 기회도 생기고 있다. 당분간은, 내 캐릭터에 대해 사람들이 ‘아, 그래’ 할 때까지 단문에 포커스를 두고 글을 쓸 생각이다. 나이를 더 먹고 인생을 더 알게 되면 긴 글도 써볼 생각이다.


‘카피라이터로 살아가기’, 어떤가.

무지하게 재밌다. 예를 들면, 사람들은 직업적으로 약만 팔거나 집만 팔고 옷만 파는데, 카피라이터는 약 팔고 집 팔고 옷 팔고 다 할 수 있거든. 세상 모든 직업을 경험해볼 수 있는 직업이다. 지루할 틈이 없다. 늘 새로운 제품을 만나야 하고 어떻게 새롭게 얘기할까 고민한다. 가장 큰 매력이 새로움이다. 맨 앞에 서서 창조하는 직업이라 재밌고, 지루하지 않다. 가장 불행한 것은 정말 많은 카피를 쓰지만, 내 이름으로 된 건 하나도 없다는 거다. 광고의 이름, 광고주(회사)의 이름으로만. (웃음)

119개 단어 중 정철을 설명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단어는?

사람들이 재밌어 했던 것이 미치다 였는데, 나는 쓰면서 재밌었던 것이 낙엽이었다. 약간의 말장난일 수 있는데, 세트로 만들었더니 재밌더라. 희망이라는 코드로 엮었고. 그 단어가 재밌었고. 그렇게 발상 했다는 것, 통일감 있게 정리했다는 것. 그런 것들이 내 색깔을 잘 드러냈다고 생각한다.

“(낙엽) 나무에게 버림받아 힘없이 추락하는 생명. 그러나 추락하는 순간 자유를 얻어, 바람의 손을 잡고 새로운 세상으로 여행을 떠나는 화려한 부활, 추락 다음에 오는 단어가 절망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는 늦가을의 희망.

관련용어 : 1. 낙타 2. 낙지 3. 낙인 4. 낙서”(pp.352~353)

이번 월드컵 축구에 대한 정철식 불법생각은 뭔가. 꼭 한국팀 아니라도 된다.

그건, 개그맨한테 웃겨보라고 하는 것과 똑같다. (웃음) 책에서도 3할을 얘기했는데, 카피라이터가 3할 치면 잘 치는 거다. 유명한 카피라이터가 썼다고 해서 9할이나 10할이 되는 건 아니다. 그렇게 3할은 카피 쓸 때도 그렇지만, 인생에서도 마찬가지다. 낙심하고 있는데, 3할을 생각하면 아직 괜찮은 경우가 많다. 중요한 단어다. 3할. 야구 뿐 아니라, 인생에서도. 3할, 나를 응원하는 방법 중 하나일 수 있다.

[예스24 채널예스 기고원문]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스윙보이

격하게 개드립이나 일삼는 생애지만,
삶은 아주 가끔은 이런 선물도 해준다.


생애 첫 해외여행권 당첨이라니, 준수야!

노마드 고미숙과 떠나는 열하와 초원여행


그린비 출판사의 야심찬 시리즈, '작가가 사랑한 도시'.
그저 좋아서 책을 샀을 뿐인데, 이런 야심찬 선물까지.



평소 그린비 출판사를 흠모하여,
고전평론가 고미숙 선생님을 사모하여,
책의 출간을 알려준 '가늠끈'님의 성은에 힘입어,
열하의 초원을 품에 안는 영광까지. 
백수 100만 시대, 백수들에게 고함, “임꺽정을 만나라”
연애불능시대, 사랑탐구가 고미숙, ‘에로스 바이러스’를 뿌리다

역시, 착하게 살고 볼 일이다, 라고 주위에 씨부려보지만, 
아무도 믿지는 않고! ㅠ.ㅠ

지금 나는 떠남의 설렘에 심장이 때론 터질 듯 하도다. 
떠나기 전의 이 오르가슴에 교성을 지를 법도 하건만, 꾹꾹 참고 있다.

공항을 찾아가는 까닭은 내가 아닌 다른 존재가 되고자 하는 욕망 때문이 아닐까. 그러니 공항대합실에 서서 출발하는 항공편들의 목적지를 볼 때마다 그토록 심하게 가슴이 두근거리겠지. 망각, 망실, 혹은 망명을 향한 무의식적인 매혹. (…) 내가 아닌 다른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나 자신으로 돌아가야만 한다는 것. 공항의 우화는 이렇게 완성된다.

    — 김연수, 『여행할 권리』, 289쪽



뭔일이 나도, 하늘이 두쪽나는 일이 아니라면,
모쪼록, 내일부터 17일까지, 나를 찾지 마시라.
나는 그저 초원을 방랑하는 유목민일 뿐, 
휴대폰도, 인터넷도 없다. 나는 온전히 여행자일 것이다. 

염장 질러서 미안하다.
나도 아주 간혹 자랑질 쫌 해볼란다. 크하하. 
준수가 사랑한  열하의 초원!
후기? 또 염장질하긴 미안한데. 내키면 쓰고, 아니면 말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스윙보이

마리 여사!
얼마 전 만났던 한 양반은 저를 일컬어 ‘남자 사람’이라고 표현해 주더군요. 그 호칭을 보고선 안도의 한숨, 휴~. 인간 수컷 아닌, 남자 사람이라니. 뭔가 괜히 업그레이드라도 된 기분이었다고나 할까요. 특히나, 요즘 마리 여사의 이웃나라인 여기 한국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태들을 보아하자면, 에휴~ 일단 한숨부터 나옵니다.

인간수컷 잔혹기

하늘에서 이웃나라까지 파악하고 계실라나요. 가장 대표적인 경우라고 할까요. 강용석이라는 의원나리. 딴에는 후배들에게 격의 없이 뭔가를 전달해주고 싶었을지 모르나, 정신줄 놓고 아주 미친 게죠. 아니, 놓은 정신줄이 아니라 원래 그런 정신줄을 품고 사는 수컷이겠죠. 여자는 몸과 외모로 승부를 봐야 한다는 가식 없이 천진한(?) 발언을 보자면, 마리 여사의 말은 참으로 당연하게 들립니다. 인간 수컷은 필요 없어. 그 맥락이 다르긴 해도, 어쩜 저리 딱 맞아떨어질까요. 

강 의원(이라고 쓰고, 개나리라고 읽지요)의 성희롱성 발언. 그의 기찬 어록을 보자니, 그건 이 땅의 주류 남성 정치인이 지닌 단면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요. 개나리가 속한 당에선 이런 식의 ‘수컷질’이 한 두 번이 아니거든요. 어쩌면 열폭(열등감 폭발)일지도 모르죠. 왜곡될 수밖에 없었던 그들의 삐뚤어진 시선이 여성의 능력 앞에서 괜히 배알이 틀려선.

사실, 곳곳에서 터지는 성희롱, 성추행, 성폭력, 심하게는 살인까지 행하는 수컷들의 작태를 보자면, 아놔~ 마초인 저도 얼굴 빨개지는 걸 피할 수가 없습니다. 같은 수컷인데도 쪽 팔려서 원. 뭐, 저라고 거기서 자유롭겠습니까마는, 흠흠, 자꾸만 마리 여사의 그 말, 인간 수컷은 필요 없어, 가 자꾸 떠오르는 건 무슨 까닭입니까. ^^;

인간보다 나은 동물

괜히 딴 얘기부터 해서 죄송해요. 제목이 워낙 인상적이어서. 마리여사, 난 『인간 수컷은 필요 없어』를 이렇게 읽었어요. 어쩌면, 개나 고양이, 그러니까 인간 아닌 동물이 인간 동물보다 낫다! 그래서 그 동물과 함께 하는 사람, 참 대단하다!


마리 여사는 스스로를 이렇게 표현하셨다죠? 포용력이나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고, 말과 행동이 직선적이고 여유가 없으며, 감정조절도 잘 못하는데다, 인간을 이해하는 것이 부족한 사람.

제가 마리 여사를 만난 적이 없으니, 뭐라 말씀은 못 드리겠으나, 진짜 그랬을 거라는 혐의(!)가 있습니다. 바로 마리 여사도 인간 동물이니까요. 대부분 인간 동물이 그러하잖아요. 하하. 아, 저라고 빠져나갈 수 없습니다. 흙.ㅠ.ㅠ


그런데, 그런 여사가 변했다고 주위에서 이구동성을 했다죠? 말과 행동은 폭신한 쿠션처럼 사람을 살포시 감싸는 것 같고, 인상도 부드러워졌으며, 날카로운 눈빛도 선해졌다니.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긴 겁니까! 가장 흔히 할 수 있는 의심(?)은 바로 남자, 애인이 생겼다? 물론 당신은 그게 아니라고 하셨지요. 일곱 아이의 엄마가 됐을 뿐! 인간 아이가 아닌, 견묘 일곱의.

당신은 큰소리를 쳤습니다. “두 자릿수의 남자를 겪어보고 ‘내 인생에 남자는 필요 없다’는 결론을 얻었어.” 생의 끝까지 그 결론을 지켰을지는 모르겠으나,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겠죠. 책 읽는 내내, 당신의 모습을 상상하면 참 재밌더군요. 기억이 가진 순간부터 인간 아닌 동물과 함께 살아본 적이 없는 내겐, 그것은 신기하면서도 부럽고, 언젠가는 살아봄직한 모습이 아닐까 싶었다지요.

많은 사람들은 이런 말을 내뱉곤 하지요. “개, 돼지만도 못한...” “개나 고양이도 아니고, 인간이 인간다워야지...” 그런 류의 말을 들을 때마다, “지랄한다”고 속으로 말하지요. 개, 고양이, 소, 돼지... 모든 동물보다 못한 것이 원래 인간 아니었던가요. 인간다움? 글쎄, 그건 웃자고 하는 농담인 것 같고. 인간 동물이 다른 동물보다 낫다거나, 특히 달라야 할 그런 근거는 없는 것 같은데요. 만물의 영장? 하하, 그건 일종의 안간힘이죠. 스스로를 위문하기 위한. 안 그래요? 마리 여사.

약자와 함께 하는 마리여사

흔히, 우리는 ‘기른다’라고 표현하지요. 애완동물이든 반려동물이든. 하지만, 당신이 무리, 도리, 겐, 타냐, 소냐, 노라와 함께 하는 모습에서, ‘함께 산다’는 표현이 더 맞을 듯싶었어요. 당신의 입맛에 맞춰 훈련시키거나 가르치려는 모습도 없었죠. 그저 그들의 몸짓과 표정, 실존과 부재에 따라 울고 웃는 모습이라니요.

더구나, 대부분 그들은 지인이나 동물을 사고 파는 가게에서 입양된 것이 아닌, 버려지거나 병에 걸린 혹은 어쩔 수 없이 다른 둥지를 찾아야하는 약자들. 


나는 그것이 가장 인상 깊었어요. 약자를 거두는 마리 여사의 마음 씀씀이. 멀쩡한 것은 내 소관이 아니라는 듯. 하긴 당신은 그런 유전자를 타고 났는지도 몰라요. “길 가장자리의 무성한 잡초 속에서 “야옹, 야옹” 하고 가슴을 쥐어뜯는 것 같은 울음소리가 들려오면 완전 끝장이다. 무심히 지나치려고 하면 할수록 다리가 꿈쩍도 하지 않는다. 그래도 뿌리치고 걸어가면 반드시 물리학에서 배운 ‘작용, 반작용’의 법칙이 고개를 쳐든다.”(p.38)

또 하나, 유기된 개들의 가혹한 일생을 생각하자 어느새 눈물이 그칠 줄 모르고 흘러나왔다던 당신. 대부분의 인간 동물은 실컷 지 사랑만 퍼붓다, 유통기한이 지나면 폐기할 줄만 알았지, 그들의 삶과 마음 따윈 상관 않는다지요. 그래서 그것이 인간(동물)이기도 하고.

단언컨대, 우월한 유전자에요. 그런 유전자 덕분에 당신의 가족들은 당신을 주축으로 그렇게 멋진 앙상블을 보여줄 수 있었던 거겠죠. 인간이 아닌 동물과 함께 산다는 것. 그것이 얼마나 멋진 일인지, 당신을 통해 새삼 깨달았어요.

뭐랄까. 무리와 도리를 입양하게 됐을 때, 무리 혹은 도리가 무릎 위에 뛰어내리면서 당신의 얼굴을 응시한 그 순간. 그 맑은 녹색 눈동자에 대한 당신의 비유. “그 어떤 보석도 이보다 아름답지는 못해.”(p.47) 아, 그땐 정말이지, 그 무리인지, 도리인지가 보고 싶어, 세로토닌이 마구마구 형성될 정도였다니까요.


혹시, 고양이와 함께 산다면, 나도 언젠가 페리네 혹성에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공상까지 했다고요. 약 50억 년 전에 형성되어 고양이들이 살았던, 지구 생태계보다 앞서 발전을 해나갔다는. 함께 살진 않지만, 나도 어쩌다 그들의 눈빛과 그들의 행성에 대해 궁금한 적이 있었거든요. 저 녀석들은 분명 지구별 아닌 다른 별에서 왔을 거야, 하는 공상을 당신이 확인시켜주다니요. 그것도 이름까지 확실하게. 나도 그러니까, 당신에게 한 표. ‘고양이는 외계인들의 지구 정복을 위한 전략의 일부.’

문득 궁금해졌어요. 당신이 없는 지금. 당신과 함께 했던 견묘들은 어떻게 됐을까. 당신과 함께 저 구름의 저편에서 다시 알콩달콩 정을 나누며 사는 견묘도 있겠지만, 아직 남은 견묘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아, 맞아, 또 궁금한 거 하나. 거기선 고양이와 개 사이의 통역은 문제없겠죠?

겐은 어떤가요

참, 제가 가장 아팠던 것은 겐의 실종인데요. 노라가 대신 들어왔다고는 하나, 저는 무리와 도리에 다소 가렸던 겐이 가장 마음에 남았답니다. 그래서 걱정이었어요. 당신으로 인해 트라우마를 가까스로 극복한 겐이 인간 동물에게 다시 학대당한 것은 아닌지, 다른 트라우마를 쌓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지금, 당신은 잘 알고 있겠죠. 겐의 행방. 당신과 함께 있으리라고 생각하고픈 제게, 그런 우연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우연’이란, 하느님의 다른 이름이에요.”(p.251)

세 라비C’est la vie. 마리 여사에게도, 겐에게도, 무리와 도리에게도, 타냐와 소냐에게도, 노라에게도, 그것은 인생, 견생, 묘생. 세 가지 동물군의 생과 일상, 표정을 볼 수 있어서 고마웠습니다. 역시나, 인간 수컷 따위 필요 없었다는 마리 여사의 말, 동감할 만해요. 비록 나도 수컷이지만, 지금 정말 그 말이 딱 부러지게 맞아 떨어지네요.

'좋은' 남자 사람이 돼야지

참, 교육방송(EBS)의 한 강사가 군대를 ‘비하’했다는 죄목으로 방송에서 잘리고, 담당 프로듀서도 문책을 당했다는데, 그 발언을 보자니, 어안이 벙벙하더군요. 그녀는 강의에서 언어변화와 관련해 여자와 남자의 차이에 대한 지문내용을 설명하면서 이런 말을 했대요.

“남자들은 만날 자기가 군대 갔다 왔다고 뭐 해달라고 떼쓰지 않느냐”
“여자들이 그렇게 힘들게 낳아 놓으면, 남자들은 군대 가서 죽이는 거 배워 온다”
“죽이는 거 배워 온 게 대체 뭘 잘했다는 거냐”
“처음부터 그런 거 안 배웠으면 세상이 평화롭다”

나는 절대 동감! 군대 댕겨와서 내가 찌껄였던 말이니까!


아니, 이거 하나부터 열까지 맞는 말만 했는데, 왜 잘려? 응? 나라는 수컷, 군대 다녀왔지만, 그녀의 생각과 똑같은 걸요. 대체, 군대에서 배우는 건 남 죽이는 거 말고 있던가요. 총으로 쏴 죽이거나 말로 죽이거나, 아주 더러운 것만 배워주는 군대. 그런데, 바른 말하던 그녀는 잘리고, 강용석 개나리는 당에서만 제명당했어요. 수컷이라고 봐 주는 거냐, 응, 이라고 항의하고 싶었다니까요.  

아, 저도 갑자기 흥분했네요. 근데, 인간 수컷은 필요 없지만, 남자 사람은 가능하면 좀 살아남게 해 주세요. 전, 인간 암컷은 필요 없어, 라는 말은 못해요. 인간 암컷이라도 인간 수컷보다는 낫지 않을까요. 헤헤. 마리 여사에게도 보니까, 잘은 모르지만, 동물병원의 아라카와 선생님이나 왜건 택시 운전사 가시오 씨와 같은 ‘좋은 남자 사람’도 있던 걸요. 

마리 여사, 당신 포유류 가족들 이야기. 제겐 인간 아닌 다른 동물 가족이 없지만, 참 좋았어요. 아마, 인간 수컷 아닌 남자 사람이라는 확신이 스스로 들 즈음엔, 고양이와 함께 살아보려고요. 결심, 굳혔어요. 고마워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스윙보이

《뚜껑 대신 마음을 여는 공감 글쓰기》.

김두식 교수는, 
《불편해도 괜찮아》라고
말했지만, 

뚜껑 열리는 건, 못참아~
뚜껑에 말아먹는다면,
모를까! (뚜껑에 말아먹는 팔도 왕뚜껑~ ^^;)

거참, 농담하곤 뚜껑 열리게 했다. 미안하다.

저자 이강룡은, 친구다. 한편으로 내 글쓰기 선생이다.
간혹 선생 가르침을 따르지 못하는 불량 학생이긴 해도.

그가 책을 보냈다.
'친애하는 벗'이라.

후끈했다. 민망해서.
눈물 찔끔했다. 고마워서. 나는 좋은 친구인 그에게 내 손수 내린 커피 한 잔 대접하지 못한 죄인인데. 흙. ㅠ.ㅠ

강룡은, 
참 좋은 사람이다.
파킨슨병에 걸려도,
장담은 못하지만, 
나는 아마도 강룡을 기억할 것이다.  

강룡 아버님이 돌아가셨을 때,
제천에서 강룡과 함께 구석탱이에 앉아 피운 담배를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제천음악영화제의 선율과 영상이 아무리 마음을 흔들어도,
강룡과 함께 했던 담배의 기억을 뛰어넘지 못할 것이다.

강룡의 결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와 맞물려 잊히지 않을.
언젠가 얘기할 기회가 있겠지만,
지금까지 내가 축복한(아니 축복하지 않은 결혼도 있었단 말이냐! ^^;)
결혼식 가운데 가장 알흠다운 결혼식이다!
아마 그걸 뛰어넘는다면 나의 결혼식이 될 것이다. 우하하하.

이젠 어쩌면,
영원히 볼 수 없겠지만,

나는,
그가 술 마시고 마구마구 뛰던 모습을 다시 보고 싶다. 캬캬. 그 모습 참 웃길 게다. 

그가 들으면, 
뚜껑 열릴 얘기다. 
그만해야지. ㅎㅎ

강룡은, 
지금 휴가 중이다.
(-8/15) 다행이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스윙보이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 특히 아주 젊어서 세상을 떠난 사람들이 오래도록 아름답게 기억되는 이유. 여러 가지가 있죠? 그들은 더 이상 실수나 과오가 없을 테고요, 또 배신도 변절도 하지 않을 테니까요. 너무 변하는 세상, 믿지 못할 사람들 속에서 결코 변하지 않을 사람을 그리워하는 것은 참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10년 전 우리 가슴속에 묻힌 후에 그는 한 번도 우리를 배신한 적이 없죠. 리버 피닉스. 피닉스라는 그의 성이 참 아이러니하게 느껴져요. 23세. 그때 죽었지만 그렇게 참 불사조처럼 우리 마음속엔 이렇게 오래 살아남아 있네요.

- <정은임의 FM 영화음악> 중에서 -



다시 불러본 이름, 정은임입니다. 
누나는 리버 피닉스를 이야기했지만, 
지금 우리는 정은임을 이야기했습니다. 

지금, 말 못하는 우리는 정은임이 그립습니다

그러니까,
누나는 자신이 말한 것이 고스란히 부메랑이 될줄은 몰랐을 겁니다.
실수나 과오가 없는 것은 물론,
배신도 변절도 하지 않으며,
너무 변하고 믿지 못할 사람들 속에서 결코 변하지 않을 그 사람, 정은임.


그런 정은임을 그리워하는 것은 참 당연한 일이었지요. 은임 피닉스.
 
지난 4일, 아름다운가게 동숭동헌책방.
정은임의 목소리를 들었고,
정은임의 흔적을 마주대했으며,
정은임을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사람들을 온오프로 만났습니다.


정은임을 기억하는 팬들의 페이지인 www.worldost.com,의
박유정님은 그리 말했습니다.
"1년내 그녀를 추억하지만, 1년에 한번 드러내놓고 온전히 추억할 수 있는 오늘에 감사합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올해 추모바자회 행사장에 늦게 도착한 바람에,
다소 아쉬운 감도 있었지만,
은임 누나는 여전했습니다.
다행입니다.
누나는 여전히 우리의 심장박동을 뛰게 만들고,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도록 만듭니다. 

6년이라는 시간, 희한하게 버텨왔습니다.
'정은임 아나운서를 기억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아름다운 하루'도,
어언 6회째를 맞이했고요.  
2회 바자회부터 참석한 저는, 
일 년에 한 번, 특별한 조직 없이, 자발적으로 움직여서 하루를 만드는, 
가장 보통의 '정은임 빠순빠돌이'들이 참 좋습니다. 
나이도, 직업도, 가족관계도 잘 모르지만, 각자 은임 누나를 품고 있다는 것,
그것 하나로도 충분한 사람들입니다.
 
매년 8월4일 즈음이면 마음시계가 향하는 곳, 정은임입니다.
올해도 무사히 마쳤고,
대철님, 혜영님, 병배님, 더불어 1회부터 행사 기획을 하고 공간제공을 위해 묵묵히 도와주신 아름다운가게의 솔강 남재석님. 
애 많이 쓰셨고, 
함께 은임 누나를 추억하고 기억할 수 있어서 고마웠습니다. 


시간은 멈추지 않고 흘러갑니다.  
1년 후 다시 이 '아름다운 하루'가 열릴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는 1년 후 다시 정은임을 가슴에서 끄집어내서 추억할 겁니다. 

이번에는 결의를 좀 했습니다.
우리 각자의 마음속에 똬리를 튼 정은임을 끄집어내보자고.
'정은임 추모문집'을 만들어 볼 생각입니다. 우리 각자의 정은임.
정은임은 이 세상에 없지만,
세상에는 또 다른 정은임이 곳곳에서 기지개를 펴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정은임입니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스윙보이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470)
식품 정의(페어 푸드) (2)
또 다른 미디어 (19)
이야기가 있는 풍경 (10)
미디어 소믈리에 (11)
놀아라, 직딩아~ (31)
세계, 내가 발 딛고 있는 (225)
악마적 퇴폐와 고질적 순수의.. (46)
돼지털 싱글스토리 (78)
나는 당신을, 감탄한다... (43)
프로이트와는무관한불친절한.. (4)

달력

«   2010/08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get rsstistory! Tistory Tistory 가입하기!